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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의 한 고등학교가 분묘를 이장하지 않은 채 개교하는 바람에 학생들이 4년 째 무덤을 내려다보며 수업을 받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는 학습권 침해 및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지만 땅주인인 울산시교육청은 '복지부동'으로 일관하면서 봐주기 의혹을 사고 있다.

 

   
▲ 동구 남목고등학교가 분묘 2기를 법적절차에 따라 수용하지 않은 채 개교한 후 혐오감, 공포감 등으로 학생, 교사, 학부모들의 민원이 빗발치고 있지만 땅주인인 시교육청이 공공재산을 점유하고 있는 개인의 분묘를 4년째 존치시키는 이상한 행정을 지속하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사진은 학교 주위 땅은 모두 일자로 깍여져있지만 묘가 선 절개지만 U자 형태로 학교 건물 사이로 부지를 뚫고 들어와 있다. 유은경기자 usyek@ulsanpress.net

 

 


학교부지 매입후 분묘처리 못해 존치
수목보호구역 지정등 울산시도 한 몫
"법적시효 끝나 자진 이장 외엔 답없어"

 

 

# 학교 건물도 ㄷ자로 건립
울산시 동구 서부동에 위치한 남목고등학교. 지난 2008년 개교한 이 학교의 교사동을 돌아들어가면 학교 건물 사이로 분묘 2기가 설치된 절개지가 부지를 뚫고 들어와 있다.
 해당 절개지는 학교 뒷산인 마골산에서 이어진 땅으로, 무덤을 감싸듯 옹벽이 둘러쳐져 있다. 산 아래 지어진 학교라 주위 땅이 모두 일자로 깎여져있지만 유독 묘가 선자리만 이를 둘러싸고 'U'자 형태를 띈 채 학교 안으로 돌출돼 있다.
 학교 소유의 땅은 'ㅁ'자 형태지만 실제 건물은 분묘를 피해 'ㄷ'자로 들어섰다. 분묘는 5층짜리 학교건물과 투명 유리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자리해 있고 특히 교실과 교무실, 정독실 등이 위치한 2~3층 건물과는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한 학부모는 "교실안에서 보면 바로 눈앞에 무덤이 있다보니 혐오감을 호소하는 학생과 교사들이 많다"며 "특히 해가 진 이후부터 자율학습이 끝나는 자정 사이에는 섬뜩하기까지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 교육청 수용재결 신청 안해
이 같은 상식 밖의 상황이 벌어진 것은 학교 설립과정에서부터 빚어진 행정적 과오 때문이다.
 '공공용지활용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학교부지 내에 분묘가 있을 경우 토지와 마찬가지로 이를 수용한 후 학교를 설립해야하는데 이를 어겼다.
 사업승인 과정에서 소유주가 이장을 강력히 거부했고, 분묘 자리가 '수목보호 구역'으로 묶여버리는 등 돌발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시교육청의 해명이다.
 이 부지는 지난 2003년 1월 학교부지로 '시설결정'된데 이어 2004년 4월 '학교시설사업시행계획'을 승인받았는데, 허가관청인 울산시가 해당 부지와 분묘를 원형보존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는 것이다.
 시교육청은 그럼에도 이를 받아들였고, 여기다 중앙토지수용위원회에 대한 '수용 재결' 신청절차까지 생략해버리는 바람에 학교는 현재 부지에 무덤을 끼고 들어서게 됐다.
 또 지난 2007년 착공을 앞두고 전체 1만6,500여㎡의 학교 부지를 매입하면서 분묘 자리까지 사들였고, 결국 공유재산을 개인분묘가 차지하고 앉은 모양이 됐다.
 학부모들은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묘지가 어디있겠냐"면서 "그럼에도 다른 분묘는 모두 수용하면서 왜 이 분묘 만은 존치시켜야했는지 쉽게 납득이 안된다"고 꼬집었다.
 시교육청은 이제와서 법적 시효가 끝나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법적으로 토지수용 재결은 사업시행계획 승인이 있은 날로부터 1년까지만 신청할 수 있다"며 "현재로서는 자진 이장하지 않는 한 답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소유주 "분묘 훼손" 반발
분묘 소유주는 소유주 대로 행정의 피해자라며 대치하고 있다.
 해당 소유주는 시교육청이 부적절한 부지에 학교 설립을 강행하면서 원형보존 명령을 어기고 분묘를 훼손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소유주 A씨는 "시교육청은 당시 학교를 지으면서 폭이 50m에 달하는 분묘 가장자리 땅을 도려냈고, 100년 이상된 나무 500여 그루를 무단 벌목하는 바람에 수목에 싸여 있던 분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됐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또 "어느 누가 조상 묘를 함부로 훼손하는 것을 허락하겠느냐"며 "개인사를 무시당한 것으로 모자라 이제는 명예까지 위협받게 된 만큼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하주화기자 us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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