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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울산시 북구청과 이기철 시인의 손 아래 바다도서관이 새롭게 태어났다는 소식에 굵은 장맛비를 뚫고 이 곳을 찾았다. 실제로 가보니 이기철 관장의 말처럼 도서관이라 하기에는 규모가 작긴 작았다. 여름이면 피서객들의 안전과 편의시설을 책임지는 바다행정실 건물의 1층에 마련된 22평의 공간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기철 관장은 올해 5월 이곳의 변신을 책임지면서 이름부터 바꿨다.

 

 

   
▲ 바다를 품은 인문학 서재 '몽돌'은 바다·여행·울산지역 문학가의 작품으로 특화된 서재이지만 이기철 관장은 이곳을 단순히 책만 읽는 공간이 아닌 다양한 강좌, 전시, 공연 등을 접할 수 있는 '인문학의 산실'이 되기를 꿈꾸고 있다.

 

 

# 시인이자 울산 대표 문화기획자 이기철 관장
"협소한 공간과 책이 대여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도서관보다는 서재가 더 어울리는 곳이란 생각을 했어요. 특히 이 곳은 그간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적었던 곳이자 무엇보다 외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잖아요. 그런 이들에게 아직은 좀 딱딱한 도서관의 느낌보다는 내 집처럼 편안하고 자유롭게 머물 수 있는 서재란 공간이 더 편하게 와닿을 것 같았어요. 거기다 몽돌이라는 부드러운 이름까지. 듣기만 해도 좋지 않아요?"

 새롭게 바뀐 이름은 인문학 서재 '몽돌'.'몽돌'은 세월의 연마를 통해 그 모양이 둥글게 변하듯 인문학을 통해 인격을 수양하고 문화 자존감을 높이자는 큰 뜻을 담고 있다. 그동안 인문학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부족했던 울산에 작게나마 인문학의 산실이 되고 싶다는 그의 의지를 드러내는 셈이다.
 직접 본 몽돌은 인테리어만 봤을 땐 사진을 통해 본 바다도서관의 예전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늑하고 따뜻한 실내 인테리어는 여전했고 무엇보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정자바다의 아름다운 수평선도 매한가지였다. 이 날 바다는 흐리고 세차게 불어치는 바람에 파도는 들썩였지만 또 그만큼의 운치를 더해주었다.

 하지만 창밖에 내걸려있던 부채그림이며 책꽂이에 수줍게 놓인 차 잔 등의 도자기들을 보니 내부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전혀 다른 모습일 것으로 기대됐다.
 
# 복합문화공간 역할 '톡톡'
이기철 관장은 시인이자 울산의 대표적 문화기획자다. 그러니 이 곳을 어찌 책만 읽는 곳으로 놔둘 수 있었을까.
 이관장은 "기왕 이곳을 맡게 됐으니 그간 울산에부족했던 인문학센터 역할을 할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키고 싶었다"며 공간에 대한 포부를 전했다. 그리고 이 곳을 단순히 책만 읽는 서재가 아닌 인문학의 전반을 아우르는 공간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 돌입했다.

 몽돌을 찾은 날 처음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책꽂이 위 창문에 내걸린 부채그림들이었다. 정자바다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바람 부는 바다 - 부채전>이란 이름의 이 전시는 울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묵회 회원들이  개관을 축하하는 기념으로 마련했다.
 22평의 협소한 공간을 이렇게 알토란 같은 곳으로 활용하는 걸 보고 그동안 그가 이 분야에서 쌓아온 경험들이 이렇게 발휘되는구나 싶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개관일인 13일에는 오후 7시부터는 시노래패 '울림'의 시노래 공연과 장영수·이동현 마술사의 비둘기 마술 공연이 펼쳐지고 오후 7시30분부터는 심규명 변호사의 사회로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변호사인 박훈 변호사를 초대, 영화 '부러진 화살을 통해 본 한국 사회, 사법개혁의 문제'라는 주제로 기념 강연회가 열린다. 피서철인 7~8월에는 둘째, 넷째주 토요일마다 관광객들을 위한 가족영화관도 운영한다.
 
# 여행서·바다 관련된 책 등으로 특화
물론 서재다운 면모도 갖추었다. 현재 72㎡ 규모의 '몽돌'에는 1,700여권의 도서가 소장돼 있으며 아직 빈 서고가 많아 이 수는 더 늘것으로 보인다.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세 가지 특화된 주제서고다. 우선 바다에 접해있는 서재라는 특징을 살려 바다 관련 도서를 300여권 정도로 상당 부분 보유하고 있다. 이와함께 여행서적도 100여권 보유하고 있는데 책들을 구경해보니 모두 양질의 신간들이었다.

 이기철 관장은 "아무래도 이곳을 찾는 이들이 잠깐씩 머물며 책을 둘러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보니 이들을 위해 이런 책들을 마련했다"고 했다.
 또 그동안 따로 만나기 어려웠던 울산 문인들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코너도 마련돼 지역 인문학 서재로서의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 문화소외지역 사랑방 역할도

   
몽돌 도서관 내부.


서가 한켠에는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아동서, 학습서가 많고 소설류, 잡지 등도 공간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이곳은 그동안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던 동네주민들에게는 단순한 도서관 이상의 역할을 하는 기특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기철 관장은 "인근의 강동초, 강동중학생들은 그동안 근처에 갈만한 도서관으로 바다도서관이 유일했다. 때문에 이 아이들을 위한 책을 마련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실행된 것이 이정도지 사실상 그의 머릿속에는 더 많은 계획이 살아 움직인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는 "울산에서는 낯설지만 최근 전국적으로 불고 있는 북 순환 운동을 이곳에서 펼쳐 소장할 수 있는 책은 비록 부족한 공간이지만 많은 책을 들락날락 거리게 해 지역민들이 보다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꿈"이라며 "이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찾고 실천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의 공통점중 하나는 무슨 일이 생겨도 책부터 펴들고 보는 것인데 심지어 연애를 시작할 때 조차도. 이는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곳을 맡게 되면서 어떻게 공간을 바꿔나갈까 고심하던 중 여러 책을 접했다며 그 중 한권의 책을 보여주며 그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주었다.(그 글도 함께 지면에 싣는다.) 이처럼 무수히 많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는 매체가 생겼지만 책은 여전히 우리에게 밀도 있는 정보를 알려주는 인생의 멘토이자 조력자다. 앞으로 인문학 서재 '몽돌'이 바다를 찾는 관광객부터 이곳에서 자신의 꿈을 영글어가는 바다소년들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책, 그리고 인문학을 오래토록 이어주는 가두고 역할을 하길 바란다.

# 인문학 서재 몽돌에 가려면?
울산시 북구 산하동 367-17번지를 찾아가면 된다. 승용차로는 북구 정자 사거리에서 감포 방향으로 3분 거리에 있으며 버스는 411, 421 등이 운행된다. 개관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 7~8월에는 토·일요일도 운영.(법정 공휴일 휴무)

[이기철 시인이 꼽은 내게 영감을 준 책]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 어느 지하 생활자의 행복한 책읽기(윤성근·이매진출판)
인문학 서재 몽돌을 맡고난 이후 제일 큰 고민은 이 공간을 어떻게 꾸미고 운영해 나갈 것인가였다. 그러던 중 발견한 반가운 책이 바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다. 서울 응암동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는 주인장 윤성근씨가 자신의 헌책방을 소개한 책으로 주인장은 책을 사고파는 곳으로서의 책방이 아니라 사람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그리고 인문학의 열기가 피어 오른 곳으로 만들었다. 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요한 것이 뭔지 그리고 그 필요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지를 이 젊은 친구는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책은 나에게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책 속에 길이 있다'라는 말은 영원한 진리다. 울산은 인문학이 이제 막 언급되고 있다. 먹고사는데서 눈을 조금 돌리니 먹고 사는 게 다가 아닌 그 무엇인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 것이다. 난 인문학 서재 몽돌이 울산의 새로운 인문학 트랜드를 주도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동해안 바닷가 끝자락에 위치한 서재지만 이 곳을 기점으로 동해안 문화벨트를 구축하고 싶은 나의 바람과 고민을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은 단박에 해결해 주었다. 어이! 고마워. '이상한 나라의 헌 책방'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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