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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를 읽다∥ 이혜순·섬섬
고려의 역사는 끊임없는 외세 침략의 역사였다. 거란의 침입에 시달리는가 하면 남송(南宋)과 여진족 사이에서 살아남고자 고도의 외교전을 펴야 했고, 이어 원(元) 제국의 간섭을 오랫동안 받아야 했다. 만주와 중국 대륙의 정세 변화에 따라 고려의 운명도 출렁이곤 했다.


 이처럼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도 조그만 나라 고려는 500년에 이르는 역사를 이어 나갔다. 이를 가능케 한 동력으로 한문학자 이혜순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고비마다 정치인과 문인들이 내놓은 주옥같은 문장'을 든다. 그의 신간 '고려를 읽다'에는 이른바 문장보국(文章保國)을 이룬 고려의 명문장들이 엄선돼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외교 서한은 매우 치밀하게 선택한 단어와 표현, 문장을 담기 마련이다. 미묘한 문제로도 상대국의 심기를 건드려 외교 갈등은 물론 전쟁까지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당시 송과 거란국 요(遼)에 보내는 외교 서한 작성을 전담한 인물은 박인량(朴寅亮)이었다.


 문장이 유려하기로 유명했던 박인량은 1088년(선종 5년) 고려 땅에 설치된 요나라 시장을 철거해 달라는 서한을 보낸다. 요나라가 과거 양국 간 합의를 저버리고 압록강을 넘어와 고려 영토에 시장을 세워 매매를 일삼았는데, 이런 행위가 우호적 관계를 해친다고 지적하는 글이었다.
 '지금 저는 조상의 뒤를 계승하여 정성껏 이웃의 울타리를 지키면서 바야흐로 이 즐거움을 더욱 분발시키려는데, 어찌 조그마한 이익 때문에 원망을 사려고 하십니까. 양나라가 초나라와 이웃하여 서로 좋게 지낸 관과(灌瓜)를 본뜨기를 맹세하나, 우리나라는 장사(長沙)처럼 땅이 좁아서 즐거운 춤도 옷소매를 돌리기 어려운 정도이기에 여러 번 글월을 올렸습니다'
 박인량은 이 글에서 과거 중국 양나라와 초나라 간 벌어진 '참외 분쟁'을 언급하며 요의 행태를 꼬집는다. 초나라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가 양나라 참외를 몰래 따온 것이 엄연한 절도인 것처럼 남의 나라에 시장을 세우는 행태도 그와 다르지 않음을 에둘러 지적한 것이다. '땅이 좁아서 춤출 때 옷소매를 돌리기 어려울 정도'라는 표현은 사기(史記)에서 따 왔다.


 박인량의 글은 이처럼 고사(故事)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문장력에 더해 상대국이 그간 저지른 과오를 조목조목 제시하는 등 팩트(fact)에도 충실했다. 이 글을 받은 요나라는 별다른 반론을 내놓지 못했다고 한다.
 책은 외교 서한뿐 아니라 신하들에 대한 왕의 경고, 왕에게 간언하는 신하의 상소, 지식인들이 서로 주고받은 편지, 남편이 쓴 아내의 묘지명 등 다양한 문건을 통해 당시의 정치·사회상을 조명한다.
 이혜순 교수는 "고려 지식인들은 철학이나 종교의 이념에 매몰되지 않아 자유로우면서도 다양한 사고와 의식을 보여준다"며 "흥망성쇠가 빈번히 되풀이되면서 대륙을 지배하는 민족의 교체가 무상했던 이웃 중국의 혼란한 상황에도 작은 나라 고려가 500년을 지속한 동력은 문장에 있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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