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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수대는 국방의 주요시설이자 통신수단이었다. 봉수대는 연기나 불을 피워 위급한 상황을 알리던 옛날 군사통신시설이다. 거대한 원형 돌탑처럼 보이는 봉수대는 높이만 6m에 이르고, 봉수대 정상에는 움푹 파인 네모난 방이 있다. 봉수대 정상에서는 소나무에 가려 시야가 답답하지만, 봉수대 앞의 바다를 향해 툭 튀어나온 암반에 오르면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해안선과 망망대해가 장쾌하게 펼쳐진다. 바로 울산의 대표적인 봉수대인 주전봉수대다.
 

 울산시 동구 주전동에 있는 봉수대로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보면, 울산군에는 봉화가 임을랑포·아이포·이길·하산·가리·천내·남목·유등포 등 여덟 곳에 있었다. 이 봉화가 있는 곳이 남목천(南木川)과 인접해 있는 남목봉화라고 추정되며, 남목봉화는 북쪽으로 유등포봉화와 연락한다고 했다.
 

   경상도지리지에 보면, 천내봉화는 북쪽으로 남목봉화와 연락하는데 거리가 21리 305보 떨어져 있으며, 남목봉화는 북쪽으로 유등포봉화와 연락하는데 거리가 28리 15보 떨어져 있다고 했다. 동래 간비오봉수에서 첫 봉화를 피운 간봉은 기장의 남산→아이→울산의 이길→가리하산→천내→남목→경주 하서지 등을 거쳐 안동의 직봉으로 연결된다. 이처럼 남목봉수는 경상도 남동해안의 중요한 봉수 가운데 하나였다.

 봉수대는 해발 192m의 봉대산에 있다. 직경 5m, 높이 6m의 원통형 석축으로 된 구조이다. 봉수대에는 3칸의 봉대사(烽臺舍)가 있었다. 이 봉수터에 있는 봉화사 건물이 봉대사였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조선 말기 전기통신법이 도입되고 봉수제가 폐지되자 봉수군들이 모두 산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 남목천봉수의 봉군 박경원(朴景元)은 그대로 봉대사에서 살면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 봉대사에 절을 지은 것이 지금의 봉화사며, 손자 박동수가 이 절을 맡아 오다가 지금은 다른 사람이 절을 유지하고 있다. 이 봉수대는 박경원과 손자 박동수 및 그 후손들에 의해 지금까지 보존되어, 봉수대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조선시대 남동해안의 봉수제도와 봉수대의 실태를 알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봉대산 정상에는 주전봉수대와 봉호사가 자리 잡고 있다. 봉대산에 오르면 거대한 크레인과 대형 선박이 바다 위에 떠 있는 현대중공업의 웅장한 전경이 펼쳐진다. 약 4km 떨어진 곳에 아름다운 항구 주전항이 있다. 주전항은 탑 모양의 등대가 이색적인데, 올해 이곳 방파제에 주전항을 상징하는 해녀와 돌미역을 이용해 아름다운 그림과 색을 덧입혔다. 5m에 이르는 해녀 반신 부조상을 세우고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녀, 돌미역을 말리는 모습 등 주전항의 풍경을 회색 방파제에 그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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