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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은 발걸음이 느려서 가난에게 금세 덜미를 잡힌다"


시간은 금이라며 근면과 성실을 설파했던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의 충고다. 이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게으름을 불편해한다. 교육과 사회 분위기 탓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 혹은 어디서나 게으름을 몹쓸 짓으로 여긴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인도사를 전공한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그렇다. 시대순으로 다양한 자료를 들며 게으름에 대한 죄책감 내지 수치감은 기독교가 낳고, 근대 자본주의가 키운 문화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근대 이전의 동아시아 한국, 중국, 일본에서 게으름은 느림과 게으름과 무위가 연계된, 나태하다고 부를 정도의 여유로움이었습니다"(115쪽)라고 말한다. 이처럼 시간을 쪼개 일하지 않는다고 무턱대고 게으르다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할까. 저자는 이런 게으름에 대한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다. 지역과 시대, 종교에 따라 게으름에 대한 인식은 천차만별로 달라졌다는 것.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발전시킨 서양에서는 부지런함이 미덕으로 평가받지만 피지배 아픔을 겪은 아프리카와 인도에서는 적절한 여유를 즐기며 사는 게 오히려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준다고 여겼다. 종교에서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에서는 근면함이 칭송받지만 힌두교나 불교에서는 게을러 보일 수 있는 행동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게으름이 사회적 차별을 받게 될 정도의 죄악으로 치부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까. 저자는 "미국의 문화제국주의적 영향이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죽도록 일하지 않는 사람을 게으름뱅이라고 낙인찍는 분위기가 세상을 지배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유럽인들이 청교도 정신으로 무장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면서 게으름은 경멸의 대상이 됐다는 것.


 우리나라에서도 대한제국 시기 근면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독립신문' 사설에서는 "조선인의 90%가 일을 안 하고 빈둥거리고 있다"고 지적하는 등 서구 유럽이나 미국의 영향을 받은 논조가 주를 이뤘다.


 그렇다면 현대사회에서는 어떨까.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의 홍수 속에서 게으른 사람은 곧 '패배자'로 낙인 찍히는 시대가 됐다고 저자는 꼬집었다. 무엇보다 "게으름의 장점은 생각할 시간을 준다는 것"이라며 게으름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저자는 "게으름이 모든 비난을 다 받고 노동과 근면이 칭찬을 독점하는 건 옳지 않다"면서 "인간과 삶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없는 바쁜 사람들이 문제를 야기하게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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