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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삼릉 숲의 새벽입니다.
무채색의 물 입자들이 안개라는 이름으로 숲을 채웁니다. 사물들은 스멀스멀 오르는 공간 속에서 색을 버리고 형체만을 가지다, 그마저도 서서히 잃어갑니다. 길이 옅어지고, 소나무의 거친 질감이 뿌옇게 사라져갑니다. 긴 시간의 시련도 굴곡도 안고 가는 저 푸른 생명은 태연히 기다릴 뿐 햇볕을 재촉하지 않습니다.

성성한 기운의 소나무 숲은 별리의 공간입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놓는 경계선이자 서로 넘어서는 안 될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쪽의 슬픔이 저 봉분 속으로 건너가지 못하고 저 세상의 안타까움이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합니다. 마주 보되 간섭하지 않는 불문율이 존재합니다.

안갯속으로 한발씩 들어가면 안개는 꼭 그만큼씩 길을 내주며 물러납니다. 그곳에서 모든 것들은 부재합니다. 안에서는 존재하나 밖으로 보이지 않는 은둔의 공간입니다. 미로처럼 얽힌 소나무 숲에서 예전 잠시 알던 여자의 죽음을 생각했습니다. 슬픔은 가끔 과거의 추억과 중첩돼 부풀려지기 마련이지만 내 맘은 그곳에 닿지 못합니다. 단지 안으로만 삼키는 울음이 될 뿐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잊힌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안갯속에서 빛을 잃은 삼릉 숲의 아침이 어두웠습니다. 절망, 그 언저리처럼….

글·사진=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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