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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휴(歸休)

                                                문태준


돌아와 나흘을 매어놓고 살다
구불구불한 산길에게 자꾸 빠져들다
초승달과 새와 높게 어울리다
소와 하루 밤새 게으르게 눕다
닭들에게 마당을 꾸어 쓰다
해 질 무렵까지 말뚝에 묶어놓고 나를 풀밭을 염소에게 맡기다
울 아래 분꽃 곁에 벌을 데려오다
엉클어진 수풀에서 나온 뱀을 따르며 길게 슬퍼하다
조용한 때에 샘이 솟는 곳에 앉아 웃다
이들과 주민(住民)이 되어 살다


● 문태준 시인- 1970년 경북 김천 출생. 1994년 문예중앙 등단. 제21회 소월시문학상, 제4회 노작문학상, 제5회 미당문학상. 불교방송 프로듀서.

▲ 류윤모 시인
▣ 여행노트
귀휴(歸休). 객지를 떠돌다 고향 옛집으로 돌아와 쉬는.
 그래도 농경시대에는 민초로서의 자족적 충만감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도시의 현란한 삶은 표면은 화려하나 박 터지는 생존경쟁으로 내면은 일그러지고 상처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다. 거기서 온갖 병리가 비롯된다. 몸이 병들고 마음이 시드는 것도 다 진정한 休가 없기 때문이다. 관계는 복선이 깔리고 분주하고 정신 사납다. 혼선이 오는 뇌 속을 말끔히 정리하는 오만가지 생각의 休.
 불필요를 가지치기 해서 단선의 홀가분함을 관조하는 시 한 줄 한 줄이 단순 명쾌하다. 구구한 설명 붙이고 말고도 부질없는 사족이다. 사람살이가 이처럼 단순해도 되거늘 다들 그리 복잡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지. 대다수 현대인의 삶은 채우고 채워도 밑 빠진 독처럼 허무하다. 그러니 마음이 부초처럼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 주말이면 도심을 벗어나 교외로 향하는 승용차들의 밑도 끝도 없는 행렬을 보라.
 장자크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일갈했다. 귀휴의 행간처럼 기성세대의 성장기는 거개가 오십보백보. 봉창에 해 뜨면 들판으로 일 나가고 해지면 돌아와 저녁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는 일상이었다. 아직도 단선적인 농경의 향수를 못잊어 전원생활을 꿈꾸고, 지친 도시의 삶을 떠나 귀농 귀촌 물결이 이는 것이다. 손바닥만한 텃밭이라도 가꾸는 행위도 안분지족에 대한 향수다.
 허나 이젠 고향도 이뿐이 꽃분이 모두 나와 반겨주는, 민낯의 무구한 옛 고향이 아님에. 이젠 어디라 할 것 없이 모든 생산행위가 돈. 돈과 직결된다. 하여 귀휴의 시인은 기억 속 정처를 재생해 나흘을, 도회로 달아나려는 마음을 붙잡아 매놓고 사는 거다.
 김천 어디쯤 시인의 귀휴는 무슨 무쇠 당나귀 타고와 고기 굽고 배 두드리며 질펀한 술판 벌리는 위화(違和)의 휴식이 아니라 고향을 이루는 피조물 전체와 동격으로 어울리는 동화다.
 시골에도 이젠 노인 세대만 사는 것이 아니고 귀농 귀촌한 이들이 적지 않다. 마음잡고 사는 젊은이들에게 위화감을 준다면 거기 가 쉬고 올 하등의 이유가 없다. 차라리 고함지르며 아무렇게나 벗고 놀아도 며칠 지나면 다 잊히는 익명의 인파 바글거리는 해수욕장이나 계곡이 적격이다.
 기왕 시골을 찾는 가족이라면 있는 듯 없는 듯 원주민들과 교감하며 조악한 음식과 불편한 잠자리를 기꺼이 감수하는 휴가가 어떨 런지. 생각을 단순화해 시인의 시처럼 한가로이 한 사나흘 살아보는 여유로 밖에서 안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休, 歸休. 류윤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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