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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리문학관 3층에 마련된 열람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풍광에 눈과 속이 시원하다. 평일 아침 도서관을 찾았기 때문인지 평소 발디딜틈 없는 도서관이 이 날은 한적했다.

# 푸른 바다를 향해 활짝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중2동 1483-6번지. 푸르른 수평선을 자랑하는 해운대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이곳에 한 추리전문도서관이 있다고 해서 얼마 전 이곳을 찾았다.
 달맞이언덕에서 한 5분쯤 벚꽃세례를 받으며 걸었을까. 비탈길로 보이는 언덕에 '추리문학관'이라는 건물이 하나 나타났다. 현대적인 외관과 달리 막상 1층에 들어서니 아늑한 까페가 일행을 맞았다.

 올해로 개관 20주년을 맞은 이곳 추리문학관은 <여명의 눈동자>, <제5열> 등으로 유명한 추리소설가 김성종씨가 1992년 3월 사재를 출연해서 만든 국내 유일의 추리문학전문 도서관이자 북까페로 유명한 곳이다.

 북까페로 꾸며진 1층에 들어서면 주인의 취향을 알법한 난향이 코를 알싸하게 찌른다. 그 향이 너무 강해 난향인줄도 모를 만큼 다양한 종의 난과 실내 조경식물들이 까페 안을 가득채우고 있다.
 한번 방문했을 때 5,000원만 내면 다양한 종류의 허브차나 커피와 같은 음료가 제공되고 그날 하루 간 마음껏 이곳의 책이며 잡지 등을 볼 수 있다. 

 추리문학관은 부산의 전문도서관 제1호로 등록돼 있을 뿐 아니라 지상 5층, 지하 1층 규모에 좌석수 315석이며, 2012년 현재 추리소설 1만 7,000권, 일반문학서 13,500권, 인문사회과학서 7,500권, 아동도서 및 참고도서 3,500권, 기타 외국원서 등이 6,100권으로 장서가 모두 4만 7,600여권에 이른다.

 이 곳에 소장된 책들을 둘러보다보니 비단 추리소설 뿐 아니라 평소 접하기 힘든 외서와 외국잡지들이 많다. 영미권 뿐 아니라 프랑스 등 유럽권의 자료들도 눈에 띄었다. 개중 몇 권을 보다보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흘러 책을 내려놓고 다시 도서관 구경에 나섰다.

 1층을 비롯한 5층까지 모두 안락한 의자와 각종 신문, 잡지 및 도서가 비치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대형창문을 통해 해운대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은 점이기도 했다.
 특히 '셜록 홈스의 집'으로 이름한 1층의 북까페는 앞서 얘기했듯 독서와 함께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또한 《안네의 일기》의 작가 안네 프랑크,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시몬 드 보부아르, 에밀 졸라 등 세계문학사에 빛나는 113명의 세계유명작가사진전을 이벤트로 상시 개최하고 있다.
 개관시간은 오전 9시, 폐관은 오후 6시로 주말 쉬지 않고 평일처럼 문을 연다. 다만 1층 열람실은 오후 9시까지 이용이 가능하다.

▲ 추리문학관 1층에는 아늑하고 아름다운 까페가 자리잡아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색있는 내부 인테리어 탓에 이곳을 방문하는 많은 관람객들이 셔터를 누르느라 여념이 없다.

 
# '여명의 눈동자' 김성종씨 설립
1층이 아늑한 북까페라면 2층으로 올라서는 계단부터는 본격적인 추리문학 전문도서관이 시작된다.
 서가에 꽂혀있는 제목을 굳이 보지 않더라도 건물 내부의 나선형으로 올라가게끔 설계된 계단이나 어두운 조명, 각종 추리관련 소품으로 장식된 인테리어는 그 자체로 미스터리한 추리문학의 세계로 안내하는 듯하다.

 2층으로 올라서면 코너 한 켠에 마련된 시가, 셜록홈즈가 자주 썼을 법한 빵모자나 원서들을 비롯한 인테리어 소품들 역시 보고 있노라면 추리소설 속 한 장면이 연상된다.
 이 소품들은 그간 김성종 작가가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20년간 사거나 모은 것으로 까페의 분위기를 더욱 앤틱하고 감성적으로 만들며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위에서도 언급한 각 층으로 올라가는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세계문학 거장의 사진 하나하나도 사실은 그의 손으로 직접 수집한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추리문학관 곳곳에는 김성종 작가의 숨결이 배어 있다.
 언젠가 소설가 문성수는 김성종 작가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그는 나이가 없다. 나이가 없으니 언제나 청춘이다. 늘 무언가 열정적으로 꿈꾸고 구상하고 작품 쓰는 일이 하루의 전부다. 계속 출간되고 있는 장편추리소설이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정열을 말해준다. 또한, 그는 장강(長江)과 같다. 함부로 감정에 출렁이지도 않고, 세파의 격랑에 일렁거리지도 않는다. 오로지 깊고도 먼 강으로만 흐른다. 그러니 그는 영락없는 소설가일 수밖에 없다."

 사실상 추리문학관이 건립될 수 있었고 20년이라는 세월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것은 그런 그의 열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도서관을 구석구석 들여다볼수록 이를 더 확신할 수 있었다.
 특히 3층부터 5층까지는 주로 여행을 좋아하는 관장 김성종 작가의 취향이 반영된 듯 흥미로운 여행서적들을 위한 공간이나 철학서, 미학 및 예술서적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와같은 양질의 책들을 선택해서 소장하고 있는데서도 작가의 이 곳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 사립 전문도서관 없는 울산
추리도서관이 애초 이곳을 찾았을 때의 기대보다 훨씬 괜찮은 공간이다보니 울산에는 아직 개인이 이런 사립전문도서관이 없다는 게 참 아쉬운 대목이기도 했다. 우리 이웃동네 부산에서는 이미 20년전에도 누군가 이런 곳을 설립했다는데도 말이다.

 사실상 공공도서관 못지 않게 중요한 곳이 바로 이 사립전문도서관이다. 많은 도서관들 가운데 특히 전문분야의 지적 자산을 축적하고 있는 추리문학관 과같은 사립전문도서관은 사실상 국가가 일일이 설립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곳이 그간 김종성 작가의 애정과 손떼로 이렇게 유지되어온만큼 각 방면의 전문가가 애정과 의지를 갖고 전문도서관을 설립운영하지 않으면 그 활성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건축 미술 음악 영화 사진 철학 의학 등 각 분야의 전문도서관들이 설립된다면 그 자체가 바로 한 도시 나아가 한 국가의 축적된 지적자산으로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점에서 추리문학관이 오랜 출판계의 불모지이자 여전히 16개 시도중 가장 적은 도서관 수를 보유한 울산에게 주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크다.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가질수 있었던 것은 그간 울산의 공공도서관 취재를 통해 만났던 울산의 많은'도서관인'들의 열정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열정의 불꽃이 꺼지지 않은 채 계속 타오른다면 언젠가 우리 울산도 이렇게 자랑스러운 전문도서관을 하나쯤은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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