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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 입은 여자
                                                       김기택

탱탱한 피부처럼 살에 착 달라붙은 흰 셔츠를
힘차게 밀고 나온 브래지어 때문에
그녀는 가슴에 알 두 개를 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간혹 팔짱을 끼고 있으면
흰 팔을 가진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베들레헴의 마구간처럼 은은한 빛이
그녀의 가슴 주위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알에서 태어나 나라를 일으켰다는 고주몽이나
박혁거세의 후손들이 사는 이 나라에서는
복잡한 거리에서 대낮에 이런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고 드문 일도 아니다.
길을 가다 멈춘 남자들은 갑자기 동그래진 눈으로
집요하고 당당하게 그 눈빛들을 햇빛처럼 쬐었다.
타조알처럼 두껍고 단단한 껍질 속에서
겁 많고 부드러운 알들은 그녀의 숨소리를 엿들으며
마음껏 두근거리고 있었다.
가슴에서 떨어질 것 같은 알의 무게를 지탱하기에는
그녀의 허리가 너무 가늘어 보였지만
곧바로 넓은 엉덩이가 허리를 넉넉하게 떠받쳤다.
산적처럼 우람한 남자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아기를 안고 그녀를 따라오고 있었다.

●김기택 시인: 18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김수영 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제4회 미당문학상, 상화시인상 등.


이 시는 관음사회의 속성을 꿰뚫고 있다.
 자고새면 음화들이 실시간으로 생산, 유통되는 섹슈얼한 사회. 섹시라는 말의 어원인 도화살이니 뭐니 뒷전에서 흉을 보던 봉건사회의 고루한 편견을 벗고 도리어 섹시하다는 말이 으뜸의 상찬이 되는 형이하학적 담론의 섹스, 스크린, 스피드의 3S 사회. 스크린 산업의 비약적 성장. 여성성의 상품화, CF 주도의 소비문명 여성성의 환금가치로 굴러가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이 시는 이미지화 해 내고 있다.
 다른 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권력과 금력을 가진 힘 센 자가 가장 섹시한 여자를 차지하는, 트럼프 같은 금력 앞에 예의니 지성이니 사랑이니 하는 시시비비는 다 뒷전. 이 시에서 베들레헴 마굿간에 경배 드리듯 하는 뭇 눈길은 단순한 관음이 아니다. 사회적 섹슈얼리즘 숭배의 한 단면. 알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산적 같은 우람한 남자는 힘센 자본의 상징. 힘센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속속들이 갈파해 내고 있는 것.  류윤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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