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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문득 잠이 깨어 붉은 하늘을 멍하니 바라다 보았다. 순간 지금이 저녁이 시작 되는지 아니면 아침이 시작 되는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빽빽한 빌딩 숲 뒤로 먼 산 위에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다. 아직 도시는 잠 속에 있는 듯하다. 해가 뜨는 과정을 한참을 바라보며 여기가 나의 집이라는 것에 새삼 고마움이 느껴진다.

 미국의 여성 작가 조지아 오키프는 자연의 불멸성에 대한 믿음을 풍경과 정물을 통하여 표현했다. 그녀가 살던 시대는 고층 빌딩들이 이제 막 생겨나기 시작한 때이다. 그녀는 새로운 시각적 느낌을 위해 호텔 최고층을 빌려 도시의 새벽을 그렸다. 나도 언젠가 내가 매일 마주하는 도시의 일출을 그릴 것이다. 어둠에서 깨어나는 찰나의 순간은 우리의 메마른 영혼에 따스한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집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 적이 예전에도 있었다. 울산이라는 타인들의 도시에 처음 둥지를 틀 때이다. 지금은 새 아파트가 들어서 나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야음 주공 아파트에 신접 살림을 차릴 때의 일이다. 오층 건물에 삼층이고 햇살이 따뜻한 13평 남짓한 조그만 집을 전세로 구하고 도배와 장판을 새로 바꾸었다. 조금만 바꾸니 낡은 집이 이제 내 집처럼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그 방에 잠시 누워 초등학교 같은 반 친구였던 남편과 앞으로 우리 열심히 살자고 다짐하며 마음이 꽉 차오르던 기억이 아련하다.

김덕진 作 '이거 우리 집 맞나?' 116.8x91cm Oil on canvas(2004).

 


 그리고 몇 년 후 그 당시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할 때는 아주 진지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이 그림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진지함 보다는 그날의 소박한 행복이 전해온다.

 우리는 그 집 이후에도 여러 번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할 때마다 고공행진하며 오르는 집 값에 속이 타들어 간 적도 있었다. 일년 마다 이사할 때는 미처 이삿짐을 다 풀지도 못하고 생활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늘 우리가 살았던 집에 만족했으며 올해는 작고 소박한 집을 마련하여 못도 마음대로 칠 수 있다. 이제 이사를 안 다녀도 되는 게 너무 좋다.

 그런데 작업실 건물 주인 아주머니가 전화를 주셨다. 달세를 올려 달라 하신다. 아! 작업실은 언제 이사 안 해도 되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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