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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연간 노동시간은 지난해 기준으로 2,163시간이다. 멕시코(2,237시간)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2위다. 그나마 2004년 주5일제가 시행되면서 조금씩 노동시간이 줄어들어 이 정도이고, 2000~2007년에는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를 지켰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노동시간 단축'은 한국에서 늘 새삼스러울 것 없는 사회적 요구가 돼 왔다. '일과 삶의 균형' '저녁이 있는 삶' 등 각종 구호가 등장했고, 실제 효과는 둘째치고 정부 역시 노동시간을 줄이거나 유연화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꾸준히 내놓고는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처지에 놓인 한국인들에게 '더 많은 노동이 필요하다'고 하면 납득하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듯 싶다. 그러나 지난해 노동시간이 1,388시간으로 OECD 최하위권인 독일에서는 실제로 이런 주장을 담은 책이 나왔다. 철학잡지 '호에 루프트' 편집장 토마스 바셰크가 쓴 '노동에 대한 새로운 철학'이다.


 저자는 스스로 "노동을 옹호한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19세기의 혹독한 장시간 노동으로 회귀를 주장한다고 짐작했다면 오해다. 이는 '좋은 삶'을 사는 데 노동이 필요하다는 철학적 구호이지 '죽도록 일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저자는 다만 노동을 "좋은 삶에 기여하는 살아있는 실천"으로 볼 뿐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노동을 도구로 여기는 관점이 일을 삶과 구별짓게 함으로써 노동의 가치를 격하한다고 비판한다. 그런 논리라면 노동이 아닌 다른 '도구'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경우 노동을 그만둬도 상관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복권 당첨자 14명 가운데 2명만 직장을 그만뒀다는 연구 결과를 대며 이렇게 말한다.
 "좋은 노동이 좋은 삶에 기여하는 본질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노동이 없는 삶의 가능성들을 찾기보다는 우선적으로 좋은 노동을 만들어내야 한다"(155쪽)
 책은 성경의 창세기에서 테일러주의와 포드주의에 이르기까지 노동 개념의 변천사를 살펴보고 번아웃(탈진), 변칙적 고용, 여성 경력단절 등 오늘날의 노동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화두가 되는 '무조건적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양론도 여러 학자들의 이론과 함께 자세히 소개한다.


 저자는 '노동의 종말' 유의 예견과 달리 여전히 노동이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정보기술(IT)의 발달로 노동조건이 유연해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는 데 주목한다. 이런 환경을 노동조건의 획기적 개선을 위한 기회로 이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사실 물리적으로 너무나 뚜렷하게 노동시간이 길고, 독일과 같은 탄탄한 사회보장제도의 뒷받침이 없는 한국에서 이 책의 관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노동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노동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시사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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