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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북서부, 바다라고 착각할 만큼 넓은 황토 빛의 톤레삽 호수 인근 정글에 한 왕국이 있었다.
 9세기에 나타난 이 왕국은 약 600년간 존재했고 한때 라오스, 태국 베트남, 미얀마 등까지 다스리다가 15세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바로 크메르 제국이다.
 크메르 제국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앙코르 와트를 비롯해 100여개의 사원과 신전을 남기는 등 화려하면서도 신비로운 앙코르 문화를 꽃피웠다.
 인간의 손으로 빚어진 신들의 세계, 잊혀진 크메르 제국과 앙코르 문명을 지금 만나보자.

   
앙코르 와트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 중 한나로 꼽히며 앙코르 문화의 결정체라 할 만큼 화려하고 섬세하다. 사진은 학자들이 도서관으로 추정하고 있는 건물.

 
#인간이 만들어낸 불가사의, 앙코르 와트
앙코르 문명을 이해하는데는 두 명의 왕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크메르 제국의 번영을 이끈 수리야바르만 2세와 자야바르만 7세로 이들은 앙코르 문명의 절정으로 꼽을 수 있는 앙코르 와트와 거대한 도시 앙코르 톰을 세운 주인공이다.
 앙코르 문명의 대표적인 사원으로 꼽히는 앙코르 와트는 앞서 밝혔듯이 수리야바르만 2세에 의해 세워졌다.

   
앙코르 문명의 대표적인 사원으로 꼽히는 앙코르 와트는 동서로 1.5km, 남북으로 1.3km 로 앙코르 지역에서 가장 큰 사원이다.

 와트는 사원이란 뜻으로 앙코르 와트를 해석하면 '도시 사원'을 의미한다.
 크메르 제국은 인도의 힌두교를 받아들여 전통적으로 파괴의 신으로 불리는 시바신을 숭배했다. 하지만 수리야바르만 2세는 당시 혼란한 국내외 정세를 안정시키기 위해 유지의 신인 비슈누 신을 신봉했다.
 그는 국권 정당화와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비슈누 신을 신봉하는 앙코르 와트를 37년간 2만5,000여명을 동원해 건설했다.
 해자까지 포함한 사원의 크기는 동서로 1.5㎞, 남북으로 1.3㎞로 앙코르 지역에서 가장 큰 사원이다.
 힌두의 소우주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앙코르 와트는 당시 우주의 중심으로 여겨진 메루산(중앙탑)을 중심으로 우주를 둘러싸고 있는 산맥을 성벽으로, 산맥을 큰 해자가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다.
 이 해자는 고해의 바다로 해자를 건너면서 마음 속의 증오, 불만, 자만, 죄악 등 모든 것을 버리고 순결하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신을 만나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 의미와 함께 해자는 이 건축물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앙코르 와트는 쿨렌산에서 옮겨온 회색사암으로 지어졌는데 돌을 쌓아서 세우다 보니 자꾸 무너져 내렸다. 그 이유는 사원이 세워진 장소가 바로 늪지 위이기 때문. 이 해자를 통해 수위를 조절함으로써 안전하게 건축을 할 수 있었단다.

   
앙코르 와트에서는 벽에 부조된 힌두 신화들이 두루마리 그림처럼 끊임없이 펼쳐진다. 이 때문에 신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경전처럼 느껴진다.

 독특한 건축기술이 빚어낸 신비로움도 있지만 1,850여개에 이르는 압살라(춤추는 여신) 부조 등 각종 부조들이 예술성을 더해 앙코르 와트를 더욱 가치있게 빛내고 있다.
 앙코르 와트의 하이라이트는 회랑의 사암벽에 그려진 아름다운 부조.
 앙코르 와트는 중앙탑에서부터 세 개의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세 번째 회랑의 부조는 2m 높이에 모서리 전각을 제외한 전체 길이가 600m에 이른다.
 왼쪽 모서리 전각에서 시작해 라마야나의 대서사시 '랑카의 전투'부터 우측으로 돈다.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탑으로 들어가는 4개의 입구를 중심으로 총 8개의 주제가 펼쳐진다.
 동쪽 벽면은 희망, 생명, 천지창조를 의미하는 우유의 바다젓기를 조각했고 서쪽은 죽음, 절망 등 랑카의 전투와 쿠륵세트라의 전투장면을 조각했다. 북쪽은 신들이 사는 곳, 신들의 이야기가 표현돼 있고 남쪽은 왕의 행진 장면과 지옥의 모습이 생생하게 조각돼 있다.
 이 부조들은 비슈누의 영광과 수리야바르만 2세의 신성한 권위 그리고 전쟁의 정당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거대한 도시, 앙코르 톰
수리야바르만 2세의 사후, 크메르 제국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권력다툼과 참파 등의 공격으로 혼란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크메르 제국에 다시 한번 최고의 전성기를 안겨준 인물이 바로 자야바르만 7세다.
 자야바르만 7세는 신의 도시로 건설된 왕도가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에서 교훈을 얻어 성곽을 한층 굳건히 한 새로운 도성 건설에 착수했다.
 그는 국토를 수복한 첫해에 타프롬을 짓고 이어 프레아 칸을 지었다. 그리고 그곳에 임시 왕궁을 만들었는데 이렇게 탄생한 것이 오늘날의 앙코르 톰이다.
 앙코르 톰은 앙코르 와트와 함께 앙코르 문화의 쌍벽을 이루는 곳으로 손꼽히고 있다.
 앙코르 톰은 한 변이 약 3㎞인 정사각형 모양의 지면에 높이 8m의 성벽, 너비 113m의 해자로 둘러싸여 있는데 동서남북 네 개의 대문과 바깥 세계와 연결되는 승리의 문이 있다.
 관광객들은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남대문으로 들어갈 수 있고 곧장 북쪽으로 1.5㎞ 가면 앙코르 톰의 중심 바이욘 사원이 있다.
 바이욘은 그동안 힌두교를 숭배했던 것과 달리 불교사원이다. 불교를 숭배한 자야바르만 7세는 어지러운 세상을 불교의 자비심으로 평정하고자 했다.
 사원에는 54개 탑에 200여개의 부처님 얼굴이 조각돼 있는데 이는 보는 사람의 각도와 빛의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표정이 온화해 '크메르의 미소'또는 '앙코르의 미소'로 불리기도 한다.
 부처의 얼굴은 사원을 지은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는 설도 있지만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앙코르 국립박물관
이러한 고대 크메르 제국의 문명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 앙코르 국립박물관.
 앙코르 국립 박물관은 고대 크메르 제국의 예술품과 국보급 유물들이 전시된 박물관으로 종합갤러리를 비롯해 △갤러리 A 크메르 문명 △갤러리 B 종교 및 신앙 △갤러리 C 크메르의 대왕들 △갤러리 D 앙코르 와트 △갤러리 E  앙코르 톰 △갤러리 F 암석 스토리 △갤러리 G 고대복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종합갤러리에서는 고대 크메르 문명과 현대의 캄보디아를 연결해주는 중대한 역할을 한 불교를 보여주는 공간으로 1,000개의 불상이 전시돼 있다.
 갤러리 A 크메르 문명에서는 크메르 제국의 기원에 대한 스토리를 담고 있고 갤러리 B 종교 및 신앙에서는 수천년 동안 앙코르 문명을 움직이던 독특한 민간 설화를 감상할 수 있다.
 갤러리 C 크메르의 대왕들은 자야바르만 대왕 2세, 야소바르만 대왕 1세, 수리야바르만 2세, 자야바르만 7세 등 크메르 제국을 세계 최고 문명으로 이끈 4명의 위대한 대왕을 소개하고 갤러리 D 앙코르 와트는 앙코르 와트를 보다 가까이서 보고 거대한 도시가 어떻게 건립됐는지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갤러리 E 에서는 서민용 저수지 등 대규모 프로젝트를 포함한 기반시설 공사를 위한 고대 공학을 볼 수 있는 한편 디자인 및 수공예품을 통해 종교와 신앙에 대한 변화를 한 눈에 살필 수 있다.
 
#주변 볼거리

   
와트마이는 킬링필드 대학살 당시 씨엠립과 유적지 인근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해골을 모아놓은 사원이다.

크메르 제국의 역대 왕들은 자신의 위대함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 경쟁하듯이 사원을 건설, 1,000여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사원들이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다. 비슷비슷한 모습의 유적을 모두 둘러보는 것이 힘들다면 앙코르 와트, 앙코르 톰과 함께 3대 앙코르 유적으로 손꼽히는 타프롬은 꼭 찾아보자.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영화 <툼레이더>의 배경으로 더욱 유명세를 탄 타프롬은 자야바르만 7세가 앙코르 톰을 만들기 전에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불교사원이다.

   
영화 <툼레이더>의 배경지로 유명세를 탄 타프롬 사원. 숲 속에 거의 허물어진 석재들이 쌓여있고 나무의 뿌리가 건물 외벽을 감싼 광경이 신비롭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하고 절절한 그리움으로 지은 탓인지 '통곡의 방'에서는 박수를 세게 쳐도 울리지 않던 방이 부모님을 생각하며 가슴을 두드리면 큰 울림이 있는 진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와트마이는 킬링필드 대학살 당시 씨엠립과 유적지 인근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해골을 모아놓은 사원이다.
 1975년 폴 포트가 이끈 크메르 루주 정권이 집권한 후 4년 동안 150만 명 이상의 캄보디아인이 학살됐는데 대부분 지식인과 기술자가 무참히 죽임을 당했다. 이것이 후에 <킬링 필드>라는 영화로 제작돼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됐다.


 크메르 제국이 남긴 흔적들은 사람의 손으로 빚은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한마디 감탄사 조차 쉽게 나오지 않는 위엄과 신비로움을 자랑했다. 신화의 대서사시가 생생하게 펼쳐진 앙코르, 신들의 도시로 불리는 이 곳에서 복잡하고 어지러운 속세의 사정을 잠시 내려 놓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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