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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와 로마에는 경제적으로 생산성이 낮더라도 정치, 전쟁, 철학, 문학 분야에서 최고 수준으로 왕성한 시민들이 있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러한 시민을 지침으로 삼지 않고 일만 하는 당나귀를 지침으로 삼는가"(31쪽)


 케인스 연구 전문가로 유명한 경제사학자 로버트 스키델스키 워릭대 정치경제학 석좌교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도발적으로 비판한다.


 그는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오늘날 같은 자본 숭배 현상이 상당히 예외적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적으로 조금만 용기를 낸다면 좋은 삶과 좋은 사회라는 이념을 중심부의 원래 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 있다"며 노동 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나누는 등의 노력으로 무한 경쟁 구도를 깨트려야 한다는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이미 충분히 성장했으니 이제는 무조건 '좋은 삶'에 초점을 맞출 때라는 주장이다.


 그는 아들이자 독일 철학 전문가인 에드워드 스키델스키와 함께 쓴 신간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원제: How Much Is Enough)에서 케인스의 '빗나간 예언'에 주목한다.


 케인스는 1930년 발표한 에세이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에서 2030년이면 선진국의 생활수준이 4~8배 더 높아진 덕분에 사람들 대부분은 주당 15시간만 일해도 충분한 시대가 열리리라고 내다봤다.


 그의 말대로 자본과 기술은 큰 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갈수록 더 심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저자들은 오늘날 이 같은 역설이 이뤄진 것은 자본주의가 심어 놓은 습관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생산성 증가에 따른 이익을 노동자들이 갖지 못하고 있고, 자본주의는 인간의 끝없는 욕구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처럼 책은 생산적이면서도 공정한 경제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바탕으로 돈에 대한 사랑을 대체할 새로운 대안적 가치를 제시한다. 특히 과거 철학자들이 제시했던 '좋은 삶'의 이상이 근대 이후에 왜 사라지게 되었는지, 최근 들어 이를 복원하기 위한 시도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유려하게 보여준다.


 '행복 경제학' 등 최근 대안 이론까지 두루 검토한 저자들은 좋은 삶을 위한 7가지 기본재(basic goods) 개념을 끌어낸다. 건강, 안전, 존중, 개성, 자연과의 조화, 우정, 여가 등 7가지가 그것이다.


 이들은 "정책과 사회 공동의 목표는 경제 성장이 아니라 기본재를 사람들이 쉽게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경제 구조를 만드는 데 둬야 한다"고 밝힌다.


 조건없는 기본소득 지급, 누진 소비세와 광고를 제한해 소비 압력 줄이기, 세계화의 속도 조절, 자본 도피와 핫머니 통제 등의 사회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주장이 다소 거칠지만 부의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는 요즘 한국 사회가 참고해볼 만한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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