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건다운 사건 하나 없이 장편소설을 재미있게 엮어낼 수 있을까. 나쓰메 소세키(1867-1916)의 장편 <한눈팔기(道草)>는 극적요소없이 200쪽을 훌쩍 넘는 분량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이어간다. 어찌 보면 밋밋해 읽는 재미가 없을 것같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의 눈길을 붙잡아두는 묘한 흡인력을 갖고 있다.


 <한눈팔기>는 소세키의 작품 중 유일하게 자신의 어두운 과거와 현재 상황을 그대로 묘사한 자전소설이다. 그리고 죽기 한해 전에 쓴 그의 마지막 장편이기도 하다.


 소세키 자신을 그대로 빼다박은 주인공 겐조는 어린 시절 시마다라는 인물의 양자로 들어갔다가 양부의 복잡한 여자관계로 친가에 돌아온다.


 결혼 후 외국을 유학갔다가 귀국한 그는 오자마자 양부와 양모의 추근덕거림에 시달린다. 다 늙은 양부는 양자 복적과 함께 금품을 요구하고 이혼한 양모 역시 걸핏하면 나타나 돈을 달라고 보챈다. 강의와 소설쓰기로 어려운 생활을 꾸려가는 겐조는 성향이 다른 아내와도 사이가 좋지 않고, 그 와중에 형과 누이, 장인과도 돈 문제로 껄끄러운 관계다.


 작가는 얼키고 설킨 가족간의 갈등 속에 몸부림치는 무력한 지식인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이며 삶이란 또한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그의 소설이 읽는 재미를 안기는 비결은 치밀한 상황 설정과 섬세한 심리묘사라고 할 수 있다.


 평범한 일상생활을 제재로 하되 그 그늘에서 괴로워 하는 고독한 인간의 모습을 통절하게 그려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어 "이 세상에 끝나는 것이란 하나도 없어. 일단 한번 일어난 건 언제까지나 계속되지. 그저 이렇게 저렇게 모양이 변하니까 우리가 모르는 것뿐이라구"라고 메시지를 압축한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싸우며 살아가는 생의 과정에는 어떤 해결도 없으며 다만 저마다 미완의 삶을 짊어진채 걸어간다는 것.


 작품의 내용처럼 소세키는 실제로 어린 시절에 양자로 입적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영국유학 후 귀국해 2년간 생애에서 가장 비참한 시기를 보냈다.


 경제적 핍박과 아내와의 불화, 과도한 강의 그리고 주변 정황은 한치 여유도 주지 않은채 그를 나락으로 몰아부쳤다. <한눈팔기>는 그에게 그때의 체험이 자양분이 돼 얻어진 '하사품'이나 다름없는 작품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