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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모든 것이 노무현 때문이라는 유행어가 돌았던 적이 있었다. 길 가다가 돌부리에 채여도 노무현 때문이고, 지난주에 산 로또가 하나도 안맞아도 노무현 때문이었다. 얼마나 유행이 됐던지 위키백과를 치면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유행어가 역사성을 갖춘 문장으로 풀이돼 있을 정도다. 그 백과 사전을 인용하면 이렇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는 모든 사회 문제를 당시 대통령 노무현의 탓으로 돌리는 대한민국의 인터넷 유행어이다. 2005년부터 유행하였으며, 주로 인터넷 뉴스 사이트의 의견란에서 사용된다. 애초에는 말 그대로 사회 문제나 사건을 놓고 노무현 탓을 하는 표현이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 재임 말기에는 '고스톱에서 져도 노무현 때문이다' 라는 이야기가 방송에서 보도되기도 했다.

참 딱한 이야기지만 현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든 게 박근혜 때문이다. 식탁에 공포감을 몰고온 살충제 달걀도 박근혜 탓이란다. 더불어민주당은 살충제 달걀과 관련해 류영진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해임을 요구하는 자유한국당에 대해 "살충제 계란 파동의 원인을 굳이 찾자면 국민의 식품안전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한 이전 정부에게 있다"고 했다. 민주당 제윤경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자유한국당에게 묻고 싶다. 살충제 계란 사태가 현 정부의 잘못을 물을 일인가?"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살충제 계란에 친환경 인증을 해준 민간업체들은 대부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출신이다. 이른바 '농(農)피아(농식품 공무원과 마피아의 합성어)'들이 장악하고 있는 한 적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둘러 이야기 했지만 결국은 박근혜탓이라는 말이다.

출범 100일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일은 낯 뜨겁다. 그렇다고 툭하면 구속된 전직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리는 일도 당당해 보이지 않는다. '내로남불'이 일상화된 사회여서 그런지 내탓보다 남탓이 익숙한 시대다. 책임질 줄 모르는 사회는 엉덩이가 빨갛다. 얼굴은 분칠로 가려서 부끄러움을 감추지만 아무도 볼 수 없는 엉덩이는 언제나 빨갛게 변색해 부끄러움이 유전인자조차 바꿔놓았다. 정권을 잡으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두들겨 패고 싶은 욕망이 끓어오르기 마련인가 보다. 절대로 정치보복은 안한다는 발언은 정권창출의 기념사처럼 권두언으로 사용되지만 정권의 충신들은 주군의 뜻을 알아서 읽고 열심히 두들겨 팬다. 10년 체증이 막걸리 한잔에 내려갈 일은 아니라는 것쯤은 국민들도 알겠지 싶은 암묵적 양해가 교감하고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며칠전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기념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날 행사의 총 책임자는 탁현민 행정관이었다는 후문이다. 그는 이날 행사를 총 기획하며 '각본 없는 드라마'로 호평을 받았다. 문 대통령이 입장하기 전에는 가수 이적의 '걱정 말아요 그대', 박효신의 '야생화', 윤종신 곽진언 김필의 '지친 하루', 정인의 '오르막길' 등 가요 4곡이 배경음악으로 나왔다. 

이 가운데 정인의 '오르막길'은 문 대통령이 네팔로 떠나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며 들은 노래였다. 탁 행정관은 당시 트레킹에 문 대통령과 동행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과거 기자회견에서는 음악을 틀더라도 클래식을 거의 안 들릴 정도로 썼던 것 같은데, 탁 행정관은 생각이 많이 다른 것 같더라"며 "문 대통령이 그의 참신한 행사 방식에 대해 워낙 신뢰를 주고 있고, 새로운 시도에 대해 국민의 반응도 좋아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르막길이거나 걱정말아요거나 분위기 좋게 행사 잘 진행했으면 그만이다. 여성단체가 들고 일어나고 여당에서조차 문제를 삼는 탁현민이지만 행사 하나 걸출하게 진행하는 솜씨는 문 대통령이 왜 그를 곁에 두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말이 필요없는 증좌다.

남자사용설명서를 쓴 탁현민의 청와대사용설명서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그의 진행방식이거나 그의 콘텐츠 다루는 솜씨가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대중가요든 클래식이든 영상물이든 언어적 수사든, 그런 따위가 아니다. 취임 100일의 대통령을 향해 공과를 이야기 하거나 성적표를 이야기 하는 쪽은 성급하다. 100일된 정부에게 어떤 책임을 주장하는 쪽은 초조해서 그렇다. 핵심은 미래다. 아주 먼 훗날이 아니라 당장 찾아오는 내일의 이야기다. 물론 이 문제는 오늘의 시점에서 출발하는 문제다. 복지의 확장, 정책의 좌클릭, 박근혜탓의 적폐청산 모두가 내일의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면 기다려줄 수 있는 문제다. 그렇지만 대안없는 탈원전이거나 재원없는 복지 확장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이적이 걱정말아요를 아무리 외쳐도 문재인 정부의 앞으로가 걱정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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