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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중 한 곳인 비블링겐 수도원 도서관의 내부 홀. 천장에는 1744년 제작된 마르틴 쿠엔의 천장화가 그려져 있는데 '지식은 하늘, 곧 신으로 이르게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각국의 국립도서관이 그 나라의 미래를 보여주는 곳이라면 수도원 도서관은 과거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우리나라 여행 안내서에서 도서관은 크게 조명받지 못한 경우가 많지만 중세 시대만해도 지식인들이 여행에서 가장 먼저 찾는 곳은 도서관이었다. 당시 귀족, 성직자, 학자들의 도서관 순례는 지식과 교양을 재충전하고,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며 영혼의 요양을 겸한 여행으로서 그들에게는 지적인 만족을 주는 행사였다. 어쨌든 한국 여행 책자에는 독일 남부에 있는 울름 시를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첨탑을 가진 대성당이 있는 도시'라는 짤막한 문구로 소개하고 있지만 사실 이 도시에서 가장 볼만한 곳은 따로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도서관, 비블링겐 수도원도서관이 그곳이다.

 

# 한 나라 역사·문화 지탱
울름 시내에서 근교로 빠져나오면 조그마한 동네 비블링겐이 나온다. 바로 이 작은 마을에 옅은 분홍색 벽에 주황색 기와로 덮인 성채같은 수도원이 우뚝 서 있다. 궁전을 방불케하는 메인 홀은 길이 23미터, 폭 12미터 타원 형태로, 복층 구조이며 화려한 문양들로 채색된 서른 두 개의 기둥으로 둘러싸여 있다. 황금색과 푸른색을 띠고 있는 이 기둥들은 모두 자체적으로 광채를 발하는데 모두 목재로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 대표적 바로크 양식 건축물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외관은 새롭고 근대적이며 대표적인 수도원 건물로서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건축물 중 최고로 손꼽힌다. 내부에는 독창적이고 화려한 가구와 부속품을 설치하고 당시 유럽 최고의 화가 쿠엔이 그림을 그리고 조각가 도미니쿠스 헤르베르크가 조각상을 만들어 수도원의 품위를 한 단계 높였다. 그후 수도원은 다시 야누아리우스 지크에 의해 내부를 다시 고풍스러운 스타일로 수리해 마침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그 이름을 새겼다.

 1층의 격자무늬 대리석 바닥위에는 우윳빛 광채가 나는 여덟 개의 여신상들이 있는데 모두 양손에 황금색으로 된 책 또는 지휘봉, 저울, 창, 올리브 가지 등을 들고 있다. 조각상에서 천장으로 시선을 돌리면 프레스코 화법으로 그린 성화가 보인다. 이론적이고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이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천국에 오르는 느낌이 든다. 이 작품은 1744년 당시 젊은 화가 마르틴 쿠엔이 그렸는데 '지식은 하늘, 곧 신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천장 그림에는 알렉산더와 아폴로, 디오게네스, 그리고 뮤즈의 아홉 여신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며, 아우구스트스에 의해 추방되는 오비디우스의 모습과, 596년 교향 그레고리 1세가 대영제국으로 향하는 광경, 1493년 베네딕트 신도들에게 미국으로 가라고 명령하는 스페인 왕의 모습, 그리고 수도사들이 야자나무 아래서 이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모습 등이 그려져 있어 그림 전체가 마치 한 권의 성경, 한 편의 신화 같다.

 2층으로 오르는 난간은 아래층에 있는 모든 예술품을 그 위로 끌어올리는 듯한데 입구 맞은펴 2층 중앙엔 이곳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황금 화관을 쓴 여신이 오른손에 타란한 지구를 들고 왼손으로 지구의 어느 곳을 가리키고 있다. 그곳은 깨끗한 신만이 알고 있다는 뜻이란다.
 
# 중세 도서관이 태어난 곳
중세의 도서관은 수도원에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역사의 거친 물결에서 소중한 지적 유산을 도피시키기에 가장 안성맞춤인 곳은 늘 수도원이었다. 우리의 경우 불교 사찰 등이 화재를 입어 소중한 역사자원이 소실된 경우도 많지만 해인사 팔만대장경 판처럼 그 유산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비블링겐 수도원 역시 그런 곳 중 하나다. 베네딕트 교단에 속하는 비블링겐 수도원은 1093년 신을 향한 경건한 위업을 쌓아 자신과 후손의 종교적 구원을 바라는 장소로 건립됐다.

 사실 수도원은 수도사 개인이 책을 소유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서욕을 충족시키려면 도서관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유럽 최초의 도서관은 수도원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수도원은 최초의 도서관일 뿐만아니라 학문의 메카로서, 4세기 말 고대 로마의 몰락 이후 12세기에 대학이 출현할 때까지 유럽문화의 중심이었으며 중세 서적문화의 거점이기도 했다.
 
# 전쟁·화재 등 수난사
아름다운 겉모습과는 달리 비블링겐 수도원도서관의 지난날은 전쟁과 화재 등 수난의 연속이었다.
 1721년 대화재를 겪었고, 1805년에는 건물이 붕괴하는 바람에 소유주가 바뀌어 1822년까지 뷔르템베르크 백작의 거주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19세기 초에는 나폴레옹 군대가 수도원을 폐쇄하면서 건물이 훼손되고 수많은 자료들이 군인들에 의해 약탈당했다.
 또 제2차 세계대전때는 이곳이 연합군의 주둔지로 정해져 도서관의 장서들이 무지한 군인들에 의해 남획되거나 훼손되었고, 상당수의 귀중본들은 승리자의 전리품이 되어 미국, 영국, 프랑스 등으로 반출됐다.
 
# "지식은 곧 신에 이르는 통로"
서양의 도서관은 주로 수도원을 중심으로 수도사들이 만든 필사자료에 의해 지탱됐다. 중세에는 책이라고 하면 당연히 손으로 쓴 필사본을 의미했 다. 수도원은 곧 책의 산실이었고 필경사들이 하나하나 손으로 만드는 만큼 책의 수량은 매우 적었으며 보물이나 마찬가지라 아무도 접근할 수 없었다.
 이런 책들은 수도사들이 책을 베끼는 필경(筆耕)이란 작업을 통해 이뤄졌다. '밭갈이'라는 말 그대로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음을 옛 필사본의 여백에서 볼 수 있다. '하느님, 어둠이 빨리 내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날씨는 춥고 방안은 침침하다. 오늘따라 양피지에는 잔털이 왜 이리 많은가' 따위의 낙서는 모두 필경사들의 작업 분위기와 고통을 호소하는 넋두리들이다.

 그들은 날마다 이어지는 고통스런 작업을 천국에 가기 위한 깨달음과 참회의 행위로 여겼다. 밭을 가는 것은 단지 육체의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이나 하느님의 말씀을 책으로 옮기는 것은 영혼을 살찌우는 거룩한 행위이기 때문에 어떠한 어려움도 참고 견뎌야 하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삽화도 더해졌는데 삽화란 라틴어로 '밝힌다'는 뜻이니 삽화가란 결국 '책에 빛을 부여하는 사람'이다. 아름다울수록 성스럽다는 믿음과 미의식은 책을 만들 때 세밀화를 기본으로 화려한 채색으로 치장토록 했다. 특히 수도원에서 만드는 보존용 성경과 중요한 책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성스러운 건축공간에 가장 잘 어울리도록 아름답고 화려하게 제작되었다.

 지식은 곧 신에 이르는 통로이므로 많은 책이 필요한 것은 당연했다. 따라서 도서관은 수도원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으로 어떤 수도원이든 도서관을 빼놓고는 성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요즘 우리는 시대가 변해 정보와 지식이 부를 창출하는 기반이 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중세 수도사들이 도서관은 신에 이르는 통도였다면 지금 위에게 도서관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각종 디지털화 된 자료의 홍수속에서도 여전히 책을 통해 습득하는 지식의 양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책이 지닌 힘의 역사가 길고 질긴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특히 가끔씩은 책 속에 파묻혀 위안을 삼는 우리의 모습은 수도사들이 영혼의 쉼터로 도서관을 여겼던 것과 그리 다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참고 최정태 <지상의 아름다운 도서관>·비블링겐 수도원 도서관 홈페이지(http://www.kloster-wiblingen.de)·사진출처= 비블링겐 수도원 도서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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