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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변의 기적은 다시 시작되었다. 텅 빈 들판에 갖가지 꽃들이 피어나 한바탕 꿈같은 세상을 펼쳐놓고 있다. 긴 겨울을 거쳐 서서히 푸르러지나 했더니 오월 초입부터 붉은 기운을 앞세워 툭툭 터져 나온 꽃송이들이 푸른 강바닥까지 붉은 기운을 드리워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고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콧노래를 부르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꽃들 처음부터 훌쩍 큰 키로 자라나 꽃을 피운 것은 아니다. 꽃을 피워 달면서 키도 더 자라고 더 튼실하게 한 그루 꽃으로 완성되어 가는 것이 우리네 살이 같아 더 대견하고, 수만 수십 만 송이 꽃이 모여 만들어 낸 기적을 볼 수 있기에 더 환호하게 된다.

 꽃밭 사이로 난 꽃길을 거닐면서 은은한 함박꽃이나 수레국화를 오래 바라보긴 하지만, 왠지 내 발길을 붙드는 꽃은 꽃양귀비다. 얇은 비단으로 만든 조화 같기도 하고, 색색 셀로판지를 오려낸 듯 곱고 화려한 양귀비꽃의 자태는 참으로 매혹적이다. 당 현종의 계비 양귀비가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꽃에다 이 이름을 붙였을까 싶기도 하고, 그 아름다움 때문에 나라에 끼친 해악이 얼마나 컸으면 경국지색 양귀비라고 불렀을까도 싶다. 나는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편도 양귀비란 이름이 가진 미적 가치를 높이 사는 편도 아니다. 그런 내가 양귀비꽃에 끌린 이유를 생각해보니 양귀비로 인해 떠오르는 아편 때문이기도 하고, 어린 날의 기억과 벌써 오래 전에 떠나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한 몫 한 듯하고.

 나는 약지 안쪽에 열십자로 묶인 작은 상처 하나를 가지고 있다. 아직까지도 내가 앓은 이 병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 흔적은 별복이라 하여 지라에 문제가 생겨 치료하던 중, 치료과정은 듣지 못했고 손가락 안쪽을 따고 단단한 무언가 꺼낸 후 나았다는 말씀만 어머니께 수차 들었을 뿐이고, 그 과정에 여러 차례 녹두 알 만큼씩 아편을 먹였다고 들었다. 이렇듯 나는 여러 번 죽음의 문턱을 밟아 어머니를 기함시켰다고 친척들에게 듣기는 했지만, 딱히 나 자신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지 않고 어려서 떠난 동생의 엷은 숨결에서 맡았던 야릇한 향이랄까 냄새랄까 간혹 그것이 떠올라오는데, 막연히 아편 향이었을지 모른다고 하고 혼자 추측하고 있었다.

 얼마 전 터키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여행일정을 잡으면서 여행사를 통해 신들린 듯 양귀비꽃 필 무렵을 확인했고, 여행사 쪽은 꽃이 어느 때 필 것인지는 신만이 알 수 있다고 난감해했고, 다만 우리나라와 위도가 비슷하니 그때쯤 필 것이란 말을 듣고 일정을 잡았으나 꿈은 꿈으로 끝나버렸다. 넓은 땅을 짧은 시간 안에 돌아보려니 제대로 보고 느낄 새도 없이 낯선 듯 낯익은 풍경들을 스쳐 보내고, 오래 버스에 시달리면서 확인한 것은 그곳엔 대량의 진짜 양귀비가 재배되고 있다는 것. 먼빛으로 스치면서 찍어온 사진에는 분명 양귀비 하얀 꽃밭이 있었다.

 허나 그뿐이었다. 산기슭에 붉은 꽃양귀비가 여러 송이씩 피어 흔들린 것도 사실이고, 그 꽃이 야생화란 것을 확인한 것도 사실인데 나는 왜 그토록 실망했던가. 아마도 태화강을 배경으로 본 화려하고 아릴 정도로 고운 양귀비꽃빛이 뇌리에 깊이 박혀 마땅히 양귀비꽃은 푸른 지중해를 배경으로 흐드러지게 흔들려야 한다는 당위성을 혼자 세운 듯싶다. 실망 끝에 받아들인 것은 아편이란 말이 그리스 말 오피움을 한자로 음역하여 쓴 데서 온 정도. 그런데 그곳에서 오래 잊고 있었던 동생 숨결 같은 그 향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터키 사람들은 유난히 담배를 즐기는 편이고, 그쪽 담배 향이란 것도 야릇한 향신료가 한데 섞인 듯 사람을 역하게 하면서도 몽롱하게 빨려들게 하는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해질 무렵 그들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파르스름하게 붉은 놀과 섞이자 하루를 버티던 힘이 나른해지고 점점 그 마력 같은 향기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돌아와 다시 태화강변에 섰다. 꽃들은 오월 초에 만난 꽃빛을 버리고 가일층 노숙한 빛을 띠고 서 있다. 오월 초에 만났던 꽃양귀비는 꽃빛이 투명하고 맑아 아침 햇살 더불어 찬란한 빛이 났다면 오월 말에 만난 꽃은 농익은 여인 같이 한 생을 달관한 듯 해질 무렵 더 진중한 빛으로 붉어 있다. 이 꽃들도 머지않아 뜨거웠던 꽃잎을 지우고 둥근 삭과 하나씩 안고 선 모습을 보여 줄 것이다. 우리가 환호한 건 꽃이지만 정작 꽃은 벌 나비를 불러들여 삭과, 저 하나를 남기려 처절하게 고운 꽃빛을 짓고 무수히 흔들렸으리라. 모든 생명이 살아가야 할 이유와 아픔과 고됨이 저 꽃에게도 어김없이 주어진 것을. 그 동안 너무 오래 이 꽃에 넋을 빼앗겼음을 느낀다. 이 기적을 위해 수고한 이들은 곧 들판을 갈아엎고 내년을 위해 새로운 준비를 할 것이다. 꽃들이 사라진 쓸쓸한 들판, 그 아래에선 새 생명들이 뿌리와 잎, 꽃과 줄기를 탄생시킬 신비로운 일에 혼신을 다 해 살아 내리라. 내 살 속에 깊이 박힌 정체 모를 씨앗 하나도 뭔지 모를 신호를 보내오고 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시간 모두가 신비인 것을. 또 다른 기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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