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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할배 윤혜신 글·김근희 그림 48쪽·1만2,000원·씨드북

만약 이 책 속 '꽃할배'가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는 분명 이름을 날리는 예술가나 정원 디자이너, 하다못해 꽃집 주인이라도 됐을 것이다.
 하지만 할배의 어린 시절은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었던 때. 먹지도 못하는 꽃, 감성 따위는 뱃속부터 채우고 난 뒤의 일이었다. 쇠꼴해오라고 보낸 지게에 할배가 들꽃을 가득 짊어지고 오면, 그의 어머니는 꽃을 패대기치곤 했단다.

 이 부분을 읽는데 순간 머릿속에서 한 장면이 오버랩 됐다. 어린 시절 들었던 우리 엄마 얘기였다. 소싯적 꽃을 좋아했던 엄마는 마당 초입이며 뒷간 옆 등 집안 곳곳에 꽃을 심곤 했다. 그러면 외할아버지는 칭찬은커녕 다니는데 걸리적거린다며 장홧발로 그 꽃들을 밟아버리곤 했단다. 딸바보 아빠들이 많은 요즘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작가 역시 서문에서 이 책이 자신의 아버지, 할아버지 이야기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들의 경험으로 확장시키는 능력, 젊은 세대에게 과거 세대를 공감하게 한다는 점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꽃할배의 꽃사랑은 결혼 후에도 식지 않는다. 열여섯, 네 살 위인 화자의 어머니와 결혼한 그는 부인이 나무해 오라고 해도 꽃만 짊어지고 온다. 결국 지게도 뺏기고, 나물팔이에 나서지만 이번엔 나물을 꽃다발처럼 묶어서 팔아 지나가는 아낙들의 눈요깃감만 된다.
 하지만 꽃할배의 자식사랑 역시 꽃사랑에 버금간다. 어느 보름달이 밝던 밤, 한 번은 다 자고 있던 자식들을 별안간 깨워 마당에 쭉 일렬로 세운다. 다음날 아침 밝혀지는 이유. 아버지는 그날 밤 아이들 그림자를 따라 조약돌을 늘어놓았다. 자식사랑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사실 이 책은 요리연구가로 더 알려진 윤혜신 작가의 첫 그림책이다. 그래서 문학적으로 아주 뛰어난 성취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꽃할배의 인간적인 모습, 아버지로서의 따뜻함은 너무나 잘 그려져, 마치 살아있는 인물을 보는 듯하다.

▲ 김주영기자·울산그림책연구회원
 책의 백미는 무엇보다 김근희 작가의 그림이다. 할배가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가지각색 들꽃은 그대로 책에서 피어났다. 꽃 뿐 만이 아니다. 할배의 뒷모습이나 불콰하게 취해 아이들을 해맑게 바라보던 모습, 장날 풍경 같은 서정적이고 따뜻한 그림은 그 때 그 시절을 그립게 만든다. 분명 크게 멋 부린 것도 아닌데 그의 그림은 이 책을 자칫 평범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작품의 반열로 올려놓고 있다. 물론 누구나 가슴속엔 있는 내 아버지, 내 할아버지 사랑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 자체로 이미 좋은 작품일 것이다.  김주영기자·울산그림책연구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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