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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시를 읽는 이유는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이고 시, 아름다움, 낭만, 그리고 사랑은 우리가 살아있는 이유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중)
 즉 우리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라도 시를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시란 언제 읽어도 좋은 것이지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을 이 맘때는 시 한구절 읽기가 더없이 좋다. 그래서인지 최근 서점가에도 시집들이 줄이어 선보이고 있다.
 그중 1980년대 국내 시단의 '아이돌'로 통하는 이성복(62) 시인이 70~80년대 미발표 시를 묶어 낸 신간을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40년 가까이 시인으로서 외길 인생을 걸어온 그가 돌연 방향을 틀어 '출발점'으로 돌아가 청춘의 날에 쓴 시들을 불러냈다.
 이성복 시인은 과감한 시적 문법의 파괴, 세련된 언어 조탁, 모던한 시풍 등 개성 넘치는 시 세계를 펼쳐보이며 황지우 시인 등과 함께 80년대 '시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시집 '어둠 속의 시'에는 1976년에서 1985년 사이에 쓴 미간행 시 150편이 담겨 있다. 날 선 언어로 시대의 상처와 아픔을 토해냈던 젊은 시절 시인을 만날 수 있다. 시어가 펄펄 살아 날뛴다.
 "먹히고 입히고 가르쳤더니 기껏, 빌어먹을……어머니한테는 말이 안통한다/아무리 내가 어리석고 나의 시대가 어리석어도 할 말은 있다 카프카, 내 말 좀/들어봐 너처럼 누이들을 사랑한 사람은 없을 거다 누이들은 실험용 몰모트다" ('병장 천재영과 그의 시대 둘' 중)
 예순을 훌쩍 넘긴 시인은 시집 제목처럼 어둠 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젊은 날의 시를 왜 세상 앞에 꺼내놓은 걸까.
 경기도 파주출판도시 열화당 사옥에서 16일 기자들과 만난 시인은 자신의 황금기로 1979년을 꼽았다. 시인은 1980년 파격적인 첫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를 펴내며 문단에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1979년 모든 것을 다했다는 느낌"이라면서 첫 시집에 못 실린 시들을 이번에 새로 묶어 펴냈다고 소개했다. 시인은 이 시들을 "첫 시집의 지하실"에서 건져 올렸다.


 "첫 시집은 굉장히 격렬하고 불안하고 기본 조류가 사회의식 그런 것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시의 방향을 잡아주신 분은 김현 선생이셨습니다. 선생이 제가 쓴 시 가운데 몇 편 뽑아주셨는데 제게는 그것이 앞으로 이렇게 시를 쓰라는 방향 지시였습니다. 그때 선생이 제시한 방향이 아닌 시들은 첫 시집에서 다 빠졌는데 성적인 것, 연애, 사랑 이야기가 많습니다. 첫 시집이 그해 10월에 나왔는데 그 당시 광주에 5·18이 있었고 9월에 검열받으러 시청에 갔는데 잘린 부분이 접혀 나왔는데 상당 부분이 빠졌습니다"
 시인은 "두 번째 시집에 실린 시들은 1980~85년에 썼는데 그 무렵 서정적이고 짧고 민감한 쪽에 많이 끌렸다"면서 "당시 거칠고 격렬한 고통이 나오는 시들은 마음에 안 들어 다 뺐는데 이번에 복원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인은 또 자신의 작품에 반복되는 슬픔에 대해 "시인, 예술가라는 사람은 자꾸 억지로라도 눈을 뜨려고 하는 사람들이 아닐까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내가 사는 삶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면서 "극복한다는 말도 나한테는 성립 안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비유를 바꿔치기함으로써 얼마나 삶이 달라 보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게 예술가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시인은 우리의 인생이란 산봉우리에 올라가 원숙한 것이 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절벽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10대에도 절벽, 20대에도 절벽, 마지막에도 절벽이 있을 뿐 어디에도 완성은 없습니다. 예술가와 시인이 할 일은 산봉우리 비유를 다른 것으로 교차함으로 우리가 겪는 잉여 슬픔을 줄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경북 상주 출신인 시인은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계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했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 금산' '그 여름의 끝' '아, 입이 없는 것들'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등의 시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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