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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인 김잠출씨에게 그의 서재는 지난 30여년간 방송생활을 하는 동안 프로그램을 기획·구성하고 원고를 쓰며 세상과 소통해온 곳이다. 그는 창작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은 근원지이자 책 세권을 쓴 곳도, 밤이면 신문을 찬찬히 읽었던 곳도 바로 이 서재라고 했다.

방송인 김잠출 씨는 스스로를 두고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은 아니지만 읽는 것 자체를 무척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의 말을 대변하듯 그의 서재에는 희귀한 서적들과 겉이 너덜해진 양서가 가득했다. 드는 세월과 함께 버린 책들로 그는 이제 비록 장서가는 아니게 됐지만 애서가임은 분명했다. 주변에 책이 없으면 뭔가 허전하고 방송인이지만 늘 텍스트가 화두인 삶을 살아왔다는 김 씨의 책 얘기를 듣다보니 왜 이제야 이 서재를 오게 됐을까 조금의 후회가 밀려왔다.

 

# 울산서 나고 울산서 자란 울산 토박이
6일 울산 남구의 한 아파트에 있는 방송인 김잠출 씨의 서재를 찾았다.
 울산 강동에서 태어나 학성고, 영남대 국사학과, 동아대 언론홍보대학원(석사)을 졸업한 김 씨는 1985년 울산MBC에 입사해 기자와 PD, 정책기획, 기획특집부 국장, 미디어 센터장을 거쳐 최근 은퇴하기까지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하며 방송인의 삶을 살아왔다. 지금도 울산MBC라디오<시사매거진>의 진행을 맡고 있다. 그리고 그 세월동안 그와 함께 한 곳이 바로 그의 서재다.

  두 세평 정도의 좁은 공간인 이 서재에 들어가면 우선 큰 책장과 집필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공간은 비록 좁을진 몰라도 그가 지난 30여년간 방송생활을 하는 동안 프로그램을 기획·구성하고 원고를 쓰며 세상과 소통해온 곳이다. 그는 책도 세권 정도 냈는데 모두 이 서재에서 밤늦게까지 혼자 지내며 해낸 작업들이라고 했다. 그는 아파트에서 살다보니 그동안 한번도 마음에 드는 서재를 가져보지 못한게 아쉽다고 했는데 특히 거처가 곧 서재였던 조선시대 양반들처럼 나중에 새로 집을 짓는다면 한 20평 정도 넓은 서재를 둬서, 구석구석마다 책상이나 책을 쌓아두고 그냥 손가는대로 책을 읽고 뒹구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

 겸손한 그의 말과 달리 실제 그의 책장에는 깊이가 느껴지는 다양한 양서들이 꽂혀 있었다. 꽂힌 책들은 크게 세 분야로 나뉘어졌는데 하나는 그의 주 전공분야인 방송 언론 그 중에서도 저널리즘 관련 책들이 많았고 다른 한쪽은 학부시절 전공했던 한국사 관련 책들, 또 하나는 울산향토사 연구와 관련된 책들이었다. 공간은 비좁고 책이 많다보니 그는 한 칸 에 책을 3단으로 넣을 수 있는 특수책장을 짜서 책을 보관하고 있는 기지도 발휘했다.
 
# 어린시절 고전읽기 독서의 시작이자 인내심 훈련
그간 방송인으로서 다양하고 획기적인 기획을 특히 선보였던 그에게 독서는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 창작의 근원지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자신에게 독서는 그냥 습관이라고 했을정도로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늘 주변에 책을 두는 삶을 살아왔다.
 여전히 인생을 배우는 단계에 와있다는 자신의 50대 중반 인생의 6할은 책에서 배웠던 것 같다고 했다. 1970년대 초반 어린이 잡지나 자유교양 읽기 대회를 통해 교과서 외에 읽는 책을 처음 접했다는 김 씨. 이 자유교양 읽기대회를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계속했는데 신약  난중일기 박문수전 한국고전류 문학선집 등 이 때 읽은 책들이 참 다양했다. 논어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도 읽었으니 시골 학생치고는 독서량이 꽤 됐다. 그는 그 때 읽었던 경험들이 독서의 시작이자 인내심을 갖는 훈련이었다고 술회했다.

 그 후 삼중당 문고나 중앙신서, 빛깔있는 책을 주로 많이 사 읽었다. 울산의 서점을 단골로 했던터라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는 늘 그의 것을 별도로 챙겨뒀단다. 특히 동아서림은 고등학교 때부터 드나들던 곳이고 처용서점 문화서점 모두 눈에 밟힌다고 했다. 이 시절 읽었던 책들은 지금도 소장하고 있다. 이렇게 책을 오래토록 소장하다보니 한 때 집안에 책들이 6,000여권에 달해 옷 집안이 책 천지라 처치곤란이 된 적도 있었단다. 그래서 월부로 산 사전류 전집류는 아깝지만 도서관이나 아는 이들에게 나눠주고 이제 이곳엔 1,000여권의 책이 남아 있다. 그는 이 나이때쯤되면 버리는 연습도 필요하다며 웃었다.
 그의 서재에서 또 눈에 띄는 건 애서가들이라면 한번쯤 갖게 되는 장서표. 주로 자신의 책을 표시하는 이것을 여기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라틴어 'EXLIBRIS'라는 국제 공용표식이 달려 있었다.

 책 뿐 만이 아니다. 방송을 만들기 위해 자료수집은 기본이었던 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각종 신문 스크랩과 책장 찢은 것 자료선별한 것등을 70년대부터 모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인터넷을 사용하다보니 새로운 활용가치가 떨어지고 90년대 이후에는 그냥 없어도 불편을 못느꼈다. 짐만되고 새로움을 추구하고 원고 쓰는데 유용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에 버리게 됐단다. 그러나 74년부터 시작한 신문읽기는 그에겐 습관이다. 그는 밤에 서재에서 신문을 정독하는 재미는 해본 사람만 안다고 했다. 이렇게 신문과 책을 접해온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꿈은 기자, 칼럼니스트처럼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 됐고 그게 인연이 돼 지금껏 방송인의 삶을 살아왔다.

# 지역사·저널리즘 관련 출판 하고파
늘 향토사에 관심을 갖다보니 패트롤선생, 태화강 백리, 향토사보 등의 책도 펴냈다. 지역 답사를 통해 어릴적부터 향토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86년 이유수 선생과 향토사연구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얼마전 은퇴이후에는 각종 강연이나 기고문이나 청탁 원고 쓰기에 집중하고 있다. 이처럼 그에게 일상의 화두는  '텍스트'였다. 그는 "텍스트의 반대는 '동영상', '사진' 등의 개념으로 이것을 배제하고 '읽기'를 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쉬는 날에는 책을 읽거나 출장을 갈 때도 항상 서너권의 책을 끼고 다닐정도였지만 요즘에는 책 한 권 읽어내기가 무척 어려워졌단다. 잡념이 많아지고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도 많고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기기로 쓸데없는 행동만 많이 는 탓이다. 다독가이자 애서가인 그마저도 그런 시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의 앞으로의 관심은 울산의 역사와 인물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를 향해있다. 그는 학성공원, 작천정 일대를 시민에게 기증했지만 친일행적의 이유로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추전 김홍조의 평전을 비롯해 지역사 및 지역저널리즘과 관련한 책의 출판을 구상중이다. 일년에 한권 정도는 계속출판하는 것이 꿈이라는 그의 얘기를 들으니 그동안 그가 읽어온 방대한 양들의 책이 이제는 그의 지난 삶의 경험을 거쳐 새로운 주인에게 인도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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