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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이즈미 세이치·김종철 옮김·여름언덕
"첫날밤 의식에서 섬에서는 신부가 신랑 옷을 벗겨주는데 이는 육지와 정반대다. (중략) 일고여덟 살이 되면 딸은 어머니, 아들은 아버지에게 붙어서 일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남녀는 서로 정신적으로는 전혀 딴 세계에 사는 것이다"(169쪽)


 1966년 발간된 학술서 '제주도'의 한 대목이다.
 책은 제주도의 지질, 동식물 등 자연환경을 비롯해 촌락, 교통, 여성, 종교, 가옥, 식기, 혼례, 제례 등 모든 생활상을 촘촘하게 아우른다.
 한 집안의 5대에 걸친 가계도 등 각종 표와 통계도 무척 꼼꼼하다. 희귀 사진도 80여 컷이나 담겼다.
 놀라운 것은 저자가 일본인이란 점이다. 섬 동서남북의 방언이 각기 다르고 교통마저 매우 불편한 1930년대부터 1965년까지 30년에 걸쳐 곳곳을 누빈 결과물이다.


 일본 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1936년 한라산 등반을 계기로 인생의 진로를 바꿨다. 경성제국대학에 다니던 그는 산악부대원과 함께 정상을 공략했다. 적설기(積雪期)에 한라산 정상에 선 사람이 없었다는 점을 알게 된 그들은 치밀하게 등반 계획을 세운 끝에 정상을 밟았다. 하지만 눈보라 속에서 대원 한 명이 조난당해 목숨을 잃었다.
 이 일로 이즈미 세이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친구가 잠든 섬을 진지하게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에 전공을 문화인류학으로 바꾼 뒤 제주도를 샅샅이 조사했다.


 1935년부터 3년간의 보고서는 1부 '제주도민족지'에 담았다. 1950년 도쿄에 살고 있는 제주 출신 한국인을 상대로 한 면접조사와 통계는 2부 '도쿄에 있어서의 제주도인'에 실렸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뤄진 뒤 다시 제주도를 찾은 저자는 그동안의 변화상을 추적해 3부 '제주도에 있어서의 30년'에서 전한다. 30년에 걸친 연구를 한 권의 책에 집약한 셈이다.
 제주도 마을을 산촌(山村), 양촌(陽村), 해촌(海村)으로 나눠 분석한 시각도 독특하다.


 산촌을 지리·경제·종교적 잣대로 산촌과 양촌으로 나눈 것. 양촌은 부유한 마을로 유교영향을 받았고 계 조직도 발달했으며, 산촌의 해발은 조금 더 높고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했다.
 책은 또 조선시대 제주목사가 관군민 합동으로 대대적으로 벌인 수렵 조사도 담고 있다. 제주의 전통 수렵방식과 짐승 가죽을 다루는 공정, 도구를 조사한 대목은 연구자에게 귀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번역을 맡은 제주 출신 언론인 故김종철(1927~1997)씨 역시 천번 이상 한라산을 오르는 등 제주 사랑이 남달랐다.
 그는 저자의 연구를 토대로 직접 마을을 찾아가 사라진 이름과 방언을 일일이 조사해 한국어로 옮기는 등 공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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