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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신춘희
홀로 계시던 어머니
홀로 떠나신 날
홀로 남은 이부저리
홀로 남은 잠옷
홀로 남은 안경
홀로 남은 당뇨 약
홀로 남은 성경책
홀로 남은 리모컨
홀로 남은 운동화
홀로 남은 지팡이
아! 세상은 결국 홀로구나
홀로는 가장 작은 흔적의 단위구나

마음도 생각도
기쁨도 슬픔도
무게를 비워야
마침내 닿을 수 있는 경지

홀로
홀로

●신춘희 시인: 1953년 서울 생, 대구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 경상일보 논설실장을 거쳐 현 울산이야기 연구소장.


▲ 류윤모 시인
이 시의 기조는 무겁다. 마치 노란색 상장(喪章)을 가슴에 단 상주의 처연한 표정을 마주한 듯하다. 시가 꼭 낯설게 하기니 모더니티니 하는 시류에 편승해야 만이 주목을 받고 그럴싸한 것으로 몰고 가는 경향들이 있다. 하지만 외피인 기교만 능란하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시는 원숙한 고민의 흔적인 본질적 깊이를 확보하고 있다. 곡괭이 메고 시의 광맥을 향해 첨단까지 몰고 가고 있다.
 거액의 통장, 막대한 유산 같은 배금적 가치보다 생각할수록 연민이 앞서는 사자(死者)의 마지막을 의미하는 소박한 유산들. 안경, 당뇨 약, 성경책, 운동화, 지팡이… 거시적이던 삶도 다들 이렇게 미시적으로 남기고 가는 것이 부싯돌 한번 풀썩 긋고 가는 인생이 아닌가. 소품으로 남아있는 그 자체로 고인을 추억하는 유족들이라면 눈물바람을 불러올 것이다 손때 묻은 유품 하나하나가 상징으로 연결되어 생전의 기억을 아프게 되살려 올테니 말이다 하나하나가 마침표들이니 피붙이 살붙이들로서는 눈물겹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한번 왔다가 가는 이 지상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우리는 요즘 세간의 대세인 몸만들기, 운동, 운동이나 열심히 하여 표본실의 청개구리같은 이두박근 삼두박근이나 알코올로 방부 처리하여 세세대대 물려 줄 것인가. 그것이 다만 남은 이들의 눈에 눈물 고이게 할, 의미 있는 유산일까 생각해 볼 일이다. 그도 아니라면 내 몸 하나 잘 먹고 잘 살다가 가면 그뿐. 이기만 가득하고 이타는 없어도 그만인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먼저 간 피붙이 살붙이를 회상하며 눈물 고이게 하는 것은 무언가를 위해서!! 육체와 정신을 극한으로 소모하고 가는 희생의, 불꽃같은 일생이 아닐 까 싶은 것이다 어차피 한번 왔다가 가는 일생, 불노장생을 간절히 찾아 다녔던 진시황도 피해가지 못한 그 마지막. 아무리 애지중지한들 육신은 쓰다가 버리고 가는 정신의 포장지일 뿐. 물신주의와 몸만들기에  지나치게 경사돼 있는 세파에 가장 작은 단위로 모든 무게를 비워야 가 닿을 수 있는 경지라는 함축으로 영혼의 휴거인 홀로를 깊이 성찰하며 이 시는 울림을 주고 있다.  류윤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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