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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발행된 후 특별한 광고와 홍보 없이 그저 책의 힘만으로 입소문이 퍼지며 '친구와 연인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소설'로 자리매김한, 지금까지 롱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확고히 지키고 있는 소설이 있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작가의 경험을 통해 생생함이 더해진 라디오 구성작가와 PD라는 직업의 생동감, 현장감이 느껴지는 여의도, 광화문 등 서울이라는 배경과 더불어 한번쯤 사랑에 실패해본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사랑을 시작하는 용기를 따스한 시선과 달콤한 스토리에 녹여낸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독자들은 그다지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던 '이도우'라는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한 기대감과 갈증을 느껴왔다.


 2012년, 오랜 숙성의 시간 끝에 이도우의 새로운 장편소설이 발표됐다.


 <잠옷을 입으렴>은 달착지근한 로맨스는 아니겠지만 저자 이도우의 필체에서 탄생한 따스하면서도 쓸쓸한, 그렇지만 이도우라는 작가이기에 그려낸 아름다운 성장소설이다.


 <잠옷을 입으렴>을 읽어나가면 이 작품의 3가지 개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인물. 이 작품은 주인공이자 화자인 고둘녕의 1인칭 시점 소설이다.


 그녀는 과거를 돌이켜보며 사랑했던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을 음미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작가는 그녀를, 그리고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너무나 섬세한 문장으로 그려나가며 둘녕의 눈에 비친 등장인물 모두의 가슴 속 가장 여린 부분을 살짝 엿보여준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전부가 마치 유리세공처럼 섬세하게 느껴질 정도.


 두 번째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소품.
 이 작품 속 주인공들에게 가장 소중한 추억의 촉매는 다름 아닌 책이다. 그리 많은 책을 볼 수 없었던 어린 시절, 수도 없이 읽고 또 읽으며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던 클로버문고, 계몽사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ABE, 지금과는 달랐던 한글표기법, 책속에 담겨 있던 삽화….
 이 작품 속에서 책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두 소녀의 유대이자, 추억이자, 성장을 표현하는 중요한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수탉풍향계, 둘녕의 섬세하고 마술 같은 손길에서 만들어지는 옷감 작품은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마지막으로 작품 속의 배경을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하는 이도우 작가의 신작답게 이번 작품에 등장하는 '배경'은 이야기를 아름답게 채색한다. 이제는 추억으로 변해버렸지만 새로운 터전을 향한 첫 걸음이 되어주던 통일호 열차. 들판에 수없이 피어나지만 네 잎을 찾기는 어려웠던 클로버, 유리로 된 우유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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