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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심 한가운데 들어선 작은 쉼터
봄이 오는 길목. 환한 햇살아래 도서관 가는 길이 싱그럽다. 도서관 옆 산자락에서는  맑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려오고 상쾌한 기분에 발걸음은 절로 가벼워진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한적한 곳에 위치한 도서관에서나 느낄 법한 기분이지만 이날 찾은 북구 염포양정도서관은 실은 정반대의 장소에 위치해 있었다.

   
▲ 이제 겨우 개관 두 돌을 맞은 신참내기 염포양정도서관. 특색있는 외관이 눈길을 끈다 .


 도서관이 들어선 곳은 울산 북구 염포로 685-1(염포동 348-3)번지. 주변에는 현대차 4공장, 하이스코, 미포조선 등 여러 산업체가 몰려있는 곳이다. 하지만 입구 근처의 고층아파트가 외부로부터 소음을 차단하는 한편 도서관을 병풍처럼 둘러싼 염포산이 자연의 풍광을 전해주고 있어 예상보다 조용하고 상쾌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도서관 표지판에서 조금만 걷다보면 빨강과 노랑이 독특한 조화를 이루는 염포양정도서관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올해로 두 돌을 맞이한 신참내기 도서관이라 그런지 건물의 외양이나 내부시설이 현대적이다.
 평일 이른 오전 도서관을 찾았기 때문인지 많은 이용자들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들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 도서관 운영 원동력 자원봉사대
최근 방문한 규모가 작은 공공도서관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자원봉사자들의 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염포양정도서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도서관 규모나 이용자수에 비해 인력이 적다보니 이들의 역할이 없으면 도서관 운영자체가 힘들어진 것이다.
 이곳은 특히 사서도우미 교육을 이수하고 자원봉사자로서 100시간이상 활동한 이들에게는 기간제근로자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신간도서 옷 입히기 작업 뿐 아니라 서가정리, 이용자 안내 서비스 등 다양한 일들을 한다.

 '책지킴이'라는 자원봉사회의 박옥자(44)회장은 도서관이 개관되기 전부터 봉사활동을 신청해 현재까지 꾸준히 자원봉사를 이어오고 있다. 박 회장은 "자원봉사를 통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는 것도 즐겁고 이용자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역할을 했을 때 뿌듯함이 크다"고 했다. 그는 이어 "주변인들은 도서관에 가면 힘든 일도 안하고 책을 실컷 볼 수 있을거라고 오해하곤 하는데 실제로 힘든 일도 많고 책을 볼 시간은 거의 없다"며 "일하면서 책을 실컷 만질 수는 있다"며 웃음을 보였다.
 박 회장을 비롯 이 날 김미선(42) 총무, 허영희(44)회원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들을 포함해 현재 25명의 성인자원봉사자들이 도서관을 움직이는 윤활유 역할을 해오고 있다.
 
   
▲ 울산외고 1학년 학생들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영어구연동화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 청소년, 꿈을 펼치다
이곳의 또 다른 특징은 청소년 재능기부 프로그램에서 발견된다.
 박미경 사서가 기획, 지난 해 처음 시작된 청소년재능기부 프로그램은 울산외고 1학년 학생들이 '동생들에게 들려주는 세계동화책여행'이라는 이름의 영어구연동화 수업을 하게되면서 시작됐다.
 "매번 책만 읽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 것보다 도서관에서 의미있는 일들을 하고 싶었다"는 최재란 학생을 비롯한 4명의 울산외고 학생들은 올해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학생들이 직접 강의계획서부터 수업준비까지 하는 것으로 6~10세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직접 청소년들이 강사로 나서 수업을 진행한다. 지난해에는 청소년들이 적극적으로 프레젠테이션 자료까지 만들어 와서 직원들조차 놀랐다는 후담이다. 지난 강의의 반응이 좋자 올해는 수학, 종이접기, 세계동화수업 등 4개의 강좌로 그 수를 늘렸다.
 
# 다채로운 신간·정기간행물의 향연
   
▲ 어린이자료실 서가증설로 자원봉사자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옷을 갈아입고 장갑을 낀 채 자원봉사자들을 돕는 김창헌 관장의 모습이 익숙하다.

염포양정 도서관은 또 주민들의 요구에 참 민감한 곳이다.
 개관한지 불과 2년째이지만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지금까지 여러 차례 그 모습을 변해오고 있는 염포양정도서관. 그 변화는 현재에도 진행형이다.

 개관 첫 여름. 도서관에는 음식을 먹을 공간이 없었다. 이에 대한 주민들의 지적이 잇따르자 도서관은 2층 휴게공간에 테이블과 의자를 마련해 식사공간을 만들었다. 문제는 겨울이었다. 여름이면 2층 옥외휴게실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지만 겨울에는 식사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이에 도서관은 다목적실을 개방했다. 이처럼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엿보이는 변화들이 이어지고 있다.

 "자판기 설치, 다목적실 개방 등 주민들이 요구하는 사안은 언제라도 들으려고 노력하지만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다 해드리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도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으니 이용자 여러분들도 만족스럽게 저희 도서관을 이용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박미경 사서의 이용자에 대한 진심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도서관의 본연의 역할인 장서확보를 위해서도 애쓰고 있다. 현재 장서보유량은 3만권을 넘었고 발빠른 신간구비를 위해 신청자들의 요구를 신속히 들어주고자 노력한다고. 얼마 전에는 장서확보를 위한 시설도 증설했다.
 사실 이 도서관의 가장 큰 장점은 이용자들이 각종 신간과 새로운 정기간행물들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이곳 염포양정도서관 종합자료실에서는 실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신간들과 다른 곳에선 만나기 어려웠던 여행간행물 <투어드몽드>, <보보담>, <산>, 문화예술간행지 <객석>, <씨네21>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케케묵은 옛 고서의 향을 맡을 수는 없지만 신간이 주는 산뜻한 책의 향도 그만의 매력으로 다가오는 염포양정도서관. 겉모습은 새옷을 입었지만 이곳에서도 역시 도서관의 내일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많은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즐겁게 자신의 자리에서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이 지역을 대표하는 지식의 쉼터로 자리매김할 날도 멀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맥가이버' 김창헌 관장]

"이용자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발 벗고 뛰겠습니다"

 지난 8월 염포양정도서관의 관장으로 부임한 김창헌 관장.

   
 

 그의 도서관 철학은 한 마디로 "이용자 없는 도서관은 죽은 도서관"이다. 27년간 행정가로서 쌓은 내공에서 나온 살아있는 철학이다.
 "다른 건 몰라도 주민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일해 왔다"고 자부할 정도로 이용자들을 위한 그의 자세는 도서관 내외부를 가릴 것 없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내적으로는 직원들과 함께 주민들이 요구하는 프로그램 개발, 신간도서의 구비에 힘쓸 뿐 아니라 외적인 문제해결에도 늘 발 벗고 나서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는 도서관 진입로가 불법주차 차량들로 인해 차들이 통행을 하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는데 이 길 위에 소위 '오뚜기' 주차금지 설치물을 손수 세워 이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다.
 도서관 여건상 유일한 남자 직원인 김 관장은 어느덧 궂은일은 도맡다시피 하는 '맥가이버 관장'이 된 것이다.
 염포양정 도서관을 "주민들이 찾고 싶은 도서관, 하루 종일 즐겁게 머물다 갈 수 있는 도서관"으로 만들고 싶다는 김 관장의 바람은 주민들을 위해 일한다는 그의 마음가짐때문이라도 꼭 이뤄질 거라는 미더운 마음이 절로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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