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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문화는 유혹의 수단?'
 오늘의 유행이 내일이면 사라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첨단 유행'에 열광한다. 지난해 유행했던 옷은 올해 입으면 왠지 이상해 보이기 때문에 입을 수 없다. 올해 유명해진 장소에 가기 위해 작년에 그토록 사람들과 가고 싶어 공유했던 장소들은 올해엔 쓸모없어진다.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영화를 보고, 똑같은 음악을 듣고, 똑같은 음식을 먹으며, 똑같은 기계로 통화한다. 각자의 개성은 없어진 지 오래다.
 문화엘리트들은 고급 오페라 문화와 TV 속 대중프로그램까지 마구 섭렵하며 소비하라고 부추긴다. 분야를 막론하고 예술은 더 이상 사회적 문제에 대해 과감하게 발언하지 않는다.
 '유동하는(liquid)'이라는 독특한 개념으로 현대 사회를 분석해온 폴란드 출신 유대인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최근 국내 번역된 '유행의 시대'(원제 Culture In A Liquid Modern World)에서 문화로 시선을 돌렸다.
 앞서 저자는 기존 사회의 견고한 작동 원리였던 구조, 제도, 풍속, 도덕 등이 해체되면서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국면을 일컫기 위해 '유동하는'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유명해졌다.
 그는 2011년 내놓은 이 책에서 문화는 원래 민중에게 최고의 사상과 창의력을 전해주고 교육하는 변화의 동인이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러한 '계몽'의 사명을 잃어버리고 유혹의 수단이 돼버렸다고 강조한다.
 그는 "문화는 이미 소비시장의 지배를 받고 있으며, 유행에 종속된 현대인들이 소비하는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며 "세계화의 기치 아래 온 인류가 공유하는 똑같은 문화는 결국 초국적 자본이 최대한의 이윤을 얻기 위한 상품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오늘날 문화의 기능은 이미 존재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욕구를 창조하는 동시에 기존 욕구들이 영원히 충족되지 않은 채로 남도록 한다는 것이다.
 전체 176쪽으로 학술서적치고는 분량이 적다. 하지만 바우만은 예리한 시각과 풍부한 사례를 들어 현대사회 문화의 그림자를 들춘다.
 "오늘날의 문화는 무엇보다도 이제 소비자로 전환된 사람들이 경험하는 거대한 백화점으로 변해버린 이 세상의 여러 매장 중 하나로 자신을 바라본다. 이 거대한 상점의 다른 매점들과 마찬가지로 선반은 매일 바뀌는 매력적인 상품으로 넘쳐나며, 계산대는 그들이 광고하는 한물간 참신한 제품들처럼 곧 쓸모없어질 최신 홍보물로 장식되어 있다. 계산대의 광고와 선반에 진열된 상품들은 선천적으로 억누를 수 없는 순간적인 충동을 불러일으키도록 계산되어 있다." 저자의 예리한 시선이 날카롭게 꽂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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