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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쉽게 음모론에 빠져든다. 엄숙한 정부 발표보다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떠도는 얘기나 괴담에 더 귀를 기울인다.
 미국 영문학자 조너선 갓셜은 신간 '스토리텔링 애니멀'(원제: The Storytelling Animal)에서 "음모론이 우리를 매혹하는 이유는 기막히게 뛰어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며 "음모론은 고전적 문제 구조를 제시하고 좋은 사람과 나쁜 놈을 깔끔하게 나눈다"고 설명한다.
 우리 사회에서 연예인의 사생활이 담긴 '증권가 찌라시'가 순식간에 퍼져 나가는 것도 이런 이유다. 사람들은 강렬한 이야기에 미친 듯이 열광한다.


 저자는 책에서 인간의 스토리텔링 본능을 분석했다.
 과학과 문학을 융합해 새로운 인문학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저자는 진화 생물학, 심리학, 신경과학 등 최신 연구를 동원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야기의 필수 요소는 '말썽'이다.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들어간 해리 포터가 각종 사건을 일으키지 않고 시키는 대로 공부만 했다면 쉽게 독자의 눈 밖에 났을 것이다.
 그는 "이야기가 갈등으로 이뤄진다는 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래 서사 연구와 스토리텔링 교재의 핵심 원리"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우리 삶에서는 어떤 역할을 할까.
 저자는 인간은 이야기에서 삶 속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얻는다고 지적한다. "픽션은 삶의 거대한 난제를 시뮬레이션하는 강력하고도 오래된 가상현실 기술"이라며 "픽션 자극에 반응해서 뉴런이 지속적으로 발화(發火)하면 삶의 문제를 능숙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 뉴런 회로가 강화되고 정교해진다"고 분석한다.


 '픽션을 즐겨 읽는 사람이 논픽션을 즐겨 읽는 사람보다 사회성이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는 특히 흥미롭다. 소설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이를 무턱대고 '세상 물정 모르는 책벌레'라고 무시할 수만은 없는 근거인 셈이다.
 저자는 "이야기는 단지 재미와 쾌감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특히 복잡하고 어려운 인간의 사회적 삶을 헤쳐나가도록 실제로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미국 노예제 폐지론에 불을 붙인 일화 등을 소개한다.
 최근 우리나라도 이야기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스토리 산업 활성화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처럼 잘 만든 이야기 한 편은 음악, 영화, 게임 등 다른 대중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저자의 연구를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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