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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는 이달우 화백. 방대한 작품양과 실험적인 방법론으로 지역 화단의 이목을 사온 그는 앞으로도 남은 힘이 다할 때까지 붓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에게는 '작업실에서 생을 다하는 것'이 곧 '순직'이다.

"지난 1982년 한국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연 이래 서울갤러리, 울산문화예술회관 전 전시장 등 큰 공간에서만 주로 작품을 선보였어요. 그런데 최근 울산에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고 이곳에 여러 갤러리가 들어서면서 나도 뭔가 이 거리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로코코 배영숙 관장의 끈질긴 설득도 한 요인이었죠. 오랜만에 울산에 방문해 로코코에 들렀는데, 작지만 있을 건 다 갖춘 전시장을 보니 마음이 동해서 곧바로 얘기했죠. '오케이, 전시하자'고."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끊임없이 창작활동을 펼쳐가고 있는 '만년 청년 화가' 이달우 화백(77)을 28일 그의 열네 번째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중구 로코코 갤러리에서 만났다.

1971년 미술 교사로 울산 땅 밟아
전공자도 지역출신도 아니였지만
치열한 작품활동으로 '지평' 넓혀

# 여전히 창작열 불태우는 '만년 청년 화가'
울산 유일 국전(대한민국미술전람회·1949년 문교부 교시로 창설, 81년 폐지 후 대한민국미술대전이 신설됨) 화가이자 대표 원로화가인 그가 이처럼 소규모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선보이긴 처음이다. 전시 이력을 보여주는 프로필 한 줄도 후에 작품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염려하는 작가의 평소 신중한 성격과는 어딘가 맞지 않는 행보다.

 이에 대해 그는 "울산에 처음 미술교사로 부임해 온 게 71년 즈음인데, 그때는 울산이 정말 삭막하고, 오로지 노동자들이 일만 하는 곳 같았어요. 미술전은 뭐 상상도 못 했죠. 남부현대미술제 운영위원으로 일하면서 여러 지역을 돌아다녀 보니 아, 울산에도 미술 전시 하나 꼭 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백방으로 뛰어다녔죠. 결국, 자금은 구했는데, 당시 현 김종수 문화도시울산포럼고문이 덜컥 100만 원을 내놨거든요. 근데 돈은 있는데 장소도, 인력도 없는 거예요. 김 고문은 당시 동원예식장에서 세미나도 하고 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전시장이 있어야죠. 몇 년 후 울산미협 지부장을 맡아 도와줄 사람들도 생겨서 종하체육관에서 드디어 경상남도미술대전을 처음 열었죠. 그런데 이제 울산이 이렇게 변화했으니 이 변화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야죠"라고 말했다.

# 게으름은 작가의 죄, 부단히 노력해야
이달우 화백은 지역 화단의 특별한 존재다. 텃세가 심한 지역 문화예술계에 다른 지역 출신이면서 미술전공자도 아닌데 작가로서 화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력이 그렇고, 여전히 치열하게 작품세계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는 것도 그렇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화려한 변신> 연작을 선보이는데 이 연작은 지난 개인전 '삶의 확인작업'(2008)에서 선보인 이후 그가 계속 고수하고 있는 작업이다.

 그는 작품마다 제작순대로 번호를 매기는데 2008년 당시 1,200대에 있었던 작품번호는 이번 전시에서 1,800대로 그 숫자가 늘었다. 작가는 그 수가 2,000을 돌파하면 또 다른 연작 명을 붙이고 새로운 작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그 정도면 이제 좀 느긋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밀양에 있는 작업실에서 꾸준히 창작에 전념하고 있다는 그. 이같이 끊임없는 열정의 에너지원이 궁금했다.

 이 화백은 "서양화로 예를 들면, 붓을 갖고 그림을 그린게 언제부터일까요. 르네상스부터 제대로 된 회화를 그렸다고 쳐도 그 이후 고전주의나 낭만 사조를 거쳐 수백 년간 회화를 그려왔을 거예요. 그리고 좀 더 다양해진 방법론을 사용하는 근대미술, 또 지금에 온 현대미술로 이어졌겠죠. 이처럼 미술의 발전은 곧 인류발전과도 맥이 닿아있어요. 그런데 만약 예술가들이 자기 방식에 안주해 발전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아이디어가 관건인 현대미술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요? 난 게으름은 작가의 죄라고 봅니다. 내가 예술가를 1등 인생으로 꼽는 이유는 그들은 늘 부단히 깨어있고 더욱 새로워지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죠. 늘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내는 이들. 난 자신을 예술가로 여기기 때문에 늘 내 작품도 새로워야 하죠"라고 말했다.

 지나온 그의 작품세계만 들여다봐도 그가 얼마나 이 말을 실천하며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 처음 미술교사 일을 했을 당시만 해도 그 역사 정물이나 풍경을 그렸지만, 이후 비구상에 매진한 후 재료와 방법을 바꾸며 지금의 화풍으로 변화했다. 30여 년 전 실을 이용했거나 수성과 유성 재료의 합성을 통해 보여준 작업, 안료의 자연스러운 흘러내림과 번짐을 보여준 작업에서 최근 들어선 또다시 염료와 펄프지의 재구성으로 새로운 시도를 했다.

 현재 그의 작품은 처음 보면 누구라도 한지를 연상하지만, 실제는 염료로 먼저 캔버스에 얼룩을 남긴 뒤 그 위에 펄프지 등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화시킨 결과물이다. "물론 예전에는 전시공간만 허락한다면 세로 5m, 가로 100m에 달하는 작품을 했을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사실 지금은 체력적으로 그때처럼은 안되는 부분도 있고요.(웃음)"

울산 유일 국전 출신 원로화가로
지역 미술계 발전에 힘 보태고자
작은 갤러리서 개인전 처음 열어

# 행정에 발목 잡힌 문화예술 운영 안타까워

순수한 자연현상이 화폭에 내려앉은 듯한 그의 신작.

 
오랜 세월 지역에서 활동했던 그가 지역 문화계에 아쉬웠던 점은 없을까. 그는 밀양으로 작업실을 옮긴 후 있었던 일화를 얘기했다.

 "밀양에 작업실을 얻었는데 입구로가 자갈길이다 보니 차가 올라가기 힘든 거예요. 그래서 밀양시청에 얘기했더니 당장 공사비를 1,000만 원 들여 도로포장을 해줬어요. 밀양연극촌이나 레지던시 사업 등 미술에 관심을 많이 두는 지역이다 보니 그런지 당장 밀양시청에 제 작품을 걸고 밀양에서 활동하는 화가로 소개하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전 제가 작품활동을 주로 했던 울산이 훨씬 더 정이 갑니다. 사기업이나 창원지방법원, 울산지방법원에도 제 작품이 있지만 아이러니하게 울산시청엔 제 작품이 없어요. 저로선 아쉬운 부분이죠."

 또 여전히 작가들의 경중을 구별하지 않고 7일이란 한정된 기간으로 전시를 펴고 있는 울산문화예술회관의 개인별 전시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했다.

 "행정의 어려움은 알겠지만, 회관 자체기획전을 더 오래 하듯 좀 더 의미 있는 전시나 가치가 높은 전시는 융통성을 발휘해 더욱 오래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봐요. 고맙게도 내 지난 개인전은 회관에서 보름 정도로 편성해줬지만, 그 이후 그런 사례는 잘 보기 어렵거든요. 시립미술관이 아직 없는 상황에선 회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봐요."

# 파벌·입김 연연 말고 작품활동에 몰두하길

 '이달우 초대전'이 열리고 있는 중구 로코코 갤러리 전경.
여전히 파벌이나 단체의 입김이 강한 현재 울산 화단에 대해선 어떤 입장일지도 궁금했다. 그는 "어느 지역이나 그런게 존재하고 사실 나 자신을 '미술계의 고아'라고 생각했던 제 입장에선 과거엔 그것 때문에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예술가는 어쩔 수 없이 고독한 존재예요. 자신의 작업만 제대로 이어나간다면 그런 건 아무 방해도 안 된다고 봅니다. 현재 울산에도 커가는 인재들이 간혹 보이던데 그들이 그런 것엔 구애받지 않고 치열하게 자신의 작업에만 몰두했으면 해요. 그래서 울산에서도 나를 훨씬 뛰어넘는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나오길 기대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달우 화백은 경상남도 밀양 출신으로 대한민국 미술대전 초대작가다. 주로 울산에서 활동하며 한국미협 울산지부장을 지내는 등 대표적인 지역작가로 꼽힌다. 현재는 밀양 작업실에서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그의 신작 20여 점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오는 4월 15일까지 갤러리 로코코(중구 옥솔샘 7길 6)에서 이어진다. 문의 052-267-7510.       김주영기자 us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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