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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발
                                                                    이정애

숱한 상처 머물다간 복숭아 뼈
그 아래 다시 진달래 피었다
차마 고도를 넘는 말처럼
편자를 박는 생 울음이 터지는 발
산맥처럼 불거진 광대뼈에
깊은 우물 눈빛을 지닌 그가
다리를 휘저어 보지만
피멍은 쫓아낼 수 있는 파리가 아니다
이름을 부르면 돌과 잡초는 답을 하건만
이 발자국이 훑고 간
수만리 비탈길은 귀가 없다
양은냄비 같은 얼굴로 둘러 앉아
함께 밥을 밀어 넣는 식구들
흘깃흘깃 아비 발을 훔쳐보는
아이들 눈에 우물물 차올랐다
한마디 말은 없지만
발은 웃고 있다

● 이정애 시인 - 울산문협 시민문예대학 수료. 프리마베라 에스테틱 원장. 국제 사이버대 재학 중

▲ 류윤모 시인
여행노트

아버지의 생애에 대해 짚어보는 세상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엄마를 부탁해' 등 어머니를 주제로 한 작품들은 널려 있지만. 아마도 부계사회에서 모계로의 이동현상. 봉건 사회에서 위계만을 강요하며 고압적이고 부정적으로 굳어진 이 땅의 아버지들의 이미지가 한몫 했을 터.
 걸핏하면 주폭을 일삼고 술에 떡이 되어 술집 여자를 들쳐 업고 방문을 차며 들어오는
 x새끼 아버지 /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라는 이성복 시인의 시처럼.
 그 당당하던 아비들도 이젠 늙고 병들어 산업 폐기물이나 다름없는 사회적 잉여로 설자리를 잃고 주변인이 되어 가고 있다. 자조적인 삼식이 시리즈가 그 씁쓸한 위상을 말해준다.
 다시 펙트로 돌아가 그렇다면 정말 이 땅의 아버지들의 헌신은 무의미로 평가절하해도 좋은가.
 피를 삼키며 목청을 돋우어 변명한다한들 오늘날을 구가하는 공헌도는 일부 약삭빠른 미꾸라지들이 가로채 흐려놓은 흙탕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그 아비의 비루한 고난의 길을 일찍 철든 신예 이정애 시인이 울먹이며 따라잡고 있는 것.
 노새처럼 무거운 짐을 지고 험난하고 고달픈 길을 터벅터벅 걸어온 생 울음이 터지는 발.
 어쩌면 진달래로 상징되는 한반도의 역정이기도 한.
 피멍든 발이 스캔해온 그 길은 박목월 시인의, 아랫목에 모인/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아니 십구 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존재한다/미소하는/내 얼굴을 보아라,는 굴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을 걸어 왔노라는 자화상의 판박이. 그 말없는 인생들에 대해 들어주는 귀도 대답도 메아리도 없는 가파른 세상.
 밥상머리 구겨진 얼굴로 둘러앉은 가족들. 난 괜찮다며 아비는 공허하게 웃고 있지만 철없는 어린 것들이 뭘 알고 눈물지을 것인가. 약솜을 바꾸는 처절한 고통을 참는 뭉개진 발만 봐도 절로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말없는  발은 곧 아비가 걸어 온 인생인 것을.질펀한 눈물이 아닌 절제된 눈물을, 그 것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 객관화해서 더 아프다. 예사롭지 않은 신인의 등장에 아마도 울산 시단은 긴장해야 할 것이다 .  류윤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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