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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이름값을 제대로 한 책이 나와 기쁘기가 한량없다. 그 책은 울산광역시가 이번에 펴낸 '2013 울산의 문화재'다. 단순히 전년도에 나온 울산의 문화재 책에 새로 지정된 문화재를 실었거나, 오탈자를 수정 또는 끼어 넣어 펴낸 것이 아니다. 내용을 완전히 뜯어고친 새로 쓴 전면 개정판이다. 달라져도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을까. 놀랐다.

 울산시는 해마다 울산의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지정문화재를 소개하는 책을 펴내고 있다. 이름을 '울산의 문화재'라 붙인 책이다. 앞에는 발간 연도를 덧붙여, 즉 2013년 판(版)이면 '2013 울산의 문화재'라 하는 식이다. 통상적으로 전년도에 나온 책과 달라진 점이 거의 없었다. 그렇고 그런 낮은 수준의 의례적인 책이라는 인식을 벗지 못했다.

 상당수 인사가 해마다 울산의 문화재가 나오면 한 권씩 구하여 집에 아무렇게나 처박아 놓고는 활용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유적이나 유물이 지정문화재로 새로 등록됐는지를 알아보는 정도에 그쳤다고 한다. 장식용에 불과했다. 그만큼 읽을 가치가 부족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책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죽은 책에 다름이 없었다.    

 이는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한 1997년 이후 최초로 펴낸 울산의 문화재 책에서부터 비롯됐다. 관계자들이 현장 답사를 통해 문화재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각종 문헌자료를 참고하여 직접 정성들여 쓴 글과 현장의 상황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게 찍은 사진 등으로 책을 만들어야 하는 기본원칙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탓이었다고 하겠다. 

 그동안 울산의 문화재 책의 글은 현장 안내판 내용을 별다른 수정 없이 실었다. 구어체 문장으로 작성된 안내판의 내용을 옮겨 싣더라도 문어체로 완전히 뜯어고쳐 실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몹시 어색했다. 반구대 암각화는 2000년대 이후 고래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관람객이 늘어났는데도 상당 기간 안내판에 고래를 설명하는 내용을 제대로 적지 않았다. 문화재 책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한 지역의 수준을 나타내는 것 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책이 아니랴. 그 지역에서 나오는 책을 보면, 그 지역의 지적 수준을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울산이 전국 최고의 경제력을 갖췄지만, 그동안 펴낸 책의 수준은 어땠는가. 숨기고 싶은 치부였다. 개인의 책과는 달리 행정기관이 펴내는 책이라면 지역 역량의 총합을 보여줘야 한다. 

 때마침 나온 '2013 울산의 문화재'가 우려를 덜게 했다. 2012년 판과 비교하면 확연하게 알 수 있다. 책의 2대 요소인 글과 사진이 완전히 바뀌었다. 표지부터 눈길을 사로잡는다. 표지 앞뒤에 다양한 문화재 사진을 넣었다. 본문을 펼치면 더욱 신선하다. 이전에는 달랑 문화재 사진만 실었으나, 주변 풍경도 함께 담았다. 생동감이 넘치는, 살아 숨 쉬는 사진이 실렸다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은 2012년 판에는 무미건조한 각석 사진 뿐이었지만, 이번에는 주변의 시원한 풍경도 함께 실었다. 문화재란 주변 풍경까지도 포함된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명문(銘文)의 원명(原銘)과 추명(追銘)도 실었다. '반구대 암각화(국보 제285호)' 역시 암각화 사진 외에도 '반구'라는 유래를 나타내는 반구대 전경과 암각화박물관 사진도 실었다. 최근의 연구결과를 반영한 내용을 보충하여 설명문도 고쳤다.

 '망해사지 승탑(보물 제173호)'과 '청송사지 삼층석탑(보물 제382호)'은 이전에는 없었던 승탑과 석탑의 세부 명칭에 대한 설명도 곁들였다. '부북일기(赴北日記·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4호)'는 평이한 문체로 고쳤을 뿐만 아니라, 일기를 쓴 박계숙(朴繼叔)·박취문(朴就文) 부자가 울산에서 임지인 함경도까지의 북향과 귀향을 표시한 지도까지도 실었다. 일반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은 것 하나까지도 배려한 점이 책에 배어 있다.

 '2013 울산의 문화재'는 울산의 지정문화재 128점을 아름다운 글과 생생한 사진으로 소개함으로써 모처럼 귀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울산시 문화예술과 최윤진 학예연구사의 수고 덕분이라고 하겠다. 문화예술과의 뒷받침 또한 매우 컸다는 점도 잊지 않아야 한다. 이번 일은 새삼 인력의 중요성을 깨닫게 했다. 향후 울산광역시는 그 어떤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에도 반드시 친소(親疎)를 불문하고 역량 있는 인력을 골라 충분한 준비기간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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