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장생포는 지난 50여년 간의 우리나라 산업화 과정에서 단순한 어항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공업 발달과 교통의 요지로서의 역할도 수행했으며, 1962년 정부 주도 하에 최초로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가 건설됐다. 사진은 국내 유일의 고래관광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장생포 고래문화특구 전경.

대한민국 유일의 고래특구인 울산 남구 장생포는 울산만의 서쪽 해안가에 위치한다. 울산만은 수심이 깊어 연안 항로의 기항지이며, 또한 주변이 고래잡이의 좋은 어장이므로 포경업(捕鯨業)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울산만 내로 태화강·동천·외황강 등이 흘러들며 태화강과 동천이 만나는 하구에는 넓은 충적평야와 갯벌이 발달해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대륙침략의 전진기지로서 장생포항에 유류 비축을 위한 축항계획이 시도되어 장생포 일대에 안벽이 축조되었고, 울산·장생포간에 철도지선을 부설하여 군수물자를 수송하기도 했다.
 
장생포는 중요 거점지역이기 때문에 도로와 철도가 이곳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울산의 도로는 1904년~1920년에 걸쳐 울산·부산, 경주 등 간선도로와 장생포, 방어진, 언양, 남창을 경유하여 해운대에 이르는 도로가 개설되면서 발달했다. 철도는 한국전쟁 이후 산업선이 건설되면서 '장생포선'이 개통하였다. 1960년부터 화물운송에 있어서 장생포역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장생포는 단순한 어항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공업 발달과 교통의 요지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장생포는 공업단지를 조성하기에 최적의 입지 조건이었기에 정부 주도 하에 최초로 울산 미포 국가산업단지가 건설됐다.
 
또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정부는 1962년 울산지구를 특정공업지구로 결정하고 장생포동 납도(현 (주)동양나이론 공장부지 안)에서 국민의 관심 속에 울산센터기공식을 거행했다. 그러면서 장생포도 공업이 발달하는 등 농촌적 성격에서 벗어나 도시적 특징을 나타내게 되었다. 장생포는 울산공업단지의 일부로 대규모 공장들이 입지하여 공업이 발달하여 있으며 산업도로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장생포가 다시 한 번 고래의 꿈을 꾸기 시작하면서 공업입국의 전진기지에서 고래특구의 중심지로 변모하고 있다. 현재는 고래박물관과 고래연구소 등 고래관련시설이 잇달아 들어섰고 전국의 관광객들이 고래의 꿈을 꾸며 장생포로 향하고 있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