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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0일은 자살예방의 날이다. 자살문제는 여전히 우리의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집중적인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만 워낙 복잡한 여러 분야에 걸친 다양한 현상과 맞물려 있어서 우리의 집중을 어렵게 하고 있다. 여러 어려운 문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자살이나 그와 관련된 정신질환을 보는 우리의 시각과 그에 따른 오해이다. 예컨대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을 과학적으로 그냥 '병'으로만 보는 것도 편견이 아닌가싶다. 인간은 병을 앓고 있는 존재지 병 그자체가 아닌 것이며 병은 감기처럼 있다가 없어지는 상태일 뿐이다. 그런데 그 병을 가진 과학적 대상으로만 보면 인간이 소외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마음에도 공감을 가져 그가 그의 인격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환자의 마음에 다가간다고 하여서 오해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과학적 이론들로부터 발원하는 선입견들을 피한다고 해서 오해로부터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기는커녕 사물과 사람에 다가가는 이해에 관련된 가장 위험천만하고 고질적인 선입견들은 이론의 형태를 띤 뚜렷한 선입견들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이해전달에 의해 사람과 사물들을 자연스럽게 파악하고 해석하는 일에서 생겨나는 암암리에 작용하는 선입견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선입견들이야말로 좀처럼 눈에 띄지 않으며 물리치기 정말 어려운 것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수학의 세계'에서는 이런 오해가 적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거주하는 소위 '생활세계(life world)'에서는 그 세계에서 만나는 여러 대상들에 대하여 더 많은 오해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그 생활세계가 더 기초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수학의 세계를 규정하는 것은 생활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그 오해에서 다시 이해로 그 무엇을 진정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그냥 병을 앓는 것은 아니다. 나무나 동물처럼 병을 앓는 것이 아니다. 병을 앓는 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불안해하면서 병을 앓게 된다. 간단한 것 같지만 이 과정이 많은 내성(內省)과 성찰을 갖게 하는 인간의 특성일 것이다. 간단한 불안 우울이고 스트레스가 지나가고 나면 감기처럼 지나가게 되어있는 것임에도 그렇게 되지 않고 우리는 우리가 불안하다는 것이 불안하게 되는 이중의 고통을 피할 수 없다.

 이와 같은 이중의 스트레스를 받고 예민해지는 것은 한편으로는 감수성이 뛰어난 것이고 시간이 지나가면 일상에서 해결될 것이지만 인간은 '본래적 불안'도 경험하는 것이기에 여기서의 불안을 병적 불안과 혼동할 수도 있고 여러 감정에서 조율할 수 있는 개현성에 침해를 받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불안에서 오히려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인데 그 불안을 자신에게 나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울증이 왔을 때 기분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어떤 활동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암암리 알지만 우울증으로 무기력한 상태에서는 생활에서 의욕을 높일 수 있는 열정을 발견할 수 있는 접근로가 막혀있게 될 수 있다. 그래서 조율되지 않은 긍정적 가능성들이 어둠속에 가려지는 것이다. 

 우리가 기분에 얼마나 많이 영향 받는가는 감정적 고통을 당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기분에 따라 열기도 하고 닫기도 한다. 우울증 환자는 자신을 닫고 있는 것이며 그래서 세계관계가 어려운 것이다. 그리하여 듣게 되는 것은 오로지 우울한 부정적인 것이어서 세계를 파국, 종말 같은 것으로 오해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울증은 우리에게 세계가 닫혀있는 것으로서 종말 같은 것이지만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는 자신이 소외되어 있는 것이고 그러므로 자신과의 관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당연히 치료자 같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추구되어야 할 노력일 것이다.

 이런 우울증은 사회적 역할에만 자신을 맞추느라 그곳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생겨난 불필요한 증상일 수 있지만 목적적으로는 사회 역할에 자신을 맞추느라 소외시켰던 원래의 자기 자신을 찾으라는 양심의 부르짖음 같은 것일 수 있다. 즉 우울증이 자신에게로 되돌아와 자신을 찾게 하는 목적의미를 가진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울증이 이런 목적의미를 가진 것이라면, 그냥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불필요한 것으로 보고 자신이 그런 고통으로 하여 파국에 이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며 편견에 불과한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사실 자살이란 항상 잘못된 방법을 취하는 실수일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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