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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之 무늬 토기(구경19.9㎝·높이 23.8㎝). 전형적 홍산문화 토기이다. 이러한 문양은 한반도 신석기 시대 토기에도 나타나고 있다.

신석기 시대에는 세가지 특징이 있으니, 그동안 뗀석기를 쓰다가 한단계 발전한 간석기를 사용한 것과, 떠돌아 다니면서 사냥과 채집으로 생활하다가 정착생활을 하면서 농사를 시작한 것, 그리고 거둬들인 곡식과 음식 등을 담을 수 있는 용기인 토기를 발명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석기 시대가 시작된 연대는 제주도 고산리에서 기원전 10,000~7,000년의 토기편이 발견되어 이즈음까지 올려 보고있다. 한반도 신석기시대 토기 무늬는 새긴 방법에 따라 '덧무늬토기(융기문토기)'와 '빗살무늬토기(즐문토기)'로 구분 되는데 이러한 토기가 주류를 이룬다. 울산지역 신석기 유적에서 출토되는 토기도 이와 유사하다.

 

#빗살무늬 토기의 시원 흥륭와
이 가운데도 빗살무늬토기는 우리나라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이다.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뿐만 아니라 여러나라 신석기 유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빗살무늬 분포 지역을 보면, 북유럽 핀란드에서부터 러시아 볼가강 상류를 거쳐 우랄산맥을 넘어 오브강 하류와 예니세이강을 지나 바이칼호, 여기서 동남쪽의 몽골초원과 중국 흑룡강을 지나 한반도, 일본 열도 큐우슈우까지 북위 55도 지역에 하나의 거대한 띠를 이루고 있다. 이른바 환북극(環北極)문화이다.
 빗살무늬토기의 발생지가 시베리아이고 여기서 동,서로 퍼져나가 한반도에도 전파된 것으로 보았으나, 선(先)홍산문화인 흥륭와 유적에서 8,000년전의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됨으로서 이 곳이 빗살무늬 토기의 시원지로 보고있다. 1983~1994년 사이 7차례에 걸쳐 발굴한 흥륭와 유적에서 빗살무늬토기가 쏟아져 나오자 중국 학계는 깜짝놀랐다.
 

▲ 흥륭와 유적도시계획을 한것처럼 주거지가 정연하게 사전 설계되어 배치되어있다. 이곳에서 생활 용기를 활용하던 빗살무늬 토기가 다수 발견되었다.(1983~1994 발굴). 울산 황성동 세죽 유적지에서 출토된 붉은 토기의 유사성으로 한반도문화와 교류가 있었음을 추측할수 있다..


# 8,000년전 신석기 시대 주류 문화
이후 사해(査海)유적에서도 비슷한 시기의 빗살무늬토기가 나타났다. 빗살무늬토기가 발굴된 곳이 무덤이 아닌 주거지라는 점에서 이들은 빗살무늬토기를 생활 용구로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빗살무늬 외에 단선의 교차문, '人'자형문, 그물문, 돗자리문등 문양이 풍부하다. 그릇의 주둥이 부분과 바닥을 제외하고 전 기물위에 문양 처리를 했다. 이 가운데 수직으로 누른 가로의 '之'자문양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이외에 흔한 장식은 융기문(덧띠무늬)이다.
 융기문의 위치는 고정되어 기체(器體)상의 3분의 1 위에 새겨 놓았는데, 이것은 기물의 제작과 연관되어 있다. 즉 상하 2단으로 제작 하기 때문에 이 부위에 덧띠를 붙인 것이다. 덧띠 위에 다시 압인(押引)하는 문양 처리는 비교적 복잡하다. 그것은 대부분 기하의 문양으로 연속된 파도문, 교차 파도문, 그물문, 돗자리문, 사선 평행문, '人'자문등이다. 배가 깊고 밑면이 평평한 원통형 토기는 이 곳의 대표적 기형이다. 크기는 다르지만 형태는 기본적으로 같다. 문양의 배치를 보면 기본적으로 3단이다. 기표(器表)상 3분의 1은 한줄의 덧띠(융기문)로 처리 하고, 그 덧띠 위에 여러 종류의 문양을 새겼다. 덧띠위의 구연부에는 '之'자 문양을 새기고 덧띠 아래에는 주된 문양을 처리했다.

▲ 울산 황성동 세죽유적 출토 압인문(누름무늬 토기) 토기로 이러한 문양은 홍산문화에서 흔히 나타나고 있다.

# 예술성 돋보이는 人·之·돗자리문 문양
주(主)문양은 대체적으로 세 부류이다. 가로'人'자문, 교차형문, 그물문이고, 두번째는 '之'자문양이다. 이 문양은 조밀하고 길며 때로는 넓은 것도 있다. 세번째는 평형 단선으로 만들어진 돗자리문이다. 이 세 종류의 문양 중 압인의 '之'자문양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수없이 많은 토기가 출토된 175기의 흥륭와 주거지 가운데 5기는 동이족의 문화인 홍산문화의 주거지이다. 이것은 홍산인들이 흥륭와 문화를 이어 받으면서 빗살무늬토기문화도 그대로 계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에 한반도에도 빗살무늬토기가 전래 되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울산지역에도 신암리 유적을 비롯한 신석기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 채색토기 등 삼도로 요약되는 홍산문화

▲ 한반도 신석기 시대토기를 대표하는 빗살무늬 토기(서울 암사동 유적 출토·높이 36.9㎝).

황성동 세죽 유적의 경우 융대문토기(隆帶文)를 비롯해서 압인문(押引文)등의 토기가 출토 되었는데 이와 같은 부류도 이미 홍산문화에서 나타났다. 세죽의 융대문 토기의 기형은 심발형(深鉢形)이 대부분이고 각목(刻目)수법은 손으로 누른 것, 편평한 도구로 누른 것, 조개로 누른 것이 확인되었다. 문양대(文樣帶)는 대부분 횡(橫)으로 2~3열 두른 것이지만, 문양의 사이가 공백으로 남겨진 것도 있다. 압인문 토기류는 도구로 짧게 횡으로 눌러 찍어 연속 시문한 조문(爪文)과 자돌점열문(刺突點列文)등이 있다. 저부(底部)는 편편한 평저(平底)가 많은 편이다. 이와 같은 세죽 유적 토기와 홍산문화 쪽의 것과는 유사점이 너무나 많다. 특히 세죽 유적의 붉은칠 토기는 홍산문화 토기의 붉은 칠 토기와 동일하다.
 홍산문화의 성격에 있어서 '삼도(三陶)'로 개괄 되는데 그것은 '之'자 문양 토기, 채색 토기, 고운 태토의 홍도(紅陶)이다. 세죽의 붉은칠 토기와 같은 토기가 홍산문화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시기도 비슷한 것을 보면 울산이 홍산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는 직접적 증거라 하겠다. 덧붙인다면 세죽 유물의 경우, 토제 인물상 조각과 파수형 토제품(把手形 土製品)도 홍산문화 지역에서 출토 되는 것과 유사하다. 앞으로 지속적 연구가 있다면 홍산문화와 울산의 연계성이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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