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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형서점과 인터넷서점에 밀려 지역의 작은 서점들이 그 자취를 감춰버린 요즘 지역내 가장 오랜 향토서점인 처용서림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여기에 최근 서점의 불모지인 울산에 지역환원형 대형서점인 반디앤루니스가 들어와 복합문화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해내고 있다.
깊은 세월이 만들어낸 그윽한 지성을 보여주는 처용서림과  최신 정보가 현대적인 공간에 가득찬 반디앤루니스는 전혀 다른 모습의 서점이지만 결국은 책을 통한 문화공간으로의 변화를 꿈꾸고 있는 서점이라는 같은 지향점을 향해 있다.
또 여기에 소개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꿋꿋하게 울산의 책 읽는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는 100여곳에 달하는 울산의 서점들에게도 힘찬 응원을 보낸다. 하루빨리 이곳들이 책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때문에 다시 분주해지기를.

# 39년간 한 자리를 지킨 울산의 대표향토서점 '처용서림'
울산시 남구 신정4동 1233-1번지. 처용서림이 이곳에서 자리를 지켜온지 어느덧 39년째다.
 지난 2009년 50여년의 전성기를 누렸던 문화문고가 문을 닫으면서 지역내 서점으로는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게 됐다.



 사실 이곳 역시 지난해 38년전 이곳의 문을 연 故정종수씨가 투병중 사망하게 되면서 폐업의 위기를 맞았지만 평소 친분이 있던 손정선 현 대표가 이곳을 인수하면서 다행히 살아남게 된 것이다.
 손 대표는 만약 문화문고가 경영위기로 문을 닫지 않고 두 서점이 경쟁체제를 유지했다면 처용서림이 먼저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정도로 인터넷서점과 재벌형서점의 공세는 지역 내 작은 규모의 서점들이 발붙이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힘들고 어려울 것이 뻔한 서점업에 어떤 마음으로 뛰어들었냐는 질문에 그는 "출판업 자체가 사실 문화사업이므로 힘들 수밖에 없는데다 책을 점차 읽지 않는 풍토, 인터넷 서점 공세 등 어려운 요인이 산적해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처용서림은 직장을 접고 남은 평생을 의지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기에 이곳을 인수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자 모든 인수과정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정 전대표의 병원에서 간호를 하던 부인과 사업인수를 모두 마치고 몇 달만에 짐을 싸들고 울산으로 내려왔다. 몇 달만에 그는 다시 처용서림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의 열정은 함께 일하는 직원 뿐 아니라 이곳을 찾는 오랜 고객들에게도 퍼져나갔다. 단골 할아버지 몇 분은 그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큰 용기를 갖고 다시 서점을 인수한 게 참 고맙다"며 "나도 자주 들러 책을 사줄테니 앞으로도 용기를 갖고 서점문을 오랫동안 열어달라"고 책을 한 보따리 사가기도 했다며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참 뿌듯하다고 했다.

 앞으로 처용서림을 어떻게 꾸려가겠냐는 질문에 그는 어차피 큰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 아닌만큼 일단은 '성실'과 '책'을 무기로 서두르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데 매진하겠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우선 손 대표는 '성실'하고 발빠르다. 서울에서 출판계 그 중에서도 홍보 마케팅 분야에서 이십여년을 몸담아왔다는 그는 단순히 서점안에 머물기보단 자신의 인맥을 활용한 적극적인 홍보활동에 두 팔을 걷어부쳤다. 취재차 그를 찾은 때 역시 서울에서 온 출판계사람들과 바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과의 인맥을 이어갈 뿐 아니라 직접 찾아다니는 홍보에도 소홀하지 않다.

 이 날 오후에는 울산마이스터고에 간다고 했는데 이는 책을 판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서울에서 내려온 취업소식을 발빠르게 전해줌으로써 이들이 나중에 필요한 기술서적을 이곳 서점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 올해로 39돌을 맞은 지역 내 가장 오랜 서점 '처용서림'. 깊은 세월이 만들어낸 그윽한 지성이 향기롭다.


 그렇다면' 책'은 왜 그의 무기일까.
 처용서림은 지하 1층 지상 1층의 작은 규모에도 국내외 도서 10여만권 넘게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기술서적이라는 주종목이 있다. 중부도서관에도 없는 전문기술서적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통해 보유하게 된 기술서적들이 많다. 또 그의 '오픈 사무실'에는 다양한 불교서적 및 인문서적들이 특화돼있는데 이곳에는 예전만해도 의자와 테이블을 마련해 동네 사랑방역할을 톡톡히 했던 곳이였다. 손 대표는 이곳을 앞으로 다시 과거처럼 고객들이 책을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장으로 변화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앞으로도 처용서림이 그동안 다져온 내실 외에 단순한 서점이 아닌 울산시민들의 사랑방공간, 시민의 마음속 한편을 차지하는 따뜻한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해 나가길 바란다.
 
# 서점 그 이상의 서점을 꿈꾸는 곳 '반디앤루니스'
최근 인터넷 서점이 출판계시장을 잠식해나가면서 오프라인 서점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는 요즘 교보, 영풍, 반디앤루니스와 같은 재벌형 서점들 마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런 대형서점들의 경우 단순히 책을 팔던 것을 넘어 저자사인회 및 강연회, 토크콘서트를 비롯해 심지어는 어학 강의와 같은 문화강좌까지 도입해 사람들의 발걸음을 끌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울산 롯데백화점 지하 1층에 위치한 반디앤루니스 울산점 역시 책만 파는 것이 서점이 아닌 다양한 문화사업을 펼치는 곳으로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
 서점 오픈식때는 마술공연을 선보이더니 얼마전에는 또 미혼모를 위한 잡지 키스의 출판기념회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이 뿐 아니라 토크콘서트, 저자강연회 거기에 각종 문화강좌가 모두 서점 한 켠에서 마련된다.

 그 중에서도 지난 해 7월부터 매주 토요일 진행되는 어린이를 위한 영어강의는 소위 대박을 터뜨렸다.
 어린이 코너 'kids world'에서 매주 토요일 3시부터 무료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4세~8세 아동을 대상으로 하지만 크게 나이제한 없이, 동화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나 부모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40분 남짓한 수업을 한번 들은 후 매주 바뀌는 동화를 듣기 위해 꾸준히 찾아오는 애들도 있을 정도라고.

 강의를 맡고 있는 스토리텔러 최혜원(31)씨는 "우연히 서점에 들러 1회성에 그친 수업일지라도 100% 다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영어공부에 동기부여가 되고 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하니 서점에 한번 쯤 들러 아이들과 유익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타 지역에 비해 서점수도 적지만 각종 문화행사도 드물었던 울산에서 무료 영어 스토리 텔링 수업 행사는 단비 같은 소식으로  그런 점에서 반디앤루니스 울산점은 단순히 책파는 가게가 아닌 지역 문화를 만드는 서점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 보유 서적이 약20만종 30만권으로 지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반디앤루니스 울산점. 매일 수많은 시민들이 편리하고 현대적인 시설의 이곳을 찾는다.


 김동경 점장은 앞으로는 영어강의에 이어 한자강사를 모집해 천자문 기초 등 어린이를 위한 한자수업을 추가하고 각종 음악 공연과 시, 소설 낭독 등이 합쳐진 '문학콘서트'나 토크콘서트 등도 시행할 것이라고 했다. 서점으로서 독자들을 위해 작품과 작품의 현장을 연결시켜줄 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행사도 자체적으로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김 점장은 또 "서점을 서점답게 만들면서도 서점 이상으로 만드는 것, 그게 내 꿈이자 철학"이라며 "앞으로도 문화공간이 부족한 울산에서 반디앤루니스가 독자들이 책을 보기 위해 찾는 편안한 쉼터이자 그 이상을 얻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꾸려나가고 싶다"고 했다.

 반디앤루니스가 더 특별한 이유는 교보나 영풍과 같은 대형서점들이 자체 총판사업을 하는 반면 이곳은 지역 총판으로 지역 경제를 우선 생각하는 판매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곳에서 발생한 수익은 본사로 직행하는 것과 달리 울산지역으로 환원된다는 이점을 지닌다.

 반디앤루니스 울산점이 '서점 그 이상의 서점'이 되겠다는 현재의 초심을 잘 유지해 울산의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날이 곧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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