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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울산박물관에는 울산의 역사문화를 보여주는 두 가지 기획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두 전시회를 둘러보면서 새삼 울산의 박물관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 곰곰 생각했다. 그것은 울산 정신을 구현하고 선양하는 일이 아니랴. 어떤 계층의 시민이나 울산의 역사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구체적이고 실제적이어야만 하리라. 

 그러므로 박물관의 핵심인 학예연구직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울산 땅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 온 사람들이 이룩한 역사문화에 대해 남 다른 지식을 갖추기 위해 울산을 아는 일에 부단히 전력투구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시민의 크나큰 기대 속에 2011년 6월에 태어난 울산박물관의 개관 기념 특별전은 특별한 아쉬움을 남겼다.

 울산의 박물관으로서 존재를 묻게 했다. 시민의 숙원 끝에 만들어진 울산의 박물관이라면 울산의 다양한 역사문화 중에 울산 정신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을 특별전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줬어야 했다. 최소한 개관 기념전이라면 화려하고 흥미롭더라도 울산과는 관련이 없는 것이 아닌 소박하더라도 울산 정신을 진솔하게 나타낸 것이어야 했다. 울산박물관의 당연한 책무라고 하겠다. 

 물론 박물관을 개관하려면 상설전시관을 채울 물품을 모으는 일만 해도 여간 힘든 게 아니리라. 그렇다고 박물관의 능력을 보여주는 첫 기획전을 소홀하게 취급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박물관의 역량을 총결집했어야 했다. 학예연구사들이 울산의 역사문화에서 그 대상을 찾아내기 위해 연구에 매진하면서 관련 전시품을 모아야 했다. 

 과연 그럴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는가. 듣기로는 울산박물관을 지어야 한다는 여론이 구체화된 2000년대 초에 3명의 학예연구사가 채용된 것을 시작으로 2006년부터 2009년 사이에 관장을 비롯한 학예연구직이 갖춰졌다고 한다. 그럼에도 개관 기념 특별전을 손쉽게 외부 업체의 힘을 빌려 대영박물관의 소장품으로 마련한 것은 너무나 안이한 발상이라 하겠다. 

 그래서 뜻 있는 시민은 뒤늦었지만 박물관을 가졌다는 것에만 만족했을 뿐, 울산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개관 특별전에 큰 실망감을 나타냈다. 한동안 여론의 도마에 오르내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울산박물관의 향후 행보를 예의주시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울산박물관에 대한 시민의 기대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울산박물관은 곧 바로 개관 이전부터 울산광역시가 국립민속박물관과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과 공동으로 추진하던 울산 달리 학술교류 프로젝트를 잇는 '울산달리 기획전'을 열었다. 또 울산공업센터 지정 50주년 기념 특별전과 개관 1주년 기념전인 기증유물 특별전을 비롯한 크고 작은 11차례의 기획전을 마련했다. 울산의 역사문화와 외부의 것이 절반씩이었다. 

 울산의 박물관이라고 해서 울산의 것만 고집스럽게 기획전시한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시민이 외지의 문물을 울산에서 손쉽게 관람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야 한다. 세계화시대에 맹목적인 지역주의는 경쟁력을 잃는 일이다. 그러나 울산의 박물관이라면 울산의 역사문화를 심도 있게 천착하고 온축하여 기획전을 마련하는 일에 더욱 힘을 기울어야 한다. 그게 바로 울산 땅에 있는 박물관으로서의 역할이고 사명이다.   

    지금껏 울산의 박물관이 울산의 역사문화를 보여준 다양한 기획전을 열었다. 대곡박물관이 2010년 7월 마련한 '구곡문화(九曲文化) 특별전'이 최고의 전시회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시회와 함께 학계와 문화계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심포지엄도 마련하여 역량을 과시했다. 그처럼 울산의 박물관이라면 적어도 울산의 역사문화의 참다운 속살을 기획전을 통해 보여주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그러려면 울산에 대한 연구에 더욱 힘써야 한다. 

 그 점에서 '조선통신사 이예 특별전'은 아무리 울산에 대한 연구일지라도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우고 있다. 학파실기(鶴坡實紀)를 1872년 13대 손 이장찬(李璋燦)이 간행했다고 해놓고는, 학파실기 목판(木版)은 후손 이근오가 1812년에 이예의 일대기와 문장을 모아 개간하여 만들었다고 했다. 연대가 혼란을 일으키게 한다. 선생의 자(字) 중유(仲游)를 설명하면서 '어린 시절 이름'이라고 했다. '이근오'는 '李覲吾'인데 '李覲五'로, 선생이 맡았던 '중군병마부수'의 '수'는 '帥'가 아니라 '師'로 적어놓았다. 몇 가지 오류가 더 있었다. 울산의 박물관이 울산에 대해 애정을 갖고 깊이 있게 연구하여 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내놓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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