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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프리모 레비·옮김·돌베개

끔찍한 제도적 폭력에 노출될 때 피해 집단 속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동지애로 뭉쳐서 서로 아픈 부분을 위로해줄까.
 현실은 다르다. 폭압적인 체제보다 한 술 더 떠 동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제 강점기 친일파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약삭빠르거나 한 줌의 권력을 가진 이들은 곧바로 자신을 괴롭힌 체제를 닮아간다.


 신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원제: I sommersi e i salvati)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펼쳐진 이야기를 소재로 인간이라는 존재의 심연을 들춰본 에세이다. 원작은 유대인 출신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1919~1987)가 1986년에 썼다.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경험을 토대로 여러 권의 소설을 써 굵직한 상들을 받은 작가다.
 레비는 아우슈비츠 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통해 가라앉은 자(죽은 자)와 구조된 자(살아남은 자)를 가로지르는 기억과 고통 그리고 권력의 문제를 파헤쳤다. 보통 사람들이 억압적인 기구의 범죄에 가담하거나 공범자가 되는 메커니즘에 주목한 것이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라는 표현은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에서 가져왔다.
 발간 당시 가장 논쟁이 된 부분은 2장 '회색지대'다. 수용소 포로들이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 무자비하게 권력을 휘두르는 심리를 분석했다.


 '권력자'들은 가스실행을 피하기 위해, 또 배고픔을 이기려고 당국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더욱 문제는 최후의 생존자 가운데 다수가 이들 '권력자'였다는 점이다. 용기 있고 정의로운 이들은 수용소 안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고, 대신 비겁한 이들은 대부분 살아남은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생존자 대열에 포함된 레비는 치욕감과 죄책감에 휩싸인 주변 사람들을 목격했다. 그들은 자기 존재의 일부를 박탈당했다는 느낌 때문에 괴로워했고, 체제에 대항하지 못했으며 더 약한 동료를 외면했다는 점 때문에 죄의식을 가졌다.


 레비는 이 책을 낸 이듬해 토리노의 자택에서 자살했다. 자살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삶의 핵심 주제였던 아우슈비츠 문제를 정면으로 깊게 다뤘다는 점에서 이 책은 유서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은 일어났고 따라서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프리모 레비의 증언이 참 아프다. 기억하지 않고 과거를 왜곡하고 망각하는 인간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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