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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외관·오랜역사 자랑
경주를 찾았다.
아침부터 쏟아진 비가 성가셨지만 경주IC 톨게이트를 지나자마자 마주친 비를 머금은 소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청명한 풍경에 귀찮았던 마음은 절로 풀려 버렸다 .
 도시 전체가 유적의 보고인 경주는 고도제한법 덕택에 높은 건물이 거의 없다. 사람의 눈은 확실히 둥글고 낮은 것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인지 삭막한 도시에 적응돼있던 눈과 마음이 나지막한 봉분과 키 낮은 소나무들을 마주하자 어느덧 편안해진다.
 오늘 찾게 된 경주시립도서관 본관은 이처럼 둥글고 낮은 어머니의 품과 같은 도시 경주  황성동에 위치해있다.

▲ 설립당시 한국 고유의 미를 살린 외관과 근방에서는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경주시립도서관. 사시사철 아름다운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 외관도 그때마다 느낌이 다르다.
 비가 질퍽거렸지만 물기를 머금은 울창한 소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상쾌함을 느끼며 도서관에 들어서자 우선 그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은 한옥의 멋을 살린 외관과 황성공원 등 주변 풍광으로 일찍이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최자숙 사서과장은 90년대 초 개관 초창기에는 외관 때문에 박물관으로 오해를 사 도서관에 들어온 이들이 도서관은 어디냐고 물은 적도 있었다며 웃음을 지었다.
 게다가 경주시립도서관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경주만큼이나 그 역사가 깊다.
 우리나라 도서관 역사의 첫 페이지를 늘 장식하는 곳 역시 경주시립도서관이다. 1961년 2월 경주시립도서관의 전신인 경주읍립도서관 초대관장이었던 엄대섭 선생이 마을에 설치한 새마을문고가 그 연원이다.
 
# 한국 도서관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엄대섭 선생
엄대섭(1921~2009)선생은 새마을문고 창설자이자 독서를 통한 농촌계몽운동을 펼친 이로 한국 도서관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큰 인물이다.
 1951년 당시 경남 울산군에서 개인 장서 3000여 권을 토대로 사립 무료도서관을 세우고 인근 주민들을 이용하게 하는 한편, 군내 전 농어민을 대상으로 50여 개의 순회문고를 마련해 농어촌에 봉사했다. 이때 순회 문고함으로 폐품 탄환상자를 수집해 활용했다는데 이 탄환상자에 도서관 책 열 권 정도씩을 넣어 농어촌 주민들이 돌려가며 읽었다고 한다.
 그 뒤 울산도서관의 모든 도서 및 시설을 경주시에 기증해 경주 읍립도서관을 세우고 10년간 관장직을 맡았다. 한국도서관협회 사무국장직을 맡은 뒤 연세대에서 도서관학을 연구하면서도 '책보내기' 운동은 계속했다.

▲ 부산에서 이곳까지 와서 재능기부봉사를 하는 김미경강사의 영어교육 수업.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다.


 1960년 '탑리문고'를 전국에서 처음 설치하고 그 해 12월 '마을문고 아이디어'를 창안해  1961년 경주의 새마을문고를 열었는데 이 새마을문고 역사가 곧 경주의 도서관역사다.
 1953년 읍립 도서관으로 출발한 경주시립도서관은 1976년 중앙일보사가 회사 창립기념사업으로 도서관 건물을 지어 경주시에 기증하면서 건물 이전과 함께 경주 중앙도서관으로 설립됐다.
 그 후 1989년 현재의 황성동 도서관을 건립하면서 경주시립도서관으로 명칭이 변경되며 현재에 이르렀다. 본관에는 일반자료실, 어문학자료실, 연속간행물실, 참고자료실, 어린이 열람실과 이동도서관이 있으며 중앙분관(사정동)에는 신문자료실과 일반자료실이 운영되고 있다. 분관으로 감포읍민도서관, 건천, 안강 읍민 도서관 등이 있다.
 
# 시대에 발맞춰 변화
오랜 역사가 쌓여온 곳인 만큼 그간 참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최자숙 사서관장은 그 동안 경주도서관이 겪어온 변화에 대해 "과거의 도서관은 책을 많이 소장하고 읽게 한다는 도서관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고자 노력해왔다면 지금은 지역 주민의 문화적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곳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주민들이 꾸려가는 뽀로로 동극단, 본관 입구 한 켠, 도서관 자료실 한 켠을 늘 전시문화공간으로 사용해온 점, 도서 재기증 사업 등 지역 주민들이 문화예술을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았다.
 앞으로도 천년 고도의 지식·지혜의 보고라는 특색을 살려 보다 특화된 자료를 제공하고 경주의 역사와 문화와 관련된 각종자료를 갖춘 경주역사문화정보센터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이어 나갈 것이라 기대해본다.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신은영 사서]

페이스북에 봉사활동 안내글 올려
원어민 강사 재능기부로 영어강의

인구는 울산에 비해 훨씬 적지만 교육열은 높기로 소문난 곳 경주.
 그래서일까. 경주시립도서관의 교육프로그램은 울산 네 곳의 공공도서관만큼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게다가 아직 울산의 도서관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수준 높은 영어강의 등을 만날 수 있었다. 원어민 영어수업 뿐 아니라 해외원서 강독과 같은 양질의 강의가 지역 내 거주하는 원어민과 강사들의 재능기부로 이뤄지고 있었다.
 이 모든 수업을 기획하고 꾸려나가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이가 바로 신은영 사서.
 신 사서가 처음 원어민 영어스토리텔링을 기획한 것은 아니었다.
 수년 전 캐나다에서 온 원어민 강사 Sunny Kurtie(56)가 처음 자신이 자원봉사로 영어강의를 하나 맡고 싶다고 의견을 밝힌 데서 시작된 강의가 현재 이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Jessica Bigelow(25)까지 재능기부봉사 바통이 이어지고 있다.
 원어민 강사를 찾는 것은 어떻게 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신 사서는 이를 위해 직접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영어를 특출나게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어민 강사에게서 페이스북 활용법을 배우기 시작한 것.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도서관 영어강의 봉사활동 안내 글을 올리면 이를 읽고 여러 원어민들이 신청글을 올리면 이들과 약속을 잡는 식이다.
 신 사서는 자신도 도서관 내에서 진행하는 영어원서 강독수업을 듣거나 교육에 참여하는 등 현재도 틈틈이 영어공부를 병행하는 열정이 넘치는 사서다.
 그를 비롯한 이 곳 사서와 직원들의 이러한 열정 덕분에 오늘도 경주시립도서관은 더 나은 곳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박청애 관장]

"안방처럼 편안한 공간 만들 것"

지난 해 경주시립도서관의 수장이 된 박청애 관장의 첫 인상은 '변화에 대한 열정과 의욕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경주시립도서관을 안방처럼 편안하게 책 읽는 공간으로 꾸려나가고 싶다는 박 관장에게 도서관은 익숙한 곳이다. 책이 빼곡히 꽂힌 그의 서가에서는 손에서 늘 책을 놓지 않는다는 평소 그의 습관이 그대로 묻어났다.
 문화에 대한 애정과 교육열이 유독 높은 경주 시민들을 위해 앞으로도 도서관 장서 확보뿐 아니라 각종 교육프로그램, 문화강좌마련에도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그는 유명한 책벌레이지만 사실은 행정가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행정가로서의 역량을 살려 내부 인테리어에 대한 문제 등 도서관 내부 뿐 아니라 유관기관과의 협조도 잘 이끌어내 도서 재기증사업 등 지역 사회에 도서관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하고자 늘 노력해왔다.
 이처럼 도서관의 전체운영방향, 본연의 기능, 타도시에서 온 기자에게도 친절하게 홍보까지 세심한 노력을 기울이는 박 관장을 보니 경주도서관의 미래, 나아가 경주의 미래도 밝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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