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희영과 함께하는 울산근교산행] 신불산下
[진희영과 함께하는 울산근교산행] 신불산下
  • 울산신문
  • 2015.09.0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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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면 60여만평 황금빛 억새 물결로 장관

▲ 영축산에서 바라본 죽바우등과 오룡산.

# '산신령이 불도를 닦은 산'
간월재에서 오른쪽 신불산 방향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나무로 만든 데크길을 따라 15분쯤 오르면 전망대바위(1,159m)가 있는 암릉에 올라선다. 일명 두꺼비 바위 전망대가 있는 곳이다. 또한 이곳은 파래소폭포에서 왕방골로 거치지 아니하고 곧바로 신불산 안부로 올라오는 산길로 옛 공비지휘소가 있었던 969m고지이며, 신불산 서남능(만길능선)이 갈라지는 곳이기도하다. 전망바위에서 고개를 왼쪽으로 약간 돌리면 신불산 공룡능선이 그 위용을 드러내고, 발아래로는 홍류골과 가천마을, 멀리 문수산과 남암산이 운무속에 아련하다.
 전망바위지대를 지나면 등로는 차츰 완만한 길로 바뀌고 10여분 뒤 신불산(神佛山) 정상에 오른다. 신불산은 산신령이 불도를 닦은 산이라 하여 신불산(神佛山)이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신불산은 동으로는 신불 공룡능선, 삼봉능선, 아리랑릿지, 쓰리랑릿지, 에베로릿지와 같은 바위능선과 홍류폭포(높이 109척 33m)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파래소 폭포를 품고 있고, 남쪽으로는 영축산과 인접하면서 가을철이면 국내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넓은 억새평원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 기도하다.
 또한 통도사 뒤 영축산과 같은 지맥을 형성하고 있으며, 심신이 괴로울 때 기도를 올리면 도와주는 산이기도 하다. 또한 신불산 억새 평원은 산림청이 선정한 한국의 100대 명산. 울산12경 중 8경에 해당하는 곳으로써, 신불산에서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60여만평, 4㎞능선 길은 한편의 수채화를 연상하리 만큼 수백만평의 억새 평원으로 국내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100대 명산·울산 12경 간월재 인기
통도사 뒤 영축산과 같은 지맥 형성
청석골 아슬한 계곡 타기 스릴 만점

▲ 만길능선 초입에서 바라본 백련계곡.
 신불산 정상에서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신불재로 발길을 돌려보자. 가르마처럼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길 양쪽으로는 가을을 기다리는 억새무리들이 손짓을 하고, 삼삼오오 짝을 지은 산객들 하나 둘 꽃이 되고, 바람에 실어 나른다. 20여분 뒤 신불재에 도착한다. 신불재는 신불산과 영축산의 중간지점이다. 옛날 울산의 보부상(褓負商)들이 배내, 밀양, 청도 방면으로 물건을 지고 나를 때 이 고개를 넘나들었던 애환의 고개(嶺)이기도 하다. 또한 단조성(丹鳥城)이 축조된 지점으로 왼쪽은 언양 가천 마을로 내려서는 가장 가까운 등로이고, 오른쪽은 배내 청석골(백년골)로 내려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진행방향으로 직진하면 낙동정맥이 영축산으로 이어지고, 광활한 억새평원이 펼쳐지는 등산로의 요충지이기도 한 셈이다. 또 식수를 구하기 좋은 샘터가 가까이 있어 영남알프스중 간월재와 함께 비박하기 좋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 신불산 단조산성.
# 역사적 아픔 간직한 단조성
신불산과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산정에는 축조년도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지만 폭이 3m, 둘레가 12㎞쯤 되는 단조성(丹鳥城)이 있다. 단조(丹鳥)란 머리가 붉은 학을 말하는데, 산성의 모습이 마치 목을 길게 뽑아 세운 학처럼 생겼다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그 안에는 천지가 있어 사철 마르지 않는 우물이 12개나 있다. 또한 신불산은 천지개벽 때 해일이 일어나 산꼭대기를 단지만큼만 남기고는 모두 물에 잠겼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영조 3년(1727) 무렵 암행어사 박문수가 영남을 돌 때 단조성에 올라와 성을 보고는 '산성의 험준함이 한명의 군사가 능히 만 명을 대적 할 수 있는 곳'이라 하였고,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도 이 성을 쳐다보고는 '마치 하늘에 붙은 성 같다. 조선에 성이 없으랴만 이 성마저 잃을 수는 없다'고 하면서 난공불락의 성이라 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 성이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하여 어이없이 함락 당하고 말았다. 그 사연은 다음과 같다.
 한 노파의 아들이 왜병에게 포로가 되었다. 왜병들은 그 노파에게 만약 단조성으로 가는 길을 가르쳐주면 아들을 살려 주겠다 하였다. 노파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단조성으로 가는 비밀통로를 알려 주었다. 왜병들이 단조성 서쪽 산성으로부터 들어갈 수 있는 비밀 후문을 불의에 기습하니 우리 쪽 병사들은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태연하게 동쪽낭떠러지 아래쪽만 경계하고 있다가 제대로 한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몰살을 당했다고 한다.

▲ 청수골에서 만난 공룡 발자국.
# 청석골의 아름다운 절경
신불재(고개)를 뒤로하고 오른쪽 청석골(백년골)로 발길을 재촉해보자. 이곳에서 신불산 휴양림 하단까지는 3.5km로 1시간20여분 걸린다. 신불산에서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주변에는 가을을 기다리는 억새들이 넘실거리고, 한껏 비추는 해를 안고 억새를 바라보면 웅장하다 못해 감탄사가 '아~' 하고 절로 나올 정도로 감탄 그 자체이기도 하다.
 단조성 갈림길에서 산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청석골(백년골)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계곡 타기를 하면서 내려 가본다. 산길을 따라 걸을 때보다 약간의 위험과 어려움도 있지만 계곡타기의 묘미는 사계절 중 단연 여름철인 것 같다. 계곡의 지류인 작은 물줄기는 아래로 내려 갈수록 합수(合水)되어 점점 깊이를 더해가고, 군데군데 이어지는 이름 모를 소(沼)와 담(潭)은 아름답다 못해 말로는 표현 할 수 없는 자연이 빗어낸 걸작으로 연신 카메라 세트를 눌려댄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경관들을 못내 아쉬워하며 아래로~ 아래로 발길을 내딛는다.

 세간(世間)에 잘 알려지지 않은 청석골(백년골)계곡 타기를 하면서 아래로 내려오다 보면 계곡의 경관은 일명 청석골폭포 부근에서 절정을 이룬다. 때론 바위를 타고, 때론 우회를 하면서 계곡의 맑은 물줄기는 작은 폭포를 연신 만들어 낸다. 경치 좋은 곳에서 하루의 피곤함을 풀기도하고, 세속에 얽매여 살아가는 우리인생의 고뇌를 잠시 벗어나 무거운 짐을 이곳에서 내려놓는다. 폭포의 웅장함과 장대함에 매료되어 한참을 서성이다가 아래로 발길을 재촉한다.
 청석골폭포를 지나 20~30여분 계곡타기를 더한 뒤 아래로 내려오면 계곡물은 합수(合水)되어 수량이 절정을 이룰 때면 계곡을 빠져나와 오른쪽 주 등산로와 만난다. 신불산 정상-4.7㎞지점, 신불산 서남능이 시작되는 부근이다. 길옆으로는 몇 개의 돌탑이 보이고, 조금 뒤 나무계단으로 내려선다. 왕방골 파래소폭포 방향과 청석골(백년골)이 나누어지는 갈림길에 도착한 셈이다. 조금 뒤 잠수교와 파래소2교 다리를 건너게 되고 신불산 휴양림(하단)지구 매표소에 도착하게 된다. 매표소를 빠져나와 오른쪽의 백련암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라 내려오면서 '왜 산에 가느냐고' 시(詩)를 떠올려보면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한다.
 산악인·중앙농협 정동지점장
 

왜 산(山)에 가느냐고                
                                           진 희 영
 
말 많은 길 버리고 이정표도 뒤로하고
계곡을 건너뛰면 덩달아 나는 새들
온몸에 돋는 초록빛 바람소리 머금는다.
 
바위에 걸터앉아 산봉우리 바라보면
산 빛 닮은 사람들 하나 둘 꽃이 되고
억새도 제 가슴 열어 푸른 길로 눕는다.
 
누구냐 살며시
내 어깨 감싸 안는 허공
 
달하나 떠 올리면
내 이름도 이제 산(山)
나도 덩달아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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