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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군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 언양.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드는 9월 초, 아침부터 분주해지는 곳이 잇다. 다름 아닌, 언양 5일장 터다. 우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바로, 언양 5일장이 서는 날이다. 역사와 전통만 거의 100년째, 현재 수십 개의 상가와 수백 개의 좌판이 언양 5일장을 꾸려가고 있다.

#정겨운 장터의 모습

언양 5일장 터에는 할머니들이 직접 생산한 무공해 산나물, 친환경 농산물들을 인심 듬뿍 담아 판매해, 이곳을 찾는 이들의 마음까지 풍족하게 해준다.
 장터는 추석제수 용품을 마련하기 위해 사람들로 가득하다. 길가에서 좌판을 하는 한 할머니는 직접 밭에서 키운 상추를 가지고 나와 팔고 있다.

 이 할머니는 "밭도 나 혼자 다 메고, 장에 나와 파는 것도 혼자하고, 우리 영감은 집에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든다"며 살가운 푸념을 늘어놓는다.

 "남자들 일 못하는 건 예사일이고, 영감들이 모두 어린 아이가 되고 있다"며 옆에서 장사를 하는 다른 할머니가 맞장구를 치니 주변 장사꾼들이 다 같이 웃는다.

 오며가며 얼굴 몇 번 본 사이인데 장터에서 이렇게 나란히 앉아 있으면 마음이 척척 맞는다. 그래서 장터이웃이란 말이 생겨났고, 금세 친구가 돼 서로 돕고 정을 나눈다. 또 이들은 가슴 속 깊이 숨겨놓았던 가슴 아픈 사연까지 나누는 깊은 사이가 된다.

 10년 전 아들을 교통사고로 먼저 보냈다는 한 할머니는 장터에 나와 이렇게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의 짐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고. 이렇게 사랑과 정이 뿌리 내린 이곳이 바로 언양 5일장 터다.

 장터하면 이 왁자지껄한 목청을 빼놓을 수가 없다. 헌데 가슴에 단단히 맺힌 게 있는 듯한  아주머니가 "시골에 마트가 생겨 죽겠다"며 "마트는 부산과 울산 도심에 있어야지, 이런 시골에 마트가 웬일이야"며 분통을 터트렸다.
 
#맛나는 먹거리


장터하면 생각나는 것이 바로 먹거리다.
 언양 5일장 먹거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 바로 50년 전통의 언양옛날곰탕. 이 곰탕집 앞에는 곰탕의 맛을 보러 온 사람으로 인산인해다.

    한우 뼈를 넣고 7시간 이상 끓인 육수에 고기, 국수, 파 등을 얹은 곰탕이 대표적인 메뉴다. 함께 나오는 양념소스와 파김치도 별미다. 야들야들하게 삶아진 수육 또한 인기다.

 손맛과 한우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맛 덕분에 한 술만 떠도 담백함을 느낄 수 있다.
 좋은 재료에 정성까지 더하니 손님 몰리는 것을 당연지사. 50년 전의 맛을 잊지 않고 찾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이뿐 만이 아니다. '부산어묵' 뺨을 칠 정도로 유명한 어묵이 언양 5일장에 있다. 40년 전통의 '언양어묵'이다. 손님들이 어묵을 사기위해 긴 줄을 서 있는 모습에 '언양어묵'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다.

 '언양어묵'은 손님들이 직접보는 앞에서 생선살과 각종 야채로 반죽을 하고 기름에 튀기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7세부터 어묵을 만들어 왔다는 사장님은 '왕보'라고 불리는 둥그런 어묵이 가장 인기가 좋다고 한다. 이밖에도 매콤한 땡초어묵도 맛볼 수 있다.

 또 이 장터에는 한 여름 더위를 싹 가시게 하는 콩국우뭇가사리가 있다. 국산 콩을 맷돌로 직접 갈아 맛이 더 좋다고 한다. 그래서 손님들 발길이 이곳에 절로 멈춘다.

 추석 제수용품을 마려하기 위해 나온 한 아주머니가 그릇 채 마시면서 "더울 때 참 좋아요. 시원하고, 고소하니 참 좋네"라며 만족해했다. 이곳에는 포장을 해가는 손님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겨울에는 떡국이 별미라고.
 집에 있는 게 답답해 나온 한 중년 남자는 "여기는 내 놀이터야, 여기 사람들 대부분 다 알아. 맛난 것도 있고, 정겨운 사람도 있고"라며 빙긋 웃는다.

#최고의 볼거리 대장간

"신기하고 정겹다. 어릴 때 시골장터의 느낌이 물신 나네요"
 언양 5일장 장터의 초입. 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딱 멈추게 하는 볼거리가 숨어있다.

 언양 장날을 전국에 알리듯 50년 경력 베테랑답게 시원하게 망치질 해대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가던 길도 멈추고 구경을 한다.

 대장간에 있는 대장장이는 쇠로 된 것이면 못 만들게 없을 것 같다.
 박병오(70) 대장장이가 노익장을 발휘하며 굵은 팔뚝을 걷어 부치고 풀무질을 해대면, 숯이 시뻘겋게 빛을 낸다.
 벌겋게 달군 쇠뭉치를 엿가락 다루듯이 척척 만지는 대장장이지만 일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을 던지자, "힘들지 왜 안 힘들겠어, 힘으로 하는 일인데…이 망치가 얼마나 무거운 건데, 이걸 들고 종일 쇠뭉치를 때리는 데 어찌 힘들겠지 않겠노"라며 일흔 살의 대장장이는 대답했다.
 맞다. 천하장사라 한들 어찌 힘들지 않겠나. 더구나 그 시절이 벌써 50년째다.

 그의 손은 시커멓게 궂은 살이 베겨 있어 노동의 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는 특히 겨울이 되면 손이 전부가 트고 갈라져서 손톱, 발톱이 다 빠질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여름이 오히려 일하기 수월하다고.

 그는 "여름에는 열속에서 일하면서 땀을 확 흘리고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굉장히 시원한 느낌이 든다"며  밝게 웃었다. 이열치열이란 말이 이런 것인가 보다. 50년 넘게 장터를 지키며 불구덩이에서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는 분명 장인이다. 오늘도 그 얼굴에 고개를 숙이며 희망을 본다.
 
#우리나라 열손가락 안에 드는 우시장

내가 팔려 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가 말을 잘 들을 리가 없다. 젖 먹던 힘까지 써보지만 결국 주인의 손에 끌려나온다.
 언양 우시장은 우리나라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큰 우시장이다. 소가 마음에 들면 흥정해서 바로 사고파는 직거래 방식이다.

 소를 거래하기 위해 먼저 kg당 값을 정하고, 그다음 한 마리 값을 따지기 위해 소의 무게를 단다. 얼추 400~500kg은 기본이고 많이는 1,000kg까지 무게가 나간다고 한다. 무게만큼 값을 받게 된다. 팔려가는 소의 서러운 울음을 뒤로하고 우시장엔 흥정소리에 정신이 없을 정도다.

 한 상인이 "소는 마음에 드는 데 가격이 안 맞아"라고 소리를 치며 매입을 주저하다 결국 두 마리를 샀다.

 마리당 수 백만원이 오가는 흥정이다 보니 거래가 신중한 건 당연하다. 그래도 좋은 소를 산 상인들이 뿌듯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송아지 두 마리 가져가는 데, 밥 잘 먹여 크게 키워 살림살이에 보태야죠"라며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이젠 팔린 소들은 새 주인을 따라 새집으로 떠나기 위해 차에 올라탄다. 이때 소장사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도 걱정을 보탠다. 소가 다칠까봐 조심조심 차에 태운다.
 이내 차는 떠나고 소는 또 서글피 울기 시작한다.
 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 재래시장이 많이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수는 의외로 많다. 대형마트에 밀려 사라질듯 보이지만 그래도 우리 이웃처럼 가까이 그 존재를 드러내는 곳이 장날, 장터의 모습이다.  최창환기자 c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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