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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하게도, 도시에서 자란 내게 자연과 함께한 추억은 빈약하다. 삭막한 콘크리트 숲에서 자란 내게도 어린 시절 강에서 뛰놀았던 보석 같은 추억이 있다. 시골 할머니집 근처에는 작은 냇물이 흘렀는데, 어느 여름방학 무렵 사촌동생들과 메기를 잡으러 떠났다. 냇물은 맑고 깨끗했고, 널찍한 바위는 반질반질 빛났고, 맑은 물소리와 어울려 풀벌레 소리도 귀를 간질였다. 위로 올라갈수록 냇물은 점점 계곡처럼 커지고, 메기를 찾을 수 없었지만 송사리와 놀고 보석처럼 빛나는 예쁜 조약돌을 주웠다. 그건,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자연이었다. 26년 전의 추억이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때의 물소리, 햇살이 느껴질 정도로 생생했다.


 몇 년 뒤, 다시 그 냇가를 찾았다. 그때, 처음으로 실망했고 화가 났고, 어른들이 미웠다. 맑고 깨끗했던 작은 냇가 한 켠에 축사가 생기고, 축사에서 나오는 분뇨와 쓰레기가 정화장치도 없이 분출되고 있었다. 냇가는 점점 더러워져가고 물줄기도 약해졌다. 맑은 물이 흐려지고, 악취마저 났다. 물속에서 뛰놀던 송사리, 메기는 보이지 않았다. 내 소중한 유년의 추억이 더럽혀지는 기분이었다.
 그림책 '하얀 도화지'속 물고기를 보면서, 끝내 찾지 못한 메기를 여기서 만난 기분이 들었다. 그림책 속 물고기는 더러워진 강물에서 스스로 뛰쳐나온 당찬 녀석이다. 물고기는 강물이 깨끗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거센 바람이 비늘을 앗아가고 따가운 햇살이 몸뚱이를 썩게 하여 뼈만 남아도, 물고기는 안간힘을 다해 버텼다. 언젠가는 깨끗한 강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한 소녀가 강가에 뼈만 남은 물고기를 발견하고 미안해한다. 소녀는 마음을 담아 하얀 도화지에 물고기를 그린다. 예쁜 지느러미 반짝이는 비늘을 정성스럽게 그리고 색칠하면서 물고기가 살아나기를 바랐다. 소녀의 어여쁜 마음이 마법을 부렸을까, 소녀가 잠든 깊은 밤이면 그림 속 물고기가 살아나 펄떡거렸다.
 더러워진 강을 되돌리기 위해 사람들이 쓰레기를 줍고, 소녀도 함께 한다. 더러운 강이 점차 깨끗해지고, 물고기들이 돌아왔다. 소녀는 자신이 그린 물고기 그림을 들고 강으로 향한다. 소녀가 강가에서 노는 사이, 강변에 둔 도화지에서 '첨벙'하는 소리가 난다. 그림 속 물고기가 도화지에서 뛰어올라, 마침내 간절히 염원하던 깨끗한 강으로 돌아간 것이다.


▲ 권은정 아동문학가
 그림책 속 물고기의 반짝이는 눈을 보면서, 냇가의 메기를 상상해본다. 그때 내가 정말 화가 나고 분했던 것은, 소중한 냇가를 지켜주지 못해서였다.
 책을 읽은 딸애가 "물고기가 강에 돌아가서 다행이야"라고 해맑게 웃어준다.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할머니 집 냇가에 가고 싶다. 다행히 축사는 없어졌고 냇가는 깨끗해졌다고 들었다. 아이와 함께 메기를 찾아볼까. 자연과 함께한 추억을, 아이에게도 물려주고 싶다. 물고기가 강으로 돌아가듯, 사람도 깨끗한 강으로, 자연으로 돌아가듯이.
 권은정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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