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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강남 한복판. 향락과 부패로 망해가는 신라를 구하러 옥황상제의 아들 처용이 지상에 내려온다. 그러나 그 역시 역신의 꼬임에 빠져 타락하게 되자, 노승이 개탄하며 처용을 경고하는 장면.

처용설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 한국 오페라사를 다시 썼다는 찬사를 받은 국립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처용'이 오는 9월 6일과 7일 이틀간 울산에서 무대를 갖는다.
제47회 처용문화제를 기념해 마련되는 이번 공연은 처용의 고장 울산에서 2015년 해외진출을 앞두고 있는 오페라 '처용'을 선보이는 의미있는 무대다. 공연에 앞서 22일 울산문화예술회관 레스토랑 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처용'을 탄생시킨 이영조 작곡가, 국립오페라단 김의진 단장, '역신'역의 바리톤 우주호씨 등 빛나는 주역들을 만났다. 또 그들이 직접 소개하는 '처용'과 무대 뒷 이야기 등을 들어봤다.

1987년 초연때 전통-서양음악 잘 어우러진 수작 평가
26년만에 서울오페라페스티벌에서 발전된 모습보여
처용의 고장 찾아 내달 6·7일 이틀 울산문예회관 공연 
2015년 프랑스 무대 국내오페라 해외 진출 물꼬 기대 

#오페라 처용은 어떤 작품?

창작오페라 '처용'은 처용설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다시 그려낸 작품으로, 국립오페라단이 작곡가 이영조 씨에게 위촉해 1987년 초연했다. 당시 이 작품은 한국적 색채와 서양음악 기법이 잘 어우러진 수작이란 평가를 받으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26년전 당시 합창단원으로 이 작품에 참여했던 바리톤 우주호씨는 "한국적 요소와 서양의 오페라를 절묘하게 배합시켰던 이 작품은 당시 국내 음악계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켰다"고 회상했다. 우 씨는 작품의 매력을 "자꾸 부르면 부를수록 더 깊은 맛이 나는 것"이라고 콕 집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 오페라계의 수준은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이영조 작곡가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랐던 당시 얘기를 꺼냈다.

 "독일에서 유학하며 배운대로 곡을 썼더니, 세상에. 단원들 중에 2명 빼고는 다들 오케스트라 소리를 넘지 못하는 거에요. 단원들이 입을 모아 '선생님 콘크리트 벽 하나가 제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데, 저는 그 때 제가 작품을 잘못 쓴 줄 알았어요. 근데 이번에 새로하는 작품에선 출연진 대부분이 오케스트라 소리를 뛰어 넘어요. 괄목할 만한 발전이죠"

 그리고 26년이 지난 지금 국립오페라단은 '이제는 해외에 우리 오페라를 알릴 때다'라는 취지에서 작품을 물색하던 중 한국적 색채가 절묘하게 살아있는 오페라 '처용'을 각색, 해외에 우리 오페라를 알리는 교두보로 삼겠단 계획을 한다. 그렇게 26년만에 새롭게 태어난 처용은 지난 6월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2013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서 선보였다. 이번에도 작곡가 이영조씨가 참여했으며 연출자 양정웅, 극작가 김의경, 지휘자 정치용, 무대미술가 임일진씨 등 국내 최고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해 화제를 모았다.
 
# 21세기 서울 압구정동으로 배경 옮겨
무대의 배경은 21세기 서울 압구정동 한복판. 9세기 말 통일신라시대 처용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동해 용왕의 아들이었던 처용은 현대식 바바리 코트차림으로 등장, 바에서 술을 마시고 홍등가를 찾아 여인과 만나는 현대인의 모습, 그대로다.

 옥황상제의 아들이었던 그는 어떻게 지상에 오게 됐을까. 신라 멸망 직전, 하늘의 옥황상제는 부패한 신라를 멸하기로 한다. 이에 처용은 신라를 구원하고자 옥황상제의 만류에도 지상으로 내려온다. 신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지상에 온 처용이지만 지상의 여인 가실과 사랑에 빠지면서 오히려 타락한다. 노승의 질타와 권유로 후회와 함께 신라를 구하려고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이 때 처용의 아내 가실을 탐하던 역신이 나타나 가실을 내어주면 신라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고 한다. 신라와 가실 사이에서 번민하던 처용은 역신에게 가실의 방 열쇠를 내어 주게 되고, 처용으로 변장한 역신은 가실을 범한다. 처용은 뒤늦게 후회하며 뒤쫓아 가지만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가실은 자결하고 처용은 나라와 아내 모두를 잃고 역신과 함께 옥항상제 앞에 나가 준엄한 심판을 받는다. 그리고 작품은 질문을 던진다. 타락한 처용이 과연 인간세계를 구원할 수 있을까?
 
# 겉으로는 처용과 가실의 사랑이야기
이처럼 '처용'의 기본 줄거리는 처용과 가실의 사랑이야기지만 그 이면엔 향락과 부패로 망해가는 신라와 그를 닮은 현대사회를 꼬집는 풍자가 함께 존재한다. 여기에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세계로 내려온 처용이지만 그 역시 타락하면서 진정한 구원은 가능한 것인지,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결코 쉬운 작품이 아니란 평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이영조 작곡가는 "일반 대중이 이해하긴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지난 공연에서 젊은이들이 환호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보고 작품이 무리할 정도로 어려운 건 아니란 생각을 했다"며 "예술이란 어쨌든 시대적으로 앞서나가야 하고 교육적 메시지도 전달해야 하는만큼 관객들의 능동적인 이해가 필요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역신'역을 맡은 바리톤 우주호씨 역시 "음악적으로도 그간 관객들이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화성을 들을 수 있단 점에서 난해한 반면 신선하고 깊이있는 오페라의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좁은 무대에 80여명 합창단 어떻게 세울까 고민
울산 공연에서 달라지는 부분은 없을까.

 이영조 작곡가는 "이야기 측면이나 곡 면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울산 공연장의 경우 무대가 협소하다보니 합창단원 80명을 어떻게 무대에 세울지 고민이 된다"며 "이번 오페라의 경우 합창의 힘으로 끌고가는 면이 큰 만큼 잘 풀어내야 할 숙제"라고 했다. 그는 이어 "어떤 작품이든 보강은 계속 필요한데 가령 지난번했던 '황진이'는 37번 고치니까 정답이 나오더라"고 덧붙였다.

 울산 공연을 발판으로 앞으로의 '처용'이 꿈꾸고 있는 비상이 기대됐다.

 김의진 단장은 "이제 한국 오페라계는 서양의 오페라를 들여와 우리 것으로 만들던 시절을 넘어 우리만의 오페라를 만들어 세계와 교류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며 "처용은 그 세계화의 물꼬를 틔울 작품으로 오는 2015년 한불수교 130주년을 맞아 프랑스에서 먼저 그 선을 보일 계획"이라고 했다.

 한편 이번 공연은 오는 9월 6일과 7일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펼쳐진다. 울산 공연엔 신동원(처용 역), 임세경(가실 역), 우주호(역신 역), 울산 출신 오승용(임금 역)등 오페라합창단 180여 명이 대거 출연한다.

 공연시간은 6일 오후 7시 30분, 7일 오후 3시. 관람료 무료. 중학생 이상 관람가. 예매: 울산문예회관 홈페이지(http://www.ucac.or.kr). 문의 229-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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