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조선통신사 표지석
9. 조선통신사 표지석
  • 울산신문
  • 승인 2013.06.26 17:47
  • 기사입력 2013.06.2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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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년전 외교사절단 길목
울산시청 앞 조선통신사 표지석. 이 표지석은 지난 2007년 조선통신사 파견 400주년을 맞아 통신사들이 지나갔던 전국 주요 길목 12곳에 설치됐다. 통신사들이 한양(서울)을 출발해 일본으로 가면서 거쳤던 연고도시에 세웠고 울산도 그 중 한 곳이다.

울산시청 앞에는 조선통신사 표지석이 서 있다. 울산시민들도 낯설어 하지만 울산은 조선시대,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가 지나던 통로였다. 이 표지석은 지난 2007년 조선통신사 파견 400주년을 맞아 통신사들이 지나갔던 전국 주요 길목 12곳에 설치됐다. 통신사들이 한양(서울)을 출발해 일본으로 가면서 거쳤던 연고도시에 세웠고 울산도 그 중 한 곳이다.
 

 표지석은 높이 120cm, 가로·세로 각 50cm 크기의 검은 돌로 '조선통신사의 길'이라는 표제아래 '이곳은 1607년 조선통신사가 국서를 받들고 지났던 길입니다. 조선통신사 일본 왕래 400주년을 기리고 선린우호정신을 다짐하며 이정표를 세웁니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출발지 서울 숭례문앞 표지석을 시작으로 서울시 양재동, 경기도 용인시, 충북 충주시, 경북 문경시·안동시·의성군·영천시·경주시, 울산광역시, 경남 양산시 웅상읍, 부산시 동래구의 도로변이나 시청 공공건물 앞에 위치해 있다.
 

 1404년(태종 4) 조선과 일본 사이에 교린관계가 성립되자, 조선국왕과 막부장군은 각기 양국의 최고 통치권자로서 외교적인 현안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절을 각각 파견했다. 이때 조선국왕이 막부장군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통신사, 막부장군이 조선국왕에게 파견하는 사절을 일본국왕사라고 했다.
 통신은 두 나라가 서로 신의를 통하여 교류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조선에서 일본에 파견한 사절의 명칭은 보빙사(報聘使)·회례사(回禮使)·회례관(回禮官)·통신관(通信官)·경차관(敬差官) 등 다양하였다.
 

 일본에 파견된 사절단에 통신사의 명칭이 처음 쓰인 것은 1413년(태종 13) 박분(朴賁)을 정사로 한 사절단이었지만, 중도에 정사가 병이 나서 중지되었다.
 그뒤 통신사의 파견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은 1429년(세종 11) 교토에 파견된 정사 박서생(朴瑞生)의 사절단으로 최초의 통신사라고 할 수 있다.
 

 파견목적은 임진왜란 전에는 주로 왜구 금지요청이 주가 되었으나, 그 후에는 강화와 포로들의 쇄환, 일본국정의 탐색이었고, 1636년(인조 14) 이후는 막부장군의 습직(襲職) 축하가 주임무였다. 그러나 그 역사적인 의의는 조·일 양국간만이 아니라, 중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 삼국의 평화공존을 위한 국제관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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