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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절 서화전 수상이 붓든 계기
지난 30여년 '서권기 문자향' 쫓은 삶
가방 속엔 늘 책 한권 넣어다니는 습관
세상 살아가는 자체가 공부이자 수련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 책을 많이 읽고 교양을 쌓으면 몸에서 책의 기운이 풍기고 문자의 향기가 난다는 뜻. 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이런 경지에 오르는 것을 마다할 이 있을까만, 늘 책과 글을 곁에 두고 사는 서예가 만큼 그 경지에 오르는 일이 중하고도 절실한 이가 없을 것이다.
 

   
▲ 30여년 반평생을 살아온 서예가 정도영씨의 서재는 보물창고다. 이곳에서 조용조용 그가 전하는 서예와 학문의 세계에 대한 얘길 듣다보니 온중하면서 따뜻한 선비의 품격이 절로 풍겼다.


5일 찾은 남구 신정동 '연재서실'의 주인장 정도영(58·사진)서예가는 지난 30여년간을 책의 기운과 문자향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이다.    지난 81년 공무원 시절, 처음 취미로 시작했던 서예가 너무 좋아 다니던 직장도 접고 늦은 나이에 택한 길이 바로 글과 학문의 길이었던 그다.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일을 마치면 늘상 중구 북정동 삼일회관 내의 석산서실과 경주 월봉화실을 찾아다니며 기초를 익혔던 세월이 5년. 그는 일과 서예를 함께하다 당시 시청 공무원 서화대전에서 최우수상 등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서예의 세계에 빠져든다.
 
당시 울산에서 석산 이길호 선생에게서 서예를, 월봉 정석환 선생에게서 문인화를 배웠던 그는 이후 서울의 소헌 정도준 선생과 인연이 되어 그의 제자로서 서예계에 본격 입문한다.
 
그의 스승 소헌은 경복궁 복원 당시 주련을 쓰는 등 명성이 높았던 이로, 제자들과 함께 금묵서학회를 운영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함께 공부하게 된 그는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새벽 6시면 첫차를 타고 서울 스승의 서실을 찾곤 했다. 버스를 타고 오가는 시간도 아까워 틈틈히 책을 보곤 했던 그는 당시 버릇이 지금도 남아 늘 가방 속엔 책 한권씩은 꼭 들고 다닌다. 특히 형편이 어려웠던 탓에 우등고속 탈 돈을 아껴가며 종로서적이나 인사동 헌책방 등지에서 비싼 전문 서적을 겨우 사보곤 했다. 돈이 모자라 때로는 너무 갖고 싶은 화집이 있어도 눈물을 머금고 발걸음을 돌린적도 많았다고 했다.

 

   
▲ 정 씨는 "그저 서예가 좋아 무작정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건 독서의 힘이 크다"고 강조한다.


#책장에는 서예·그림·한학 관련 책들이 빼곡
서실에 들어서면 우선 정씨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공간이 먼저 객을 반긴다. 뒤이어 그가 자신의 서재라고 안내한 곳. 문 하나를 열자 비밀스럽게 마련된 듯한 공간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벽을 따라 사방 천장까지 올린 책장. 그곳에선 서예·그림·한학과 필법에 관한 책, 오래된 탁본과 법첩, 각종 벼루와 연적, 수석과 도자기들이 앞다퉈 이곳이 서예가의 서재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찬찬히 둘러보니 왕희지를 비롯한 역대 서예가들의 글씨를 모아 놓은 법첩(法帖)이 서재 한쪽 책꽂이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초의선사, 서산대사를 비롯한 선승들의 선시(禪詩)부터 일중, 초사, 여초, 하석 등의 문집이 가득하다.
 
또 한켠에 마련된 탁자 위에는 <선인들의 공부법> <다산의 재발견> <추사 명호처럼 살다> <인문학 공부법>과 같은 신작들도 보였는데 정 씨는 "최근 나온 인문학 서적들도 작품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 추천하는 경우도 많아 틈틈히 찾아서 읽게 된다"고 했다.

 

#중국서 구입한 '제백서'전집은 자랑거리
이리저리 둘러보니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문방사우 뿐 아니라 수백장에 달하는 LP판과 턴테이블까지, 보물창고가 따로 없었다.

   
▲ 다양한 글씨체를 접하기 위해 보는 중국 서예잡지.


 
정씨는 "서예를 하다보니 예술이란 그림, 음악, 글씨 등 표현방법은 다르지만 결국은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음악을 좋아해 오래전부터 모아둔 LP레코드와 음악관련 전문서적들을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곤 오래된 재즈팝 한곡을 들려줬는데, 지지직 거리며 나오는 가수의 중후한 음색이 이내 서재를 한가득 채웠다.
 
그의 서재는 마치 보물찾기하는듯, 한꺼풀씩 벗겨갈수록 진귀한 책들이 나온다. 그는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으니 이것만큼은 꼭 보고 가야 한다"며 중국에서 구입해 온 '제백석 전집'을 비롯해 '석문송'탁본 원본 등을 꺼내 보여줬다.
 
중국 북경 등지에 가게 될때면 늘 찾는 고서점들에서 구한 것이라고 말하는 말투에는 자랑스러움이 묻어있었던 반면 "제백석 전집은 사와도 아내 선물은 사다주지 못한 나쁜 남편"이라며 "그런걸 이해해주는 아내가 참 고맙다"라는 얘기엔 평생 자신이 좋은걸 좇아온 한 가장의 미안함도 묻어 있었다.
 
이외에 그가 문리를 틔울 때 처음 접했다는 명심보감부터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채근담, 법구경, 고문진보 등의 고전과 고전 국역 총서, 한국문집 총간, 세계 미술대전집, 한시·현대시 관련 책들까지 다양했다.
 
또 하나 눈길을 끌었던 건 인사동 고서점이나 부산 보수동책방, 전시회 등을 찾아 구입한 도록과 화집들이었다. 그의 서재에는 박수근, 이중섭, 이응노, 박생광, 최영림, 김기창, 죽농, 오창석, 서비홍, 일사, 계정 등 요즘엔 구하기 어려운 고화질의 화집이 꽃혀 있었다.
 
정씨는 추사 김정희가 "가슴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 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고 말한 것처럼 글을 쓰는 이라면 평생을 게을리 하지 않고 책을 읽어야 한다"며 "특히 남의 글을 따라쓰는 경지를 넘어 개성적인 작품을 쓰기 위해선 가슴에 문자향을 품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예는 붓이 아닌 마음을 움직이는 것

   
▲ 30여년간 서예를 하며 모아온 진귀한 물건들.


그에게 서예는 단순한 기교를 넘어 마음을 갈고 닦는 수련이기도 하다. 서예는 '붓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결국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늘 서재에 틀어박혀 하루에 3~4시간은 혼자서 독서나 글쓰기에 전념한다고 했다. 그는 "글이 써지든 안 써지든 매일 정해진 시간만큼 책상에 앉아 있어야 힘도 생기고 꾸준히 작업활동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일상생활의 언행을 비롯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 몸가짐, 벗을 사귀는 법, 사물을 깊게 연구하는 법 등 모든 일을 공부의 대상으로 삼은 선인들처럼, 그 가르침을 이어받는 서예가 역시 세상사는 일 자체를 공부이자 수련으로 알고 살게 된다고 했다.
 
비록 늦깎이로 출발했지만 지난 30여년간을 서예가로 살기 위해 수련하며 부단히 노력해온 그의 고군분투기를 듣다보니 어느덧 '서권기 문자향'이 전해지는 듯 했다. 김주영기자 us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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