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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44)씨네 가족의 주말 아침은 부산하다. 한가롭기 마련인 주말아침이지만 매주 도서관을 찾아 일찍 집을 나서는 재승씨네 가족은 한참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이런 풍경이 벌써 3년째다.
 재승씨네 집 두 딸 수현(14), 수빈(16)양 역시 다른 집 애들처럼 늦잠도 자고 싶고 도서관 방문이 귀찮을 때도 있다. 그래서 처음엔 부모님 손에 이끌려 도서관을 방문하게 됐다고 하지만 막상 도서관에 가면 책도 읽고 학교 숙제도 하는 등 열심이다.
 수현이와 수빈이는 보통 도서관에 가면 아빠의 추천도서, 청소년 권장도서, 읽고 싶은 책을 각각 한 권씩 세 권을 대출한다.
 기억에 남는 책을 한 권씩 얘기해달라고 하니 수현이는 <완득이>를 수빈이는 <나의 아름다운 정원>을 꼽을 정도로 다양한 책을 접하지만 한국문학을 보통 많이 읽는다고 했다.
 울주도서관에서 지정한 책 읽는 가족에 선정된 이 가족의 책 사랑은 애들이 세 살 때부터 책을 읽어주던 딸바보 아빠의 무한사랑에서 시작됐다. 아이들은 그 덕분에 잠을 잘 잤다고 웃음을 보였지만 그런 애정이 지금까지 이어졌기에 지금의 이 가족이 탄생할 수 있었다.

▲ 최근 리모델링을 마치고 더 많은 이용자들이 찾고 있는 울주도서관 전경. 신불산 자락에 들어앉아 산과 어우러진 경관이 일품이다. 독서로 피로해진 눈이 산 머리를 보다보면 절로 시원해진다.

 
# 도자기 등 학습 동아리 각종 대회 성과
▲ 동아리 활동으로 도자기 전시까지 연 정단이 씨

엄마 정단이(42)씨의 적극적인 노력도 빠질 수 없다. 도서관을 처음 다닐 때는 아침 일찍 손수 도시락을 싸기도 했을 정도.
 가만히 얘길 듣다보니 단이씨처럼 도서관을 잘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그간 도서관에서 들어온 수업만 수채화, 도자기, 디지털카메라 강습 등 다양하다. 특히 도자기수업을 통해서는 작품을 만들어 전시회도 갖고 판매까지 한다고 하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단이씨와 함께 수채화 수업을 듣던 회원 중 몇몇은 수채화협회에 들어갔거나 공모전에 당선된 회원도 있다고. 이들에게 도서관은 이처럼 한 가족의 인생을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이다.
 
#소싯적 문학소녀·소년 다 모인 성인독서회 자운영
지금처럼 카톡이나 문자메시지 혹은 휴대전화로 신속하고 즉각적으로 친구나 연인과 대화하지 못했던 그 시절엔 기다림의 낭만이 있었다. 삐삐도 없던 시절 편지나 집 전화로 서로 얘기를 주고받던 시절 동네마다 문학소녀 소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늘 빠르고 잰 걸음으로 살아오며 그간 우리가 놓친 꿈들이 얼마나 많은지. 성인독서회 '자운영'은 그런 꿈을 실제로 이뤄가는 이들이 있는 곳이다.
 정정화(45) 회장은 얼마 전 공업센터 50주년기념 전국문예공모에 입상하면서 책을 내기도 했다. 토론회에서 함께 책을 읽으면 혼자 독서를 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생각의 폭과 깊이가 넓어져 좋다는 정화씨는 문학을 통해 매일 마주하는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좋다고 했다. 지금 이순간은 불행할 지도 모르지만 상상을 통해 일상을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정화씨 뿐 아니라 자운영에서 뒤늦게 문학의 꿈을 이룬 분들이 많았는데 박산하, 김종연, 한정남 회원이 모두 등단해 시조시인이나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성인독서회 자운영의 정정화 회장과 정대근 총무

 이 날 총무 정대근 씨도 만날 수 있었다. 어쩌다보니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된 그는 늘어난 여유시간을 의미 있게 쓰고자 자진해서 독서회에 들었다고 했다. 부지런하고 매사에 꼼꼼한 대근씨 덕분에 토론회는 늘 알차다. 처음엔 책을 보다 관심가는 부분이 있어 자료를 찾아 회원들에게 나눠 준 것이 시작이 돼 이제는 참고자료를 만들어 나눠줘야만 속이 시원하다고 했다.
 최근에는 신불산에 야유회를 가 비빔만두를 안주삼아 소주 한잔씩을 곁들이며 좋은 사람들과 산의 정취에 흠뻑 빠진 기억들이나 도서관에 북까페를 열기도 했다는데 이런 모임을 열다보면 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덕분에 금세 친구가 되곤 한다고 했다.

▲ 울주도서관에서 지정한 '책 읽는 가족'에 선정된 정재승씨네 가족.

# 보유장서 15만여권 도심 속 쉼터
울주도서관은 그 이름 때문에 외곽에 있다는 오해를 사기도 하지만 최근 도서관이 리모델링하면서 남구에서 찾는 이용자도 늘고 있을 정도로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다. 버스를 타는 이용자라면 언양터미널에서 택시를 타는 것도 좋은 방법. 도서관까지 한 번에 오는 버스들은 별로 없어 KTX울산역에서 갈아타는 방법도 있다. 도서관 정문에 들어서면 눈이 시원해지는 풍경과 잘 어우러진 도서관은 마치 도심 속 쉼터와 같은 느낌을 전해준다.
 보유장서는 서적이 15만 6,000여권, 간행물 자료 등이 1만 4,000여권이며 현재 지상 3층 건물에 영유아, 어린이, 장애인·어르신, 자유열람실, 문학자료실 등 다양한 독자의 눈높이에 맞는 시설들이 준비돼있다. 특히 어르신들을 위한 자료실이 눈에 띈다.
 현재는 옆에 건물 하나도 리모델링하고 있어 곧 매점이나 식사를 위한 공간도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재 2층에 마련된 아늑한 나무책걸상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은 앉아서 책을 꺼내들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길 정도로 그 편안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이 곳 뿐 아닌 여러 자료실들이 찾는 이들에게는 큰 사랑을 받고 있다고.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황태숙 관장]

사서 출신으로 도서관에서 인생의 절반을 보낸 황태숙 관장(사진)에게 도서관은 단순히 독서를 위한 공간이 아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공간이다. 황 관장은 도서관이야말로 인생에서 어떤 변화를 시도할 때 그 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 희망 이루기 위해 땀 흘리는 공간
특히 자운영과 같은 성인독서회를 비롯한 주부독서회 등 평소 큰 변화가 일어나기 힘들 때 도서관에서 독서를 하거나 강좌 등을 들으며 자신을 성장시키는 경우를 여럿 봐왔다고 했다. 물론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는 청년들이 취업을 위해 도서관을 찾거나 중고등학생들이 시험공부를 위해 도서관을 찾는 등 도서관은 많은 이들이 희망의 열매를 얻기 위해 땀을 흘릴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울주도서관은 지역 주민들에게 어떤 기능을 할 수 있을까.
 황 관장은 문화소외지역인 울주군의 경우 조손가정이나 다문화가족 많아 이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을 더 발굴해 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찾아가는 도서관을 운영한다. 이 찾아가는 도서관은 지역아동문화센터와 연계해 독서 선생님을 주 1회 파견해 독서지도를 하거나 도서관 견학프로그램을 운영해 아이들이 도서관 찾아 책도 보고 정보도 얻을 수 있게 하고 있다.

# 맞춤형 프로그램 개발 역점
이처럼 황 관장은 그간의 노하우를 살려 각 지역에 맞는 도서관이 이용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오늘도 분주히 노력한다. 실제 만나본 황 관장은 에너지가 넘치고 활기찼는데 올해 부임한 황 관장의 이 기운이 이용자들에게도 전해져 왠지 찾기에 신바람 나는 울주도서관이 될 것 같다는 기대가 절로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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