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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이사 떡을 돌리는 것은 우리의 미풍양속이다. '새로 이사왔습니다'하는 신고의 의미와 함께 '앞으로 잘 지냅시다'라며 화합을 청하는 마음이다. 직장에 매이고 전세난에 쫓기는 세태라 이사가 일상화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라 여간 조심스럽지 않은 것이 이사다. 붉은 팥 고물로 떡을 만들어 벽사의 의미를 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미풍양속과는 거리가 먼 아주 이상한 이웃이 울산으로 이주해 왔다. 떡을 돌리기는커녕 기존 주민들에게 온갖 것을 내놓으라며 들쑤시는 불편한 이웃이다. 이사 오자마자 동네대장 짓을 하고 싶은 것일까. 울산혁신도시로 옮겨온 공기업 직원들의 요구가 도를 넘고 있다. 출퇴근 편의를 위한 대중교통 확충이나 편의시설 등 정주여건을 개선해 달라는 요구는 약과다. 처음에는 공기업 직원들의 가족 이주율을 높이기 위해 울산시가 몇 가지 지원책들을 만들어 혜택을 줬더니 이제는 아예 '내 보따리 내 놓으라'는 식이다. 교통시설 이용료 할인에다 각종 지방세 감면, 가족 취업 알선까지 요구 목록이 가관이다. 등 따시고 배부른 서울 생활을 접었으니 울산시가 '손실 보상'해야 한다는 뉘앙스마저 풍긴다.

 '신의 직장'에 다니는 몸이니 이만한 '특권의식'을 탓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니 뗀 굴뚝에 연기나랴. 이들의 이 같은 어처구니없는 요구는 울산시가 자초한 면이 없지는 않다. 바로 저자세 행정이 화근이다. 울산시는 한국석유공사 등 10개 공공기관이 우정혁신도시로 이전이 결정된 이후 이들 기관을 상전으로 모시는 '을(乙)'이 되기를 자청했다. 아파트 특별분양 주선과 함께 이사 비용을 지원해주고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공기업 직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공해도시라는 인식을 씻기 위해 공기업 직원과 가족들을 일일이 초청해 지역명소를 구경시키고 선물까지 쥐어줬다. 이들을 위해 울산시가 지금까지 마련한 지원책이 무려 26가지나 된다. 구체적인 목록을 보면 공기업 직원들을 '모시기' 위한 울산시의 '정성(?)'을 엿볼 수 있다.

 대강 눈에 띄는 지원과제를 추려보면 이렇다. △고교생 자녀 전·입학 장학금 지급 △이전기관 자녀 학교배정 전담창구 설치 △초중고 영어전담교실 운영 △원어민 보조교사 배치 △문화시설 무료 이용 지원 △KTX 이용료 기관 할인 △임직원 공무원 배우자 우선 인사 교류 △연구인력 겸임교수 추천 △자동차 구입 시 할인 알선 △주택자금 지원 알선 △이주정착비 지원 등등…. 혁신도시 내 초중고 설립이나 특목고 유치, 연계교통망 확보, 문화센터·체육관 건립 등과 같은 도시인프라는 제외한 목록이 이 정도다.

 울산시의 저자세에 자신감이 생긴 것일까. 공기업은 이제 완전히 갑(甲)의 시선으로 울산을 대하는 모양새다. 독신자를 위한 신규 아파트 특별분양과 KTX 울산역 공공기관별 전용 주차공간 마련에다 울산발 서울행 항공기 증편을 요구하더니 지난 8일에는 추가 요구사항까지 내놨다. 울산이전기관 노조 대표자 협의회는 이날 국토교통부 주관으로 열린 '혁신도시 정주여건 개선 점검회의'에서 7개 과제, 12개 세부사항을 울산시와 중구에 요구했다. 건의사항에는 중구청·중부경찰서의 혁신도시 조기 이전과 혁신도시 연계 버스노선 확대 및 교통시설 확충, 문화센터 야간반 신설이 포함됐다. 이 뿐만 아니다. 공기업 노조는 울산역과 울산공항 주차장 할인에다 취득세·재산세·자동차세 등 각종 이전 소용비용 할인, 공기업 직원의 배우자·가족 취업지원 알선까지 요구했다. 일반시민들의 심기를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요구 사항들이다. 이쯤이면 요구가 아니라 민폐다.

 상식의 선을 넘어선 난데없는 '특별대우'를 요구한 셈인데, 그럼 과연 그들은 요구만큼 울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을까. 정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다. 이전이 결정된 10개 공기업 중 현재까지 7개가 왔는데 가족과 함께 울산으로 온 직원은 10명 중 3명이 채 안 된다. 이전 공기업들의 지역인재 채용은 말 뿐이다. 울산 이전 공기업 9곳의 올해 정규직 지역인재 채용 규모는 고작 21명이다. 연초 계획했던 30명보다 9명이 줄어든 것이다. 이렇다보니 지역인재 채용률은 10.3%로, 부산(23.1%), 경남(16.7%)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공기업 청사 내 수영장 등 문화복지 시설의 개방은 인색하기 짝이 없다. 지자체의 세수도 석유공사 등의 경영적자로 기대에 못 미친다.

 한마디로 이율배반이다. 주택자금 알선에 이주정착비까지 지원했는데도 가족이주율은 26%에 불과하고, 배우자·가족 취업알선을 요구하면서도 지역인재 채용은 외면하는 게 그들이다. 정주여건 개선해 달라면서도 청사 문화복지시설 개방은 나몰라라다. 노선버스를 확대해 줬더니 셔틀버스 운행하는 게 또한 그들이다. 오죽하면 노선버스 운전기사들이 혁신도시로 몰려가 기관별 통근버스를 없애라고 시위까지 했을까. 말 따로 행동 따로, 도대체 이런 배장이 또 있을까 싶다. 되도 않은 우월감에 빠져 지역민은 안중에도 없다면 앞으로 상생은 없다. 울산 시민이 아니라 이방인일 뿐이다. 울산사람 또는 이방인, 선택은 공기업 직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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