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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보다 미간에 잡힌 주름을 보게 되었다. 눈썹과 눈썹 사이에 밭이랑처럼 패인 주름은 세 가닥이다. 이렇게 선명하게 이랑을 이루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텐데 새삼스레 이제야 내 눈에 띄게 되었을까?

 주름이란 피부가 노화하면서 탄력을 잃어 생기는 현상이다. 하지만 눈가나 미간에 생기는 주름은 표정주름으로써 얼굴의 근육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생기는 것이다. 눈가의 주름은 웃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라 그다지 미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미간 주름은 인상을 쓸 때 생기는 것이라 보기에 좋을 리 없다 시력이 떨어져서 생긴다 해도 메치나 업어 치나 차이가 없다.

 평소에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밝게 하자는 것이 나름의 다짐이었다. 나와 함께 있음으로 해서 즐겁고 기분 좋은 분위기가 될 수 있다면 이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거울 속에서 미간에 잡힌 인상주름을 보게 되었다. 잘 웃는다고 생각한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던가 보다. 웃기보다 인상을 더 많이 쓰면서 살았던 세월이라고 세 가닥의 미간 주름이 말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항상 논리에 어긋나면 스스로 불편해 했다. 그러니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칭찬보다 탓과 비난을 앞세웠던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미간에는 골이 깊게 패였을 것이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의 생각과 다르다고 불평하고 살았던 시간들이 이렇게 흔적을 만들어 놓았다.

 지난 주 모임에서 한 선생님이 노래를 하나 부르겠다고 했다. 이 노래를 애국가로 바꿔야한다고 농까지 했다. 도대체 무슨 노래 길래? 전 세계를 강타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일까? 궁금증을 누르고 선생님의 입을 바라보았다.

 '영감~ 왜 불러? 뒤뜰에 뛰어 놀던 병아리 한 쌍을 보았나? 보았지. 어쨌나? 이 몸이 늙어서 몸보신하려고 먹었지.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그러게 내 영감이라지'

 예상치 못한 노래는 뜻밖에도 '잘했군 잘했어' 였다. 오래 전에 트로트 가수 두 사람이 듀엣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불렸던 노래였다. 익히 아는 노래라 우리는 깔깔거리며 선생님과 주거니 받거니 이 노래를 끝까지 불렀다. 뜬금없이 부르긴 했는데 부르며 깔깔거렸는데 다 부르고 나니 뭔가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었다.

 키우던 황소를 친정집 오라비 장가들 밑천에 주었다 해도 잘했다, 방 뺀 돈 을 방앗간 차린다고 적금을 들었다고 해도 잘했다. 영감이나 할멈이 뭘 했다고 해도 다 잘했다는 것이다. 살면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특히 가족들에게 무조건 잘 했다고 아낌없이 칭찬을 해 준 적이 얼마나 되었던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호불호가 분명해서 무조건 칭찬은 언감생심 나의 사전에는 없는 단어였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 남들에게 반듯하게 보이려고 실수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살게 되었다. 별로 흐트러지지 않으니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잘했군 잘했어'의 가사를 음미해보면 매우 철학적이다. 이미 저질러 놓은 것에 대해 비난을 하거나 따져서 시비를 가리기보다 되돌릴 수 없는 것에 대한 수용, 아량으로 감싸고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니 불화가 있을 수 없다. 무조건 잘 했다는데 시비가 일어날 리 없다. 그렇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가지기 어려운 덕목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부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제는 타인을 대할 때 나와 같지 않음을 따져보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부터 해야 할 것 같다. 폭 넓은 마음이 되면 인상을 쓸 일이 그만큼 줄어들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우선, 가족들에게 조건 없이 칭찬을 해 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잘했군,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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