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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세간에는 430년 전 '파평 윤씨의 모자(母子)미라'가 일반에 공개돼 화제가 됐다. 미라의 주인공은 파평 윤씨의 자손으로 친정에서 출산 중 사망한 20대 중반의 젊은 여인. 당시 이 미라는 자궁속에 태아를 임신하고 있어 희귀성과 보존성, 화려한 복식과 언문으로 언론과 학계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이 전시는 역사, 국어, 복식학 등 인문학과 의학, 자연과학, 법의학 등 여러 학문을 총동원한 연구로 진행돼 국내 고고학계의 큰 성과로 평가받았다. 이 전시의 발굴부터 전시까지 관계한 사람이 바로 울산박물관의 김우림 관장(당시 고대박물관 학예과장)이다. 이후에도 그는 전통 문인화 전시부터 이색적인 톨스토이전, 울산박물관의 달리전 등 다양한 전시를 성공적으로 이어왔다. 융합적 지식이 필수인 박물관 전시를 연이어 성공해 온 힘은 어디에 있을까. 23일 찾은 울산박물관 관장실 서재에서 그가 들려준 책과 함께 살아온 지난 이야기에 그 비결이 녹아 있었다.

 

 

   
 김우림 관장의 서재는 그가 성현들의 지식을 통해 삶의 지혜를 만난 지식의 보고이자 훌륭한 '박물관 맨'을 탄생시킨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이다.

고려대박물관부터 25년간 박물관 한우물
조선시대 묘제 연구 독보적 학자로 '우뚝'
학창시절 시작된 고전 사랑은 현재진행형
"우둔한 책읽기 인생의 묘미 알게 할 것"

#'훌륭한 박물관맨' 만든 8할은 독서
김우림 관장은 조선시대 묘제를 연구해 온 이로 이 분야에선 독보적이다. 묘제연구는 역사학, 민속학, 문화인류학, 복식사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필요한 분야다. 관장직을 맡고 있지만 여전히 연구와 저술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의 방대한 독서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일 수 밖에 없다.
 김 관장은 대학졸업 후 1987년부터 고려대박물관 학예부장, 서울역사박물관장으로 일하며 25년간 박물관을 지켜온 '박물관 맨'이다. 고대 재학시절 여러 발굴현장을 다니며 중세, 근세 고고학을 공부했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훌륭한 박물관맨'을 꿈꿨다고 했다. 어느덧 그 꿈은 이뤄져 김 관장은 현재는 울산박물관장으로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있다. 관장으로서 전시를 총괄 기획하는 한편 지역사와 문화도 연구하고 최근엔 직접 강사로 나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전통 문인화 강좌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지금의 자신을 만든 8할은 책 읽기에서 얻어졌으며 그 중에서도 성현들의 지식을 만날 수 있는 '고전'이야말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일거라고 했다.
 
# 고전은 나의 힘
인터뷰 시간 대부분을 '고전예찬'에 할애했을 정도로 김우림 관장은 고전의 힘을 강조했다.
 중학교 시절, 큰 형과 11살 터울을 졌던 김 관장의 집에는 중고등생이 보기엔 다소 어려운 고전과 인문학 책이 참 많았다고 했다. 그런 배경에 중학교 2, 3학년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참 많은 고전을 읽게 됐다. 김 관장은 "이 때 본 책들이 그 이후의 공부를 비롯한 삶의 궤적에 정말 큰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창 책을 많이 읽었을 때의 일화로 '문학청년' 시절의 추억담을 털어 놓기도 했다. 고교 2학년때 전날 밤 몇 장을 남겨두고 미처 다 읽지 못한 '죄와 벌'의 뒷부분을 다음날 국어 시간에 몰래 읽다 선생님께 들킨 사연이 그것. 김 관장은 "당시 그 국어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만화책이나 음란서적을 보면 크게 혼내시던 분이었는데 제가 읽고 있던 책이 <죄와 벌>임을 보시고는 그냥 한 대 때리고 마셨죠. ''죄'짓고 '벌'받는 거다'라는 재치있는 말과 함께. 당시 선생님이 짓던 황당해하시던 표정은 잊혀지지 않네요"라며 웃었다.
 이렇게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죄와 벌> <여자의 일생>등 문학 고전의 기본서들을 봤다면 대학때는 좀 더 심도있는 아담스미스의 <국부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등의 고전과 역사, 철학서 등을 보게 됐다. 이 때는 일주일에 3~4권 가량의 책을 봤을 정도로 다독을 했었다는 김 관장. 그는 당시 읽은 책들이 바로 평생 박물관맨으로 살게 한 토대를 마련해준 것과 같다고 했다.
 이렇게 스스로가 문학과 고전의 애호가이다보니 지난 2004년 서울역사박물관장으로 재임할 때는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를 조명하는 <톨스토이展>전을 열어 화제를 낳기도 했다. 당시 이례적이었던 이 전시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의 육필 원고와 일리야 레핀의 톨스토이 초상화 등을 통해 대문호의 문학적 체취를 호흡할 수 있는 전시로 호평받았다.
 그는 인터뷰 중간마다 허먼 멜빌의 <백경> 속 한 구절을 읊으며 그 의미에 잠기기도 하고,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속 한 장면을 꺼내 2차세계대전 직후 이 작품이 유럽에 끼친 영향을 말하며 문학작품이 인류에게 주는 희망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어떤 주제로 무언가를 얘기할 때 원천이 되는 것이 바로 당시 읽었던 책들인만큼 젊은 시절 고전을 읽어야 할 중요성은 크다고 말했다.
 그는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에서 이반이 악마의 이간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에만 열중한 것은 우둔한 것이 아니고 기다림이 악마를 제풀에 꺾이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음을, 즉 결국 악마가 스스로 망하는 것을 보여주며 기다림의 미학을 얘기했듯이 고전은 인생에 교훈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사 도록, 연구 위한 인문·민속학책 주로 읽어
요즘에는 관장으로 있다보니 '경쟁사'라 할 수 있는 타 박물관과 미술관의 도록을 꼼꼼히 읽게 된다는 김 관장. 특히 관장실 서재에는 이런 도록과 작품집, 연구서 등이 책꽂이 한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다. 또 그 옆으로 울산 관련 책, 그의 연구분야와 관련한 복식, 인문, 역사 책이 또다른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김 관장은 "책은 필요에 따라 읽는 것이기도 하지만 요즘 젊은 이들이 자기개발서 등을 편식하는 독서, 학생들이 입시 서적 가운데서도 책 한권을 요약한 것을 보는 세태는 아쉬운게 많다"고 말했다. 그런 책은 당장은 쉽게 쓸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인생을 갉아먹는 책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젊은 이들은 책을 단순히 필요한 지식을 전하는 도구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전에 책에서 문학적 재미, 인생을 간접체험할 수 있는 고전들을 만났으면 합니다. 우둔하게 책 한 권을 독파해야 진정으로 인생의 묘미와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라며 말을 맺었다.

 

 

   
 김우림 관장이 고전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김우림 관장이 꼽은 내 인생의 책]

문학 작품속 등장인물의 비정상을 낱낱이 파헤치다

 

#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
대학시절, 책을 께나 많이 읽었다는 나에게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준 책이다. 좌절을 겪었던 것은 당시 책을 읽기에도 급급했던 나에게 수많은 사상가와 작가들의 작품을 낱낱이 파헤치고 비판한 당시 24살에 불과했던 콜린 윌슨 때문이었고 안도와 희망을 준 부분은 그래도 그가 언급한 작품 중 절반가량은 내가 읽었다는 점이었다.

 대개 문학을 하는 작가와 그 작가가 창조해낸 등장인물들은 비정상, 즉 사회로부터 튕겨나간듯한 '아웃사이더'인 경향이 많다. 알베르 카뮈의 뫼르소, 사르트르의 로깡땡, 헤밍웨이의 크레브스, 제임스 조이스의 스티븐 디덜러스, 헤르만 헤세의 싱클레어,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반과 알료샤 등 방대한 작가와 작품들을 나열하며 실존주의적이고 낭만적이며 비전적인 아웃사이더들의 세계를 낱낱이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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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서 저자는 "인간은 자기가 자유롭지 않음을 깨닫고 고민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아웃사이더가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만나게 되고 종국에는 도스토예프스키까지 오게 된다. 자유를 알지 못하는 우리 속 사람들과 자신 역시 감옥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거기서 탈출하고자 열망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사는 세상이다. 인생이 무상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며 그것에 신경쓰고 사는 것이 어리석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웃사이더들이 품은 삶의 무상감은 자기를 보다 강인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생명력이 강할수록 자유의 가능성은 배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책의 아웃사이더들을 통해 다시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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