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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다양한 민요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구비문학(口碑文學)의 보고(寶庫)로 불린다. 민요란 민중들이 생활 속에서 부르는 노래다.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아도, 그래서 아무나 자연스럽게 부를 수가 있다. 그러므로 무가(巫歌)나 판소리 등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 기능에 따라 기능요와 비기능요로 나뉘고, 기능요는 노동요와 의식요, 유희요로 나뉜다고 한다. 비기능요는 일정한 기능이 없이 불리는 민요를 일컬는다.


 울산에 민요가 풍부한 것은 다른 곳과는 달리 농촌과 산촌과 어촌이 모두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을마다 차별화된 갖가지 삶의 방식이 존재함으로서 민요자료가 풍부한 것은 당연한 터였다. 울산 또한 민요는 노동요에서 비롯됐다. 농업노동요가 그 첫 머리를 장식한다. '모찌기노래'와 '모심기노래', '논매기노래', '보리타작노래'가 전한다. 머슴들이 산에서 나무를 하거나 풀을 벨 때 부르는 노래 '어사용'노래도 있다. 구슬픈 곡조에 자신의 서글픈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그 밖에도 '망깨노래'와 '그물 당기는 노래'도 있었다. 여성들이 즐겨 부르던 노동요로는 '베틀노래'와 '삼삼기노래'가 있었다.
 의식요로는 '상여노래'와 '달구질노래'가 있었다. 노동요 가운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아무래도 '쇠부리노래'라고 할 수 있다.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0호 달천철장에서 나온 토철을 쇠부리하는 과정에서 불려지던 노동요이다. 그리고 '불매노래'도 있지만, 그것은 '쇠부리노래'와는 다르게 무척 짧고 사뭇 다른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울산의 노동요로는 반구대 암각화에 고래잡이 그림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아마 고래잡이를 할 때에도 불렀던 노동요도 있지 않았을까 유추해 볼 수가 있으리라. '고래잡이 노동요'라고 할 수가 있겠다. 민속학자 이정재 교수가 지난 2007년에 울산에서 고래잡이 노동요를 채록했다. 장생포에서 열리던 고래축제에서 북구 연암동에 거주하는 구구서씨가 발굴하여 부르던 것을 채록한 것.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자진모리조의 '고래잡이 나가면서 부르는 뱃노래'는 이렇다. "고래잡으러 가자시라 고래잡으러 가자시라 고래잡으러 가자시라/ 가자시라 가자시라 고래잡으러 가자시라/ 고래잡으러 가자시라 고래잡으러 가자시라(후렴)/ 배 띄워라 배 띄워라(후렴) 고래포에 배 띄워라/ 파도 타고 저 바다로(후렴) 고래잡이 떠나는 배(후렴)/ 뱃노래를 부르며 가자(후렴) 여기여차 노저어라(후렴)/ 어떤 사람 팔자 좋아(후렴) 고래등같은 좋은 집에(후렴)/ 주색잡기 부리면서(후렴) 좋은 세월 보내는데(후렴)/ 우리 팔자 무슨 죄로(후렴) 수중고혼 된단말가(후렴)/ 명사십리 해당화야(후렴) 꽃진다고 설워마라(후렴)/ 살아 생전 생이별은(후렴) 생초목에도 불이 붙네(후렴)/ 임 두고 떠난 고래잡이(후렴) 마음이야 아프지만(후렴)/ 갈매기야 울지 말고(후렴) 우리 님께 전해다오(후렴)/ 대궐같은 고래잡아(후렴) 간다는 소식 전해다오(후렴)/ 수천년 전 선사시대(후렴) 우리들의 조상님들(후렴)/ 울산이라 대곡리에(후렴) 반구대의 암각화에(후렴)/ 그림으로 새겨있듯이(후렴) 동해 바다 고래도 많아(후렴)"


 그리고 중중모리장단으로 부르는 것과 역시 자진모리로 부르는 다른 뱃노래가 있다. 또 하나는 고래를 발견하고 잡을 때 부르는 뱃노래가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야디야 어기야디야 어야디야 어기야디야 어야디야 어기야디야(후렴)/ 거친 파도 넘어서니(후렴) 고래 한 마리 노는구나(후렴)/ 그 고래를 쳐다보니(후렴) 너무 작아 못쓰겠다(후렴)/ 옆에 고래 쳐다보니(후렴) 그 고래는 너무 멀다(후렴)/ 큰 고래가 도망친다(후렴) 어서 빨리 노저어라(후렴)/ --중략(中略)--/ 잡았구나 잡았구나(후렴) 큰 고래를 잡았구나(후렴)/ 이 고래를 잡은 것은(후렴) 용왕님의 덕택이요(후렴)/ 이 고래를 팔아서는(후렴) 논을 사고 밭을 사서(후렴)/ 인심 좋은 울산 땅에(후렴) 고래등같은 집을 지어(후렴)/ 부모님께 효도하며(후렴) 천년만년 살아보세(후렴)"


 이 고래잡이 노동요는 울산에 전승되는 것을 구구서씨가 채집해 엮었다고 한다. 그러나 채록과정에서 원형이 제대로 보존됐을까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고래잡이 노동요로서 자리매김돼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그와 함께 고래잡이 당산굿과 일광월광 굿거리, 허계굿 또한 원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전국적인 축제를 지향하는 고래축제에서 당당히 공연할 수 있어 울산의 고래잡이 민속문화가 온전히 뿌리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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