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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문화원이 올해 반세기를 맞았다. 그러니까 오는 6월 27일이 울산에 문화원이 태어난지 꼭 쉰 살이 되는 날이다. 50년 전 울산은 산을 허물고 바다를 메워 단군 이래 최대의 역사(役事)라는 공업단지를 만드는 일에 온힘을 썼다. 온통 먹고 사는 일에 매몰됐다. 문화예술이란 사치에 불과했다. 울산의 비극이었다. 이후 도시발전의 큰 걸림돌이었다. 

 그런 열악한 여건에서도 울산의 뜻 있는 인사들이 향토문화사업을 통한 울산 가꾸기에 마음을 모았다. 문화운동을 통해 시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면서 울산 고유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기로 했다. 울산공단 기공식이 열린 이태 뒤 1964년 2월 25일에 모임을 갖고 문화원 설립 운영위원장에 고기업(高基業), 원장에 박영출(朴榮出) 씨를 선출했다.

 그로부터 넉 달 뒤 1964년 6월 27일 울산문화원 창립총회가 열렸다. 울산의 광복운동의 고귀한 정신이 깃들어 있는 중구 북정동 울산청년회관(삼일회관)에서 업무를 시작했다. 그 해 10월 13일 공보부로부터 울산문화원 설립허가를 받았다. 1966년 10월 남구 달동 518-8번지 1,000여평의 부지에 건평 500여평의 문화원 건물 건립에 들어가 1968년 12월 완공했다.

 당시 울산에는 도서관이나 문화예술 관련 행사를 열 수 있는 문화시설이 한 곳도 없었다. 더욱이 나날이 늘어나는 경제력에 비해 문화에 대한 인식은 형편 없이 낮았다. 문화원이 울산 문화의 지킴이로서 역할을 온몸으로 감당할 수 밖에 없었다. 가시밭길이었다. 전통문화 보존사업은 물론 일반 예술행사도 열어야 했다. 울산예총이라야 문화원이 태어난 9년 뒤 1973년에야 생겼다. 

 한글백일장과 미술전시회, 무용과 음악발표회, 사진촬영대회 등의 예술행사는 기본이고, 시민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궂은 행사도 열었다. 요즘이라면 문화원이 아예 맡지 않았을 행사였다. 영화상영회에다 내고장 발전상 전시회, 독서사상 높이기 순회좌담회, 레크레이션 발표회, 식생활개선 요리강좌, 학생 조기청소대회, 미취학아동 명찰달기운동 등 별의별 행사가 망라됐다. 

 울산문화원이 펼친 행사 중에 가장 돋보이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처용문화제로 이름이 바뀐 울산공업축제를 거의 맡았다는 점이다. 제1회 울산공업축제는 울산공단 탄생 5년 뒤 1967년 4월 20일부터 22일까지 3일간 열렸다. 볼거리가 없었던 당시에 공업축제는 시민에게 절대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문화원은 그야말로 울산 문화예술의 구심점이었다. 

 본연의 임무도 잊지 않았다. 역사문화를 정리했다. 울산·울주향토사와 울산문화재총람, 처용연구논총, 울산 임진왜란사 등을 펴냈다. 그 절정은 1986년 10월 무려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울산지명사를 펴냈다는 점이다. 이런 선행 실적이 없었다면 2002년 울산광역시가 펴낸 울산광역시사와 연이어 나온 구·군지와 지명사가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쇠부리놀이와 물당기기놀이, 매귀악, 마두희 등 민속놀이 발굴과 개발에도 힘썼다. 

 울산문화원은 울산이 1997년 7월 광역시로 승격한 뒤, 1999년 9월 울주문화원을 시작으로 5개 구·군에 단위 문화원이 생기면서 문을 닫았다. 하지만 울산문화원이 지난 세월 황폐한 문화토양을 기름진 땅으로 가꿔온 그 숭고한 정신과 열정이 없었다면 과연 오늘 울산의 문화예술이 제대로 정립될 수가 있었으랴. 울산문화원의 공적은 아무리 높여도 지나치지가 않다고 하겠다. 그 중심에는 고(故) 박영출, 이유수(李有壽) 두 분이 있었다. 

 그러나 문화원 탄생 50년이 5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5개 구·군 문화원이 공동으로 기념사업을 마련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문화원연합회가 지난해 울산광역시와 협의해 기념사업을 마련한다고 했으나, 재정지원이 뒤따르지 않아 사업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5개 구·군 문화원장이 진작부터 힘을 모아 가칭 '문화원 탄생 5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를 만들어 사업계획을 세웠어야 했다. 연합회 실무진에만 맡겨놓고 허송세월할 일이 아니었다. 

 울산의 문화원 탄생 50년은 마땅히 울산시민 모두가 축하할 일이다. 50년 전 문화원에 종사한 선배들이 척박한 울산의 문화판에 씨를 뿌리고 가꿔온 덕분에 울산의 정신문화가 지금 이만큼이라도 바로 설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5개 구·군 문화원장이 몸을 사리지 않고 앞장서야 한다. 영화(榮華)만 누릴 일이 결코 아니지 않은가. 울산광역시 또한 합당한 지원을 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늦어도 이 해가 가기 전에 제대로 된 문화원 탄생 50주년 기념사업이 꼭 성사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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