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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걱정해주는 따뜻한 마음을 지니고 있을 거라고 늘 생각했어요.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수많은 사람의 불행을 가슴 속에 담아두었다가, 펜 하나에 의지해 그들의 슬픔을 풀어낼 수 있겠어요?"(72쪽)
 "소설가는 사람의 영혼을 치료하는 의사라고 어떤 소설가가 한 말이 생각나요."(165쪽)


 바진(巴金·1904~2005)은 루쉰(魯迅), 라오서(老舍)와 함께 중국 3대 문호로 꼽힌다.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城都)의 봉건 관료 집안에서 태어나 봉건 사회의 모순을 직접 체험한 그는 일반 백성의 고달픈 삶을 통해 인간의 존엄이 짓밟히고 불평등이 판치는 부조리한 봉건 사회의 실상을 낱낱이 드러내 보였다. '집(家)', '봄(春)', '가을(秋)' 삼부작으로 유명한 그는 문화혁명기에는 무정부주의적 성향을 이유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최근 번역 출간된 '휴식의 정원'(문학과지성사)은 항일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봉건 계급사회의 불합리와 모순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작품의 화자인 '나'는 소설가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나'는 길에서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나 그의 저택 '휴식의 정원'에 머물게 되고, '휴식의 정원'을 거쳐 간 사람들의 비극적 운명을 알게 된다.
 정원의 옛 주인인 양씨 일가가 대저택을 판 뒤 가족들이 흩어지는 장면으로 당시 봉건 대가족 사회가 해체돼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집안의 셋째 양멍츠를 통해 당시 중국 지주 계층의 방탕한 삶을 고발하며, 그들이 봉건문화에 의해 생존 능력을 상실한 이후에 어떤 운명을 맞게 되는지 경고한다.


 하지만 바진은 고발에서 멈추지 않는다. 가족에게 폐만 끼친 아버지마저 감싸 안으려는 어린 아들과 이들을 도우려는 주인공을 통해 진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는데, 여기서 폭력과 증오 대신 사랑과 용서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인도주의적 이상과 희망을 엿볼 수 있다.
 바진은 소설 속 인물들의 입을 빌려 소설가란 어떤 사람인지, 작가론을 소설 곳곳에 녹여 넣었다.
 "세상사가 기쁨보다 슬픔이 더 많고,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다는 건 잘 알아요. 하지만 소설가는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만들어줄 수 있잖아요. 눈물 흘리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모든 이가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을요."(75쪽)
 1944년 쓴 작품 후기에 그는 "돈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한다. 나를 더욱 가치 있게 살아가게 하는 것은 이상 뿐"이라고 밝혔다.
 또 "돈이라는 것은 겨울철 눈과 같아서 서서히 쌓이지만 빨리 녹아버린다"면서 "이 소설 속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대궐 같은 저택과 아름다운 정원은 주인이 수시로 바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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