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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구 화정산 정상에서 바라본 울산항과 온산항 야경.


#울산 야경의 출발은 1962년 공업지구 지정부터
지도를 펼쳐든다. 태화강역을 지나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를 거쳐 온산국가산업단지로 이어지는 길이 눈에 들어온다. 이 길을 따라 불빛을 사냥하기로 한다.
 차량을 통해 이동하는 길. 주위를 둘러본다. 헤드라이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질주, 가로등 불빛의 도열, 아파트마다 솟구쳐 오르는 불빛, 거리를 장식한 네온사인의 흩날림…. 칠흑 같은 어둠은 도시를 필라멘트로 만들었다. 그리고 필라멘트는 어둠을 오색찬란하게 채워버렸다.
 공단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휘황찬란한 빛이 잦아들 무렵. 도심지 저 너머에 위치한 터라 인적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공장에 불이 들어온 건, 아니 이곳 울산에 불이 들어온 건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체 8만 5,000여 인구, 취업인구의 약 70%가 1차 산업에 종사하던 지방 소도시, 울산. 변화의 시발점은 '경제개발'이었다.

 군사정부는 5ㆍ16이 일어난 이듬해인 1962년 1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발표한다. 이들이 내세운 목표 중 하나가 '기간산업의 확충과 사회간접자본의 충족'. 그러니까,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기 위해서는 기간산업의 확충이 필수였다.
 정부는 기간산업단지 입지선정을 거쳐 국내 최초로, 이곳 울산을 특정공업지구로 공포한다. 입지조건이 우수하다는 건 일제강점기부터 알려졌던 터. 뿐만 아니라 국유지가 된 - 일제가 짓다만 정유공장이 들어서 있던 터 - 드넓은 땅도 울산이 공업지구로 선정되는데 주효하게 작용했다.
 그해 9월 정부가 역점을 둔 정유공장 건설 공사가 시작된다. 이듬해인 1963년 12월 완공, 그리고 시운전을 거쳐 64년 4월 울산공단 내 최초로 공장 가동이 시작된다. 바로 저기다. 불빛 가득한 저곳이 최초의 공장이 들어선 지역 일대다.
 
#디테일을 버리고 스케일을 가지다
지도를 펼쳐든다. 지역명으로 따진다면 매암동ㆍ여천동ㆍ장생포동ㆍ고사동으로 불리는 곳이다. 추진된 개발 계획에 따라 1981년까지 만들어진 공단을 포함한다면 상개동에서 용연동으로 이어지는 일대라고 보면 된다.(효문지구ㆍ미포지구 제외) 이들 지역에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과거 명칭은 울산특정공업지구)가 위치해 있다.
 차량을 이용해 산업단지를 누빈다. 개개 공장마다 불빛이 가득한데, 그러고 보니 무룡산 정상에서 바라본 주황빛 물결의 정체는 공장을 밝히는 불빛이었다. 가까이 와서 보니 물결은 빛깔이 되어 매혹하고 있다.

 보석 빛깔이 탐스럽다. 토파즈의 주황 빛깔뿐만 아니라 골든 베릴의 노란빛, 아쿠아마린의 푸른빛, 루비의 붉은빛 등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빛의 향연에 그저 취할 뿐이다.
 빛깔에 취해 내린 곳은 산업용 가스를 생산하는 시설. 매달린 등불이 시설을 환히 비추고 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사전 허락없이 공장 내ㆍ외부를 촬영할 수 없다는 거다. 설비 노출이 자칫 기밀 유출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 내부 직원들 또한 철저히 지켜야 하는 규칙이란다.
 그렇기에 멀찍이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찰칵! 화면을 보니 디테일을 표현하지는 못했어도 '스케일'은 구현해냈다. 출렁거리는 빛이 두 손 가득 넘쳐흐른다.

 

▲ 석유화학공단의 야경은 야간안전을 위해 설치된 작업등의 종류에따라 제각각 다른 불빛을 낸다. 나트륨등과 수은등이 혼재된 공단의 밤은 그래서 영롱한 빛의 결정으로 보석처럼 빛난다. 이창균기자 photo@

 
#어둠속에서 더 빛나는 색의 향연
외황강을 가로지르는 개운교를 지나는 길. 울산 내 두 개 국가산업단지는 외황강을 사이에 두고 나뉜다. 얼마 후면 온산국가산업단지로 접어들 것이다.
 비철금속 제련기지인 온산단지는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기간 중인 1973년 4월에 그 조성 계획이 세워진다. 1, 2차 경제개발 계획을 성공한 정부가 고도성장을 지속함과 동시에 구리ㆍ아연ㆍ알루미늄 제련소 등을 온산 일대에 건설하기로 한 것.

 1978년 11월 온산공단 내 최초로, 아연을 제련하는 공장이 불을 밝힌다. 이후 전기동 생산 공장, 알루미늄 압연 공장 등에 불이 켜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에 이르렀다.
 이곳 산업단지 또한 휘황찬란한 빛이 어둠을 수놓았다. 펼쳐진 길을 따라서, 아니 넘실거리는 불빛을 따라서 유영한다.
 차량을 멈춰 세운다. 인적도 드물고 차량도 드문 이곳.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이번엔 '소리'다.
 "쿵쿵쿵쿵쿵쿵" "쿵쿵쿵쿵쿵쿵" "쿵쿵쿵쿵쿵쿵" 흔하디 흔한 표현을 빌리자면, 심장 뛰는 소리가 공단 가득하다. "쿵쿵쿵쿵쿵쿵" "쿵쿵쿵쿵쿵쿵"

 심장 뛰는 소리? 그러고 보니 쉼없이 달려온 기간이 올해로 49년째다. 1962년부터 2011년에 이르기까지 '잘살아보자'는 목표 아래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와 온산국가산업단지가 칠흑 같은 어둠을 밝힌 지도 말이다. 다시금 귀를 기울인다. "쿵쿵쿵쿵쿵쿵" "쿵쿵쿵쿵쿵쿵" 쉼없이 펌프질을 해대는 심장의 고동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진다.
 
#도심과 공단의 오묘한 조화
공단 야경 감상은 넉넉잡아 3시간이면 충분하다. 공장에 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저녁부터 한밤중에 이르기까지 그 어디라도 상관없다. 두 눈을 통해서든 카메라를 통해서든 영롱하게 빛나는 보석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공업화를 통해 비약적인 성장을 이룩한 울산. 1962년 42개에 불과하던 공장은 제4차 경제개발 계획이 끝난 81년 514개가 된다. 8만 5,000여 인구는 47만여명으로 증가, 발전을 거듭하는 만큼 울산의 불빛 또한 밝아진다.

 보석을 거머쥐고 돌아오는 길. 저기 울산의 관문, 공업탑이 보인다. 울산이 공업지구로 지정되고 공업센터가 만들어진 것을 기념해 세워진 '울산공업센터 기념탑'이다.
 <한 줌의 흙, 한 그루의 나무에도 신라 천년의 슬기로운 역사가 담겨져 있는 이 터전에 맥을 잡고 삽을 내리니 숙명처럼 되풀이해온 나라와 겨레의 가난과 슬픔은 새 역사와 더불어 윤택의 기쁨으로 그 모습을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기쁨과 자랑을 길이 기념하고 보다 더 알찬 앞날을 다짐하기 위하여 겨레의 승리와 번영을 상징하는 기념탑을 세우고 땀 흘려 이룩한 민족중흥의 교훈을 기리 후세에 전하고자 합니다. - 공업탑 건립취지문 중>

 거리며 건물이며 이곳저곳에서 내뿜어지는 불빛이 공업탑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다. 차량 헤드라이트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빛, 거리를 밝히는 가로등, 형형색색의 네온사인, 아파트마다 가득한 불빛…. 무룡산 정상에서 바라본 주황빛 물결은 이곳에서도 빛깔이 되었다. 동서남북 이곳저곳으로 뻗어나가는 불빛은 오색찬란한 보석이 되어 매혹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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